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C5SN78

한국보다 주체성 강한 북한의 고조선 고구려사 인식
“한나라 침략군이 고조선의 령역을 강점했다”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많은 사람은 ‘북한 급변사태시 중국은 북한을 점령하거나 북한을 중국 영향권에 집어넣기 위해 동북공정을 추진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북한을 중국의 속국으로 보는 의견인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북한이 중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할 때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북한은 고구려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06년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손영종 박사를 필자로 해서 펴낸 ‘조선단대사(고구려사 1)’는 한4군이 요동반도에 있었다는 것을 비롯해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거론되지 못하는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는 삼국사기를 ‘바이블’로 여기기에 삼국사기를 근거로 광개토태왕을 동명성왕의 12세 손(孫 : 손자라는 뜻, 왕의 서열이 아니다)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시절 건립된 광개토태왕릉비에는 광개토태왕을 동명성왕의 17세 손(孫)으로 밝히고 있다. 고려 때 편찬한 삼국사기가 정확할까, 고구려 당대에 새긴 광개토태왕릉비가 옳을까.

손영종 박사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을 근거로 삼국사기가 누락시킨 다섯 손(孫)의 다섯 왕을 찾아냈다. 삼국사기가 ‘고구려 2대왕인 유리(琉璃)왕의 이름은 유리(類利) 혹은 유류(孺留)이다’와 ‘5대인 모본왕은 해애루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밝힌 것과 광개토태왕릉비에서 동명성왕의 세자를 유류로 표기한 것, 그리고 중국 사서들에 적혀 있는 것을 참고해 삼국사기가 누락시킨 5명의 고구려 왕을 찾아냈다.

그는 고구려의 2대왕은 유리왕이 아니라 유류왕이고, 3대왕은 여률왕, 4대왕은 대주류왕, 5대왕은 애루왕, 6대왕은 중해왕(추정 이름), 7대왕이 삼국사기에서 2대왕으로 설명된 유리왕이라고 밝혔다. 삼국사기가 2대 유류왕에서 6대 중해왕까지를 7대왕인 유리왕에 합쳐버린 것이 삼국사기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구려 건국 연도는 서기전 277년으로 올라간다. 반면 한국 역사학계는 삼국사기를 근거로 서기전 37년에 고구려가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북한 역사학계는 고구려의 기원을 한국 사학계보다 240년 빠르게 보는 것이다. 손 박사의 이러한 판단에 대해 일부 국내학자들은 가능성 있는 지적이라는 의견을 보인다.

한4군 문제에 대해 손 박사는 ‘한나라 통치자들은 고구려 지역에 현도군을 설치하려고 획책했다’ ‘한나라 침략군이 고조선의 북부 령역을 강점했다’ ‘한무제가 오랫동안 고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준비하던 끝에 마침내 BC 109~108년에 전쟁을 도발하여 고조선(만조선) 왕조를 무너뜨리고 고조선 옛 땅 일부에 락랑, 현도, 림둔, 진반(진번)의 4개군을 설치했다’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표현을 적어놓았다.

북한 사학계는 대동강변에서 구석기 유적(검은모루 유적)이 발견된 것을 근거로 대동강을 황하에 버금가는 문명발생지로 만들고, 이 대동강 문명에서 김일성 부자가 나왔다는 조잡한 주체 사학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무관한 부분의 역사에서는 한국보다도 강한 민족 주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 문제에 대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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