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dibrary.net/jsp/download.jsp?file_id=FILE-00003354209 (문서파일)
* "백제 漢城都邑期 연구 동향과 과제 - 김기섭" 중 "Ⅴ.통치체제"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백제의 통치체제
2011.1  김기섭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모여 살게 되었으며,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깊이 연구한 것은 인류학이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에서 신진화주의 인류학자인 엘만 서비스와 프리드를 중심으로 국가발전단계론이 사회인류학계의 대세를 차지했다. 엘만 서비스는 비교문화론과 고고학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인류사회가 무리사회(Bands)→부족사회(Tribes)→족장사회(Chiefdom)→국가사회(State) 순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였다.102) 프리드는 평등사회(Egalitarian)→서열사회(Ranked)→계층사회(Stratified)→국가사회(State)로 구분하였는데,103) 서비스가 사회형태와 문화의 통합수준을 기준으로 분류한 데 비해 정치형태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 다를 뿐 기본골격은 비슷하다.

서비스의 이론이 대세를 장악하자, 이론의 구체화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부족사회(Tribes)는 구성원이 수백명에 불과한 신석기시대의 취락사회이며,104) 족장사회는 대략 만여명 혹은 수만명 단위의 계급사회로 규정되었다.105) 1970년대에는 서비스의 이론을 한국사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하였다. 그러자 백남운106)이후 흔히 사용해온 부족국가(部族國家)의 개념이 매우 애매해졌다. 당연히 부족국가(部族國家)→부족연맹(部族聯盟)→고대국가(古代國家)로 나누던 시대구분107)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108) 그 결과 부족국가 대신 치프덤단계에 해당하는 군장사회(君長社會),109) 성읍국가(城邑國家),110) 추장사회(酋長社會)111) 등의 용어가 제창되었다.

문제는 ‘부족연맹’이었다. 그동안 한국고대사학계는 부족연맹이 부족국가와 고대국가 사이의 과도기라고 믿어왔는데, 이를 대신할 단계가 인류학의 국가발전단계론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천관우(千寬宇)는 성읍국가(城邑國家)→영역국가(領域國家)로 나누어 연맹단계를 과감하게 생략하였지만, 그렇지 않고 부족연맹을 이름만 바꾸어 한국사에 적용하려는 연구자가 더 많았다. 이기백의 성읍국가→연맹왕국→중앙집권적 귀족국가,112) 이종욱의 추장사회→소국→ 소국연맹→소국병합(왕국),113) 이현혜의 소국→소국연맹체,114) 노중국의 읍락→소국→소국연맹→고대국가115)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논의가 진전되는 사이 인류학계의 국가발전단계론과 달리 한국사의 특수성에 따라 설정한 ‘연맹’ 단계의 내부구조가 당연히 관심을 끌었다. 이에 노태돈은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초기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部)를 실례로서 제시하였다.116) 그는 정치적 위상이 다른 몇 개의 자치체(部)가 연합하여 초기 고대국가를 건설했으며, 국왕도 부(部)의 장(長)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부(部)는 지연을 기반으로 형성된 조직이고, 부 안에는 部內部라는 하위 정치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주장은 신라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를 거쳐117) 결국 삼국시대 공통의 부체제(部體制)라는 단계를 설정하기에 이른다.118) 특히 1999년 7월 29~30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한국고대사학회 하계 세미나는 부체제에게 한국고대사학계의 시민권을 주는 공식적인 행사였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한국 고대사회의 부(部)와 부체제(部體制)」였으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사의 전공자들이 각기 부(部)의 존재양태를 제시하고 공통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119)

부체제는 국가발전단계론의 기반 위에 서있는 특수한 이론적 틀이기에 사료가 절대 부족한 삼국시대 초기사를 정리하는 데에는 일견 제격이다. 그러나 연역적 인식에 기초한 이론들이 으레 그렇듯 실증하기 어렵거나 사료와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부체제론을 지지하는 연구자는 대개 백제의 부(部)도 원래 부족에 기반을 둔 단위정치체였으나 고이왕대 이후 족적(族的) 성격에서 벗어났으며, 웅진 천도 이후에는 지연성(地緣性)마저 상실하면서 본래의 고유한 부족 명칭을 잃어버리고 새수도의 행정구획단위로 기능이 전환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한성도읍기의 부(部)가 지방통치를 위한 행정단위로 묘사되어 있다.120) 그리고 정작 고이왕기(古爾王紀)에서는 부(部)에 관한 기사를 한 줄도 찾을 수 없다. 이를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거나 초기 사료의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론으로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보기도 하는데,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시기의 사료인 전지왕(腆支王) 13년(417)조 121)와 비유왕(毗有王) 2년(428)조 122) 등을 감안할 때 수긍하기 어렵다.

이처럼 삼국시대 초기의 보편적 통치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부체제(部體制)도 아직은 그 이론적 기반이 공고하지 못하다. 삼국시대의 部가 중국의 한자를 빌어 표기된 마당에 중국에서의 용례에 대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한국고대사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보편화한 탓이다. 부체제론 대신 삼국시대 초기의 지배체제를 귀족합의체제로 보는 시각123)이 오히려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백제 전기의 부(部)가 족제적(族制的) 성격이 강한 고구려의 부와 달리 행정단위로서의 성격이 강한 중국식의 부제(部制)를 모방한 것이라는 추정까지 제기된 상태이다.124) 요컨대, 부체제론(部體制論)을 한국고대사에 안정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논증절차를 더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완성된 부체제론을 백제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백제의 부(部)가 지니는 특징을 부체제론에 반영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주석

102) E. R. Service, 1962, Primitive Social Organization-An Evolutionary Perspective-, Random House.
103) Morton Fried, 1967,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ciety: An Essay in Political Anthropology, Random House ; 최정필, 2001, 20世紀 考古學 理論의 展開過程에 대한 小考 , 한국선사고고학보8.
104) M. D. Sahlins, 1964, Physical Anthropology and Archaeology, Hammond.
105) P. T. Baker and W. T. Sanders, 1972,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Palo Alto Inc ; J. E.Pfeiffer, 1977, The Emergence of Society, McGrow-Hill ; 金貞培, 1986, 韓國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 고려대학교 출판부..
106) 白南雲, 1933, 朝鮮社會經濟史, 改造社 ; 백남운, 1989, 조선사회경제사(윤한택역), 이성과현실.
107) 李基白, 1967, 韓國史新論, 일조각 ; 金哲埈, 1975, 韓國古代國家發達史, 한국일보사.
108) 金貞培, 1973,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 , 白山學報14. ;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上) , 韓國學報2, 일지사.
109) 金貞培, 1973,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 , 白山學報14.
110)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上) , 韓國學報2, 일지사.
111) 李鍾旭, 1982, 新羅國家形成史硏究, 일조각.
112) 李基白, 1990, 韓國史新論, 일조각.
113) 李鍾旭, 1982, 新羅國家形成史硏究, 일조각.
114) 李賢惠, 1984,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일조각.
115) 盧重國, 1988, 百濟政治史硏究, 일조각.
116) 盧泰敦, 1975, 三國時代의 部에 관한 硏究 , 韓國史論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17) 李文基, 1980, 新羅 中古의 六部에 관한 一考察 , 歷史敎育論集1, 역사교육학회 ; 姜鳳龍, 1991, 新羅 上古期 中央政治體制의 基本原理와 部 , 李元淳敎授停年紀念 歷史學論叢,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 全德在, 1992, 新羅 六部體制의 變動過程 硏究 , 韓國史硏究77.
118) 盧重國, 1988, 百濟政治史硏究, 일조각 ; 余昊奎, 1992, 高句麗 初期 那部統治體制의 成立과 運營 , 韓國史論2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 1997, 1~4세기 고구려 政治體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林起煥, 1995, 高句麗 集權體制 成立過程의 硏究,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2004,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 全德在, 1996, 新羅六部體制硏究, 일조각 ; 朱甫暾, 2000, 百濟初期史에서의 戰爭과 貴族의 出現 , 百濟史上의 戰爭,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19) 발표․토론 결과가 ‘한국고대사와 部’라는 제목으로 韓國古代史硏究17집(한국고대사학회, 2000)에 실려 있다.
120) 金起燮, 1998, 百濟 前期의 部에 관한 試論 , 百濟의 地方統治, 학연문화사.
121) 秋七月 徵東北二部人年十五已上 築沙口城 使兵官佐平解丘監役.
122) 春二月 王巡撫四部 賜貧乏穀有差.
123) 金瑛河, 2000, 韓國 古代國家의 政治體制發展論 , 韓國古代史硏究17.
124) 金起燮, 2002, 4세기 무렵 백제의 지방지배 , 白山學報63 ; 2003, 백제의 성장과 西部 경영 , 先史와 古代19, 한국고대학회.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