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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에게는 공소시효가 없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⑪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24호] 승인 2013.12.18  10:04:42

“유전무죄 무전유전(有錢無罪, 無錢有罪)!” 
오국지문: 나라를 잘못이끈 죄인들의 지옥


“유전무죄 무전유전(有錢無罪, 無錢有罪)!” 

그 말이 처음 우리 사회에 회자된 것은 1988년 10월16일이었다. 교도소를 탈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인질극을 벌이던 지○○가 “유전무죄 무전유전”를 외치며 자살하면서였다. 당시 지씨는 자신의 탈옥 이유를 “돈과 권력 없이 못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불의·부정한 사회의 바로미터, 돈

이순신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의(不義)에 분노했다.

박천 군수 류해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한산도에서 공을 세우겠다고 한다. …중략… 류해가 또 말하기를, “왕옥(王獄, 의금부 감옥)에 갇힌 이덕룡을 고소한 사람이 옥에 갇혀 세 차례나 형장을 맞고 다 죽어간다”고 했다. 놀랄 일이다. 또 과천의 좌수 안홍제 등이 이상공(李尙公)에게 말과 20살 난 여자 노비를 바치고 풀려났다고 한다. 안(安)은 본래 죽을 죄도 아니었는데 여러 번 형장을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輕重)을 결정한다니 그 끝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른바 “백전(百錢)의 돈이면 죽은 영혼도 살아나게 한다(一陌金錢便返魂, 일맥금전편반혼)”는 것이리라.
<난중일기>, 1597년 5월 21일.

이순신이 일기에 쓴 “백전의 돈이면 죽은 영혼도 살아나게 한다(一陌金錢便返魂)”는 말, 그 자체가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이순신이 인용한 말은 본래 중국 명나라 때 구우(瞿佑)가 지은 소설, 《전등신화(剪燈新話)》 속의 한 편인 <영호생의 저승 꿈(令狐生冥夢錄)>에 나오는 칠언율시의 일부 구절이다. 그와 같은 ‘불의한 돈’의 힘에 대해서는 이순신도 읽고 공부했던 병법책, 《위료자》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요즘 항간에는 “천금을 바치면 죽음을 면하고, 백금을 바치면 형벌을 면할 수 있다(千金不死, 百金不刑. 천금불사, 백금불형)”고 한다.  《위료자》·<장리(將理)>

이순신, 위료자, 영호생의 이야기는 모두 불의하고 부정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결국 사회나 조직의 멸망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인용한 글이 들어있는 <영호생의 저승 꿈>을 읽어 보면 이순신의 속마음도 느낄 수 있다. <영호생의 저승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과응보의 법칙

영호생은 신을 믿거나 귀신을 믿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나 지옥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욕심 많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한 일도 거침없이 했던 오씨(烏氏)이라는 부자 노인이 병들어 죽었다. 그런데 그가 몇 일후에 다시 살아났다. 영호생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의 가족들이 저승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돈은 저승에서도 통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영호생은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옛날부터 탐관오리들은 권력으로 뇌물을 받고 법을 어겼고, 부자들은 돈으로 몸과 재산을 지켰다. 그러나 가난뱅이는 돈이 없어 자신이 지은 죄만큼 벌을 받았다. 그런데 저승도 그와 같다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그리고는 이순신이 인용한 표현이 담긴 시를 지어 저승을 비웃었다.

일백 전의 돈이면 죽은 영혼도 살아나고,一陌金錢便返魂(일맥금전편반혼)
공사 어딜 가나 돈이면 통하네.公私隨處可通門(공사수처가통문)
신은 덕 있는 사람은 살 길을 열어 준다는데,鬼神有德開生路(귀신유덕개생로)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억울한 사람은 비추지도 않네.日月無光照覆盆(일월무광조복분)
가난뱅이, 무슨 수로 부처님 힘을 얻을 수 있나.貧者何緣蒙佛力(빈자하연몽불력)
부자들은 하늘의 은혜 입는 것도 쉽구나.富家容易受天恩(부가용이수천은)
일찍이 선악에 응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早知善惡都無報(조지선악도무보)
황금이나 많이 모아 자손에게 물려줄 것을!多積黃金遺子孫(다적황금유자손)

영호생의 시를 들은 염라대왕은 화가 나서 그날 밤 영호생을 ‘지옥능멸죄’로 잡아오게 했다. 그러나 영호생은 심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왜 잡혀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가난했지만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 때 염라대왕은 영호생의 시를 말하며 지옥을 능멸했다고 주장했다. 영호생은 그 때야 자신이 잡혀온 이유를 알고 자술서를 이렇게 썼다.

“가난한 자는 지옥에 들어가 온갖 고통을 다 겪고, 부자는 대충 불경(佛經)을 읽어도 죄를 면합니다. 화살에 맞아 떨어진 새만 잡는 것처럼, 힘없고 가난한 사람만 법으로 잡아들이고, 힘 있고 부자는 법이 관대해 법망에서 다 빠져나갑니다. 상벌의 규정이 어찌 이렇습니까?”

그러면서 영호생은 어떻게 지옥에서까지 죄지은 자를 돈을 받고 살려줄 수 있느냐고 따졌다. 염라대왕은 영호생의 글을 보고 “영호생의 주장은 공정하고 정당해 죄를 줄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분명하고 굽히지 않으니 강제로 굴복시킬 수도 없다. 진술한 내용은 맞는 말이다.” 
 
염라대왕은 오씨 노인을 다시 잡아오게 했고, 영호생은 다시 살려주었다.

최악의 죄인은 나라를 망치는 간신

영호생이 다시 살아나기 전 마지막으로 간 지옥에는 오국지문(誤國之門)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나라를 잘못 이끈 죄인들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란 뜻이다. 수십 명이 쇠로 만든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중에 영호생이 목격한 죄인의 한 사람이 송나라의 명장 악비(岳飛)를 모함해 독살한 간신 진회(秦檜)이다. 오국지문에 있는 간신들은 모두 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이기에, 그들은 새로운 나라가 생길 때마다 독사에게 물어뜯기고, 굶주린 독수리가 골수를 쪼아대는 처벌을 받는다. 또 그 과정에서 뼈와 살이 문드러진 뒤에는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오고, 그 처벌을 끊임없이 반복해 받는다.

그가 깨어나자 한바탕 꿈을 꾼 듯 했는데, 아침에 오씨의 집에 찾아갔다가 지난밤에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호생의 꿈 이야기는 돈으로 세상의 가치를 바꾸는 세태를 비판하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간신의 죄를 비판한 것이다. 이순신이 영호생의 시를 인용해 말하고자 한 속뜻은 자신의 억울한 처지는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전쟁 중에도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임금과 간신들은 인과응보의 처벌을 받는다는 확신이다. 돈으로 잠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백성들의 믿음은 살 수도 없다. 돈으로 권력을 잠시 얻을 수 있지만 영원할 수도 없다.

※ 위 글은 (사)한국형리더십개발원(www.kleader.org)에 기고한 칼럼으로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에세이를 더 볼 수 있습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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