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918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긍정의 마인드가 불패군대 만든다!”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33호] 승인 2014.02.17  14:07:53

▲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6호
 
불패 신화 긍정의 마인드 동승효과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도 자부심 자체였다. 그의 올곧고 강단있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은 자부심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정의롭고 개인적인 욕심이 없었기에, 원칙과 규정에 따라 해야 할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것이 그에게 "모난 돌이 정을 맞는 것"과 시련을 가져왔을지라도 그는 시련을 이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진실은 아무리 감춰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그의 자부심이 나타난 사례들을 "둥글게 살자" 혹은 "줄 잘 서자"와 같은 보신주의 시각으로 보면, 콱 막힌 듯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자신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고민과 실천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렴결백은 무기이다

1576년 32살의 이순신은 무과에 합격한 후 3년간의 함경도 국경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훈련원에서 잠시 근무를 한 뒤 1년도 채 안돼 충청병사의 군관으로 발령이 났다. 그 때의 일화 중에는 그가 휴가를 다녀온 뒤에 남은 양식을 나라의 것이라고 반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상황을 오늘날의 사례와 비교하면, 출장비를 받고 출장을 갔다가 출장비가 남았다고 반납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는 공짜나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대가를 얻기를 원하지 않았다. 주인의식과 자신의 자부심을 택했다.

36살 때는 전라도 발포 만호로 임명되었다. 그 때도 그는 보신주의나 아부의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당시 상관이었던 전라 좌수사 성박은 이순신의 관할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거문고 재목으로 눈여겨 보았다. 그는 이순신에게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잘라 보내라고 명령을 했다. 이순신은 상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개인의 물건도 아닌 나라의 물건이고, 또 오래된 나무를 하루아침에 잘라낸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며 상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수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몬 대형 반역사건인 정여립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조그만 인연이나 관계가 있어도 봉변을 당했기에 알면서도 외면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사건에 연루된 전라도 도사(都事) 조대중의 짐에서 이순신이 보냈던 편지도 나왔다.

편지의 내용과 이유와 관계없이 누구든 악의를 갖고 연루시키려면 연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의금부 도사는 이순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의혹을 받을 수 있는 편지를 빼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압수물품이기에 자신의 편지도 개인적으로 빼내서는 안된다며 거절했다. 또한 같은 사건으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재상, 우의정 정언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를 갔다가 비극적인 상황을 보고도 흥겹게 술을 마시는 하급 관리들을 보고는 그들을 거침없이 꾸짖었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고 실천한 것이다.

45세 때에는 전라 순찰사 이광의 군관 겸 조방장으로 임명되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직급이 낮은 상태였다. 그가 순천을 방문했을 때, 훗날 이순신의 막하에서 맹활약하게 될 권준 순천부사는 그런 이순신을 조롱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어떤 불쾌감도 표시하지 않고 그저 웃고 털어냈다. 오만한 권준의 행동을 자부심으로 무시한 것이다.

이순신은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부심으로 원칙을 지켰다. 때문에 많은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실력을 쌓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 결과 임진왜란에서는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자신의 불패 신화를 주장할 수 있었다. 또한 철저한 자기관리로 누구의 비방과 비판이든 실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 큰 바다에서 교전할 때면 저 왜적들은 무너져 파괴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우리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彼賊則無不 我則一無所敗). (1593년 9월 15일 일기 이후 메모 글)

▲ 김응서(경상 우병사)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임금의 질책을 받고도) 스스로 회개하여 힘쓴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는가. 만약 쓸개가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결이라도 할 일이다. (1595년 7월 7일)

이순신은 자신이 김응서처럼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면 '자결'했을 것이라는 일기이다. 한번도 패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당당한 사람이 바로 이순신이다.

나를 긍정하라! 나를 존중하라!

이순신과 같은 자부심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는 자기 확신과 자기 확언 습관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리치료 전문가인 루이스 헤이(Louise L. Hay)는 ‘자기 확언의 힘’을 강조한다. 헤이는 "자기 확언은 자기 변화의 출발점"이라면서, 나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확신에 찬 말을 하라고 권유한다. 이순신의 삶은 그와 같은 끊임없이 자기 확언의 모습이다.

미국의 시인이며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 Emerson)은 "위대함과 평범함을 나누는 기준은 자신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라고 했다. 다른 이를 부러워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존중해 보자. 사랑해 보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은 일도 잘 할 수밖에 없다. 자부심 때문에 더 열심히, 또 성실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웰링턴(Arthur W. Wellington) 장군도 이순신 만큼이나 자부심이 강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그는 인도에서 근무했었다.

웰링턴을 통해 이권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이가 웰링턴에게 이권에 대한 정보 제공 대가로 10만 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웰링턴은 그의 얼굴을 몇 초간 조용히 바라본 뒤 말했다.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분처럼 보이십니다만….” 그는 자신있게 가슴을 펴며 “예. 물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 웰링턴이 웃으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라며 그를 자신의 방에서 내보냈다. 그는 돈 대신 지켜야할 비밀은 물론이고, 자신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선택을 했다.

자부심은 자신의 성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의과대학 교수 요아힘 바우어는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의 힘'을 강조한다. 긍정의 감정은 긍정의 감정을, 부정의 감정은 부정의 감정을 전염시킨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스티븐 레츠샤펜 교수는 정서적 전염과 비슷한 성격의 '동승현상(entrainment)'을 발견했다.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리듬 체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박자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사물놀이를 보면 처음에는 서로 다른 악기와 박자가 혼란스럽게 엇갈리다가 차츰 합쳐지고 어느 순간 엄청나게 빠른 박자 속에서 완벽하게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것과 같다. 레츠샤펜에 따르면 동승현상은 사람들 사이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순신은 자신부터 자부심과 긍정 마인드로 무장했고, 부하와 백성들에게 전염시키며, 동승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로 그와 그의 군사들은 불패의 군대가 되었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