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653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낙관주의 갑옷을 입은 무적의 전사”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⑱>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32호] 승인 2014.02.10  15:37:37

 
지독할 정도로 낙관주의자 이순신
“단점 보다 장점을 먼저 보라!”

이순신은 명량해전 직전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런 무한 긍정의 자세를 갖았던 것은 평상시부터 세상과 사람, 사물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뼛속 깊이 각인된 그 습관이 위기를 만났을 때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 전부터 전쟁을 대비했고, 백성들의 살림살이, 가족에 대한 온갖 걱정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단호한 처벌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 어느 때나 비관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행 속에서 밝은면을 보라

▲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도착해 인사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과 편전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걱정했지만, 전선(戰船)은 그런대로 완전하니 기쁘다.  (1592년 2월 26일)

▲ 삼경 말에 본영의 탐후선이 들어와서 적의 소식을 전하는데, “실은 왜적이 아니고, 영남의 피난민들이 왜군 차림을 가장하고 광양으로 마구 들어가서 여염집을 분탕질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왜적이 아니라서 기쁘고 다행이었다.    (1593년 7월 9일)

▲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게 되니, 이는 난리 중에서도 다행한 일이다.(1594년 1월 1일)

임진왜란 전에 전쟁준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방답을 시찰했을 때는 화살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걱정했지만, 전투선을 보고는 “그런대로 완전하니 기쁘다”라며 졸인 가슴을 풀었다. 전쟁 중에 백성들이 일본군 옷차림으로 민가를 분탕질 할 때는 “그나마 왜적이 아니라서 기쁘고 다행이다”라면서 백성들의 노략질까지도 더 위험한 적인 일본군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했다.

“난리 중에서도 다행", “이것만도 다행", “이 역시 다행"이라는 그의 말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부분을 보려했고,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리는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는 우선순위에 따라 판단하고, 조급함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피했다. 현실은 인정했지만, 해결방법을 먼저 고민했다. 패배감이나 두려움, 혼란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일본군처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이었다. 

이순신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는 가족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부하들의 사기를 높여 어떤 문제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제가 생겨도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일으킬 수 있는 과도한 처벌이나 책임 전가를 피할 수 있었다.

극복할 수 없으면 무시해라

▲ 성과 해자 또한 매우 엉성하니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심력을 다했지만 미처 시설하지 못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어찌하겠는가.     (1592년 2월 27일)

▲ (우수사 이억기가) 원균이 망령된 말을 하며 나에게 도리에 어긋난 짓을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모두가 망령된 짓이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1593년 8월 2일)

▲ 전윤이 말하기를, “수군을 거창으로 붙잡아 왔는데, 이 편에 들으니 원수(권율)가 방해하려 한다”고 했다. 우스운 일이다. 예부터 남의 공을 시기하는 것이 이와 같았으니, 한탄한들 무엇하랴 (1594년 1월 18일)

노력한 만큼, 또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는 일도 많은 것이 현실의 삶이다.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계획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 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순신은 자신이 극복할 수 없거나,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몫이 아니라며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섰다.

2월 27일의 일기는 새로 부임한 첨사 이순신(李純信)이 관할하는 방답을 점검하고 쓴 일기이다. 신임 첨사가 부임하자마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판단하고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한 내용이다. 이순신은 다양한 이유로 원균은 물론 상관인 원수 권율 등과 갈등했다. 또한 임금을 비롯한 고위층들의 의심과 비방, 비현실적인 정책 강요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런 비방이나 헛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이순신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 대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한탄한들 무엇하랴”라며 무시했다.

이순신은 누가 뭐라고 하든 성실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또 “우스운 일이다”라며 툴툴 털어냈다. “우스운 일이다”라는 이순신의 표현은 ‘해괴한 일이다’와 함께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의 가장 비판적인 표현의 하나이다. 그는 일기에 조차 부드러운 표현을 썼다. 그런 마음씨에서도 우리는 그의 고결한 인품과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복수하려는 마음 대신 그런 나뿐 마음을 오히려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는 무시전략으로 자신의 긍정성을 지켰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기회로 만들었다.

말과 생각 바꾸면 불패

이순신은 어떻게 낙관주의자가 되었을까. 본래부터 그렇게 타고났을까.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그렇게 되었을까. 그의 삶을 돌아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그의 말과 행동이다. 그는 지독한 낙관주의가 배어 있는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했다. 또한 부정의 언어, 비관의 언어를 쓰지 않았다. 또한 일기를 쓰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서 분노를 녹였고, 낙관주의의 방패를 만들었고, 내일을 계획했다.

이순신처럼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순신이 보여준 것, 또 셀리그만이 말한 것처럼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 말을 '많이'가 아니라 '항상' 써야 한다.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조직학습 교수인 토조 대첸커리(Tojo Thatchenkery)와 캐롤 메츠커(Carol Metzker)는 "언어가 미래를 만든다고 하면서, 평상시 쓰는 말이 실제로 현실을 만든다"고 했다. 미국 켄터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수잔 세거스트롬도 미래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 결과에 대한 기대심리를 갖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도전하라고 권했다.

자신이 바라는 현실을 만들고 싶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먼저 말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 같은 말은 없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언어로 무장해야 한다. 이순신의 “아직도, 오히려, 비록” 이라는 긍정의 언어와 “죽을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자세, “신이 죽지 않는 한,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이라면 어떤 고난이든, 어떤 일이든 긍정과 낙관주의의 갑옷을 입은 무적의 전사가 될 것이다.

◆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