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633

[박종평의 이순신 이야기]“리더의 설득력이 통합을 만든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⑭>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27호] 승인 2014.01.06  10:48:59


“낙관주의적 옷을 방탄복처럼 입은 사람”

리더십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리더들마다 자신의 성향, 상황, 목표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발휘한다. 그러나 자신의 조직을 분열시키며 성공한 리더들은 없다. 분열 전략은 적이나 경쟁자를 상대로 한 것일 뿐, 자신의 조직에 대해서는 한마음을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일 빼기 일로 마이너스 10, 100을 만드는 어리석음 대신 일 더하기 일이 플러스 10, 1000을 만들었다. 그와 같은 한마음을 만드는 리더의 힘은 대부분 설득력에서 나온다.

로마시대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당신이 나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내 생각을 생각하고, 내 느낌을 느끼고, 내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할 때 상대가 설득된다는 주장이다.

무력은 최후의 수단, 끝까지 타일러라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보면, 이순신은 훌륭한 설득자이다. 특히 “낙관주의자의 옷을 방탄복처럼 입은 사람”이다. 이순신은 잘 들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명령이나 지시보다는 대부분 설득의 힘을 활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 자주 등장하는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일렀다(개유, 開諭)’라는 표현이 그것을 증명한다.

1차 옥포해전이 끝난 뒤에 이순신은 장수들에게 배들을 더 잘 정비해 사변에 대비하라면서 “개유(開諭)”하고 진을 파했다. 또한 2차 당포, 당항포 해전과 한산대첩시에 구출한 아이와 포로들을 불쌍히 여기며 관리에게 잘 보살피고 전쟁이 끝난 뒤에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라고 ‘개유(開諭)’했다.

이순신은 전투로 고생한 장수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물론, 장졸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명령과 지시’가 아니라 설득인 ‘개유(開諭)’를 했다. 이순신과 같은 최고 지휘관이라면 간단한 명령이나 지시로 끝날 일을 이순신은 구구절절히 부하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권유했다.

명령과 지시는 리더의 입장에서 간편하지만, 일방적일 뿐이다. 반면에 이순신이 표현한 개유(開諭)는 리더 스스로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행동이다. 또 쌍방향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순신의 ‘개유’에는 그가 어떻게 부하들을 이끌었는지, 왜 승리했는지, 백성들이 왜 그렇게 믿고 의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높은 자리와 비싼 차에서 내려 손을 잡아라

이순신은 또한 설득을 하기 위해 말 뿐이 아니라 적극적인 몸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은 백성들을 큰 혼란에 빠지게 했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치게 만들었다. 패장인 거제 현령 안위와 영등포 만호 조계종 등을 비롯한 장수들과 백성들은 백의종군을 하는 이순신을 만났을 때 울부짖었다.

그 때의 이순신은 위로의 말 조차 건낼 수 없는 죄인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그들의 울음을 소중히 들었다. 마음속에서는 그들보다 더 크게, 더 아픈 상태에서 통곡을 했겠지만, 그는 담담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얼마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의 그가 백성을 대한 태도는 보다 적극적이다. 무언의 듣기 대신 피난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 위로했다.

▲ 옥과 경계에 이르니, 피난민들이 길에 가득 찼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말에서 내려서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일렀다(下坐開諭). (1597년 8월 5일)

이순신은 높은 말안장위에서 위세를 부린 것이 아니라 말에서 내려 개유(開諭)했다. 그가 개유한 내용은 자신이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얼마 후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에는 55척의 적선이 출현했고, 왜군의 공격 첩보도 들려왔다. 그 때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따라 이동하던 피난민들에게 전령선을 보냈다.

상황을 알리고 타일렀다(告諭). 전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백성들의 피해를 방지하려고 육지로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전투가 임박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조차 이순신은 백성들에게 명령을 하지 않았다. 백성의 생명을 존중해 불의의 사태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상황을 알리고 권유한 것이다. 그런 이순신의 태도는 명량해전에서 피난민들이 모두 육지로 피하지 않고 의병(義兵)으로 참전하게 만든 효과도 가져왔다.
 
이순신의 그와 같은 설득 방식은 신호를 활용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1차 옥포 승첩 후 어느 날 밤에 군사들이 이유없이 놀라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이순신은 상황을 파악한 뒤 고함을 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시켜 요령을 흔들어 진정”시켰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군대의 신호체계를 활용했다. 깜깜한 밤중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말이 왜곡되거나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고, 혼란으로 잘 들리지 않을 것을 고려해 소리가 잘 전달되는 요령으로 상황을 진정시켰다.

이순신에게 설득은 군사의 마음을 얻고, 백성의 믿음을 얻고, 자신의 믿음을 감염시키는 힘이었다. 특히 부정의 언어보다는 긍정의 언어, 협력을 만드는 언어를 습관화했다. 그 설득 방법이 바로 이순신이 자주 말하는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일렀다(開諭)’이다. 그는 또한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진실만을 말하고, 소문이나 뒷담화를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윽박 대신 가르쳐라

그가 쓰는 다른 설득 표현은 ‘가르친다(敎)’이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면서 수행을 하던 종들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우려해 미리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계속 이동해야 하고, 먹고 자는 것이 불편한 힘겨운 백의종군 과정에서도 이순신은 종들에게조차 명령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걷는 종들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도 설득했다.

▲ 고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갖고 와서 먹으라고 하나 먹지 말라고 종들에게 가르쳤다(敎). (1597년 6월 2일)

 ‘가르친다’는 표현은 맏아들 회가 하인 수에게 곤장을 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뜰 아래로 붙들어다가 옳고 그름을 따져 가르쳤다(論敎)”는 그의 일기에서도 나타난다. 이순신은 잘못된 행동을 미리 알려 가르치거나, 잘못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면서 깨우치도록 설득했다.

무엇보다도 칭찬은 가장 강력한 설득의 도구이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씨앗과 같아서 한번 나오면 스스로 자라고 무성하게 가지를 펼치며 자란다. 칭찬의 씨앗은 긍정과 공감을 퍼지게 하지만, 부정과 거부감이 이는 말은 고립과 갈등을 만든다. 우리가 한 말의 씨앗이 언제, 어떻게, 어디서 자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표현해 상대의 마음을 열어 함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설득을 잘하는 비법이다.

이순신은 모두 강력하고 단호한 명령이나 지시보다는 부드러운 설득으로 부하들을 감동시키고,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 낸 설득의 명수였다. 죽일 듯 편을 가르는 험한 말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나의 말에 상대를 초청해라. 그 지점이 통합을 이루는 출발점이다.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