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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이순신 이야기]"절망하지 마라, 12척이 남아있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⑰>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0호] 승인 2014.01.27  11:33:45

“이순신 지독한 낙관주의자, 긍정의 화신”    
13척으로도 133척의 일본군과 맞서 승리

▲ 2004년 미국에서 공개된 거북선

미국 증권가에서 존 템플턴(John Templeton)은 ‘영적 투자가’로 불린다. 그의 투자 성공비법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그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문제를 해결할 생각보다 불평만 하다 자기 자신까지도 문제가 되는 부류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부류이다. 템플턴은 해법을 고민하는 부류가 성공한다고 본다. 문제에 갇힌 사람에게 인생은 언제나 힘겨운 싸움터가 될 뿐이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삶이 오히려 흥미진진한 도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삶을,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비극이 될 수도 있고, 해피엔딩이 되기도 한다.

45,000번의 부정적 생각

템플턴의 관점은 이왕이면 삶을 즐기고, 긍정적·낙관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먼저 인정하고, 부정의 언어 대신 긍정의 언어를 쓰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한번이라도 유심히 관찰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관주의와 부정의 언어를 많이 쓰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매일 매일 ‘아니오’, ‘안돼’, ‘할 수 없어’, ‘곤란해’, ‘어려워’, ‘늘 그래’, ‘운이 없어’라는 말이 매 순간의 우리의 삶을 도배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무려 45,000번의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45,000번. 엄청난 숫자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습관이 우리 자신의 하루를 채우고 있다. 그것은 비극이다. 암을 무서워하면서도 스스로 암을 키우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암을 전염시키는 최악의 모습니다. 습관화된 비관주의와 패배의식은 사막과 같이 황폐한 삶을 만들 뿐이다. 비관주의와 동행하며 사는 이유는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하다. 삶의 목표가 없고, 열정이 없고,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긍정주의자·낙관주의자는 정반대이다. 그 모든 어두운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확실한 목표와 불굴의 의지, 실천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에겐 실패조차 배우는 과정일 뿐이다.

▲ 신에게 전선(戰船)이 아직도(尙) 12척이 있습니다. 죽을 힘으로 막아 지키면 오히려(猶) 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전부 폐지한다면, 이는 왜적이 행운으로 여길 것이며,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비록(雖)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微臣不死) 적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 이분, 《이충무공 행록》-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이순신을 그런 영웅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은 ‘급'이 되지 않는다. 이순신은 그들보다 몇 단계 위의 지독한 낙관주의자였다. 희망의 전도사, 긍정의 화신 그 자체였다. 조금도 순탄하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그렇게 무장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는 22세에 모든 것을 바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문과공부를 중단하고, 무과로 진로를 바꿨다. 6년 동안 무과시험 준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 4년을 더 노력해 합격했다. 

10년을 공부하며 지낸 결과이다. 합격 뒤 말단 장교로 최전선을 전전해야 했다. 직장을 세 번 잃었고 두 번은 계급장조차 없었다. 불꽃같은 삶도 전쟁터에서 마감했다. 이순신의 타협하지 않는 선택들은 시련이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련을 자신의 짐으로 받아들이며 과감히 선택했다. 그는 그와같은 시련을 극복하며 삶의 지혜를 쌓아나갔다. 그가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낙관주의이다.

그가 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그의 조카가 쓴 첫 번째 전기인 《이충무공행록》에는 무서울 정도로 지독한 낙관주의자 이순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한없는 믿음, 자존심, 도전정신이 위기의 순간 마다 새겨져 있다.

원균이 칠천량에서 일본군에 대패한 뒤 절망한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려고 했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은 그 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과 낙관주의로 선조에게 말했다.

“아직도, 오히려, 비록”이라는 표현은 보통의 긍정이 아니다. 뭐라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지독한 긍정이다. 그는 또한 “죽을 힘으로” 최선을 다해 책임지겠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도 말했다. “왜적이 행운으로 여길 일, 신이 죽지 않는 한,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극한의 위기에서 조차 두려움이나 움츠림, 패배주의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불패의 승리자가 된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낙관주의 때문이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이 새로 만들고 훈련시킨 몇 백 척의 전함과 수 만 명의 장졸들이 순식간에 전멸되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가난 대신 풍요의 길에 서라

이순신은 ‘12척 밖에 없다’는 가난과 궁핍이 지배하는 길과 ‘12척이나 있다’는 부자 마인드, 풍요의식의 길 사이에서 풍요의 길, 긍정의 길, 낙관주의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이순신의 사고방식이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 이순신이었기에 이미 보이는 것과 모두가 아는 사실들, 그 너머를 보면서 새로운 해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문제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문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았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현실에서 실현해 냈다. 이순신은 자신의 낙관주의를 자신만 갖고 활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까지도 감염시켜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이순신의 자부심에 가득 차고 넘쳐나는 결의는 결국 수군을 없애려던 선조와 조정의 생각까지 바꿔 이순신의 주장처럼 수군을 유지하게 했다. 이순신의 낙관주의에 감염된 군사들도 이순신과 함께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 결과 패잔병으로 구성된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 13척으로도 133척의 일본군과 맞서 싸울 수 있었고,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순신의 일기에는 그 때의 모습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직후 이순신의 수군은 지난 패배 경험으로 공포에 떨며 전투를 피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가장 먼저 홀로 앞장서서 적과 전투를 시작했다.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에게 차분히 말했다.

▲ 적이 비록 1,000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에는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라. 오직 힘을 다해 적을 쏘라.

이순신은 부하들을 격려하고 승리의 믿음을 주었다. 자신이 선두에서 싸우며 불패의 낙관주의를 감염시켜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하늘이 도운 행운(天幸天幸)”이라면서 겸손하게 하늘에 감사했다. 그가 오만한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하늘을 감동시키는 겸손한 낙관주의자였기에 하늘까지 도운 것이다. 이순신처럼 극단적인 자기 긍정의 화신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오늘 지금 이순간 만큼은 이순신의 "아직도", "오히려"를 되뇌여보자. 분명 그 순간 만큼은 새로운 나를 만날 것이다.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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