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0159.html

[세상 읽기] 선관위 사이버테러 사건의 행간 / 신경민
[한겨레] 등록 : 20111214 19:31
   
경찰 수사 발표를 인정할 경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심야 의기투합의 원동력이었다

≫ 신경민 <문화방송> 전 앵커

선관위 사이버테러에 대한 경찰 수사는 예상대로 구성이 탄탄하지 못했다. 수사팀이 어려웠을 것으로 치부하고 싶다. 다만 권력의 속살을 보여주는 일들을 들춰줘 그나마 기여했다. 함께 행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룸살롱 정치는 여전히 살아있다. 국회 9급 비서를 비롯한 주요 기관이 중요 정보를 나누고 결정하는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특정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운동선수 출신 보좌관들이 주축으로 모였다. 선수 출신의 집합은 우리가 잘 몰랐던 인연이었고 열심히 창의적으로 끼리끼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연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상당한 술값을 검찰 수사관 출신 사업가가 내는 건 위계와 정보 소통의 현실을 보여준다. 9급의 노는 품새는 아래로 흐른 물이나 마찬가지여서 윗선이 일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도 진실, 실제 수사, 수사발표에는 틈새가 많이 보였다. 경찰은 룸살롱에 동석한 청와대 행정관과 유력 정치인의 보좌관을 감추려고 참 애썼다. 수사 물타기 주체를 연상시켰고 수사권 독립이 현안으로 등장할 때마다 경찰에게 버거운 사건이 터지는 징크스가 나타났다. 진실까지는 어려워도 실제 수사와 발표가 엇비슷해지려면 경찰 간부 선거제가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다시 나왔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신뢰를 결정적으로 왕창 잃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일부 투표소를 옮긴 이유에 대해 궁색하게 변명했다. 또 로그파일 공개에 대해 국회 의결이라는 법적 요건 뒤에 숨어 기록을 한달 묵혀 쓸모없게 만들었다. 선관위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사이트 관리 책임자로서 기록 공개는 물론 투표소 메뉴 마비 후 대응에 대해 밝혀야 했다. 선관위는 이미 선거 불공정 기관이라는 인상을 준 상태에서 다시 판단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사건 주모자와 뒤로 연결되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았다. 선거관리를 할 기관이 아니라 관리받아야 할 기관으로 바뀌었다.

헌법의 기초를 흔든 초유의 사이버테러에 대해 관련 기관들에는 내내 괴이한 침묵이 흘렀다. 좀비를 알아내 막아야 하는 국정원과 케이티(KT)는 모른체했다. 청와대, 여당, 총리, 컴퓨터 기관들,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함구했다. 상식적인 보통 수준의 대통령, 총리, 장관이라면 대검찰청 수사를 특별 지시하는 편이 맞아 보였다.

경찰 발표를 인정할 경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젊은 비서와 컴퓨터 전문가 친구 사이에 있었던 심야 의기투합의 원동력이었다. 이들은 소설에 나올 법한 국가기관에 대한 사이버테러를 쉽게 실행에 옮겼다. 비서의 무한충성심과 친구라는 인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주모자들은 젊은 투표자를 따돌리기 위해 국가기관을 사이버테러한다는, ‘목적을 위해 못할 일과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은 윗선의 행태와 사고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검찰, 경찰, 언론이 같은 편이라서 봐줄 것이고 사태가 악화돼도 윗선이 무마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결국 독재적 발상이 추진의 원동력이었다.

족집게 공격한 주모자들은 헌법 1조 민주공화국을 포함해 온 나라를 공격했다. 디도스 아류는 여당을 해체 수준으로 두들기고 선관위, 경찰을 거쳐 검찰로 넘어갔다. 그동안 무죄판결을 두려워하지 않은 검찰은 무죄 사안을 기소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권력의 속내와 향방을 잘 읽어온 검찰이 목하 권력 지각변동기에 어떤 줄을 탈지 궁금하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경찰, 검찰을 모두 선거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사건에는 부정선거, 워터게이트, 박종철 사건이 섞여 있는 인상을 준다. 날개 달린 디도스가 훨훨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몇달 전 상상하기 힘든 일이 시리즈로 일어났고 더 일어날 것 같다. 

신경민 <문화방송> 전 앵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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