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7383

115명 죽인 테러범 김현희의 이해 못 할 행보
KAL 858기 폭파사건 27주년... '폭파범'에서 '증인'이 된 김현희
14.11.29 12:01 l 최종 업데이트 14.11.29 21:35 l 박강성주(truth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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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15일 김현희씨가 MBC 대담 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이달만 되면 저는 마음이 무겁고 항상 그분들께 사죄합니다." 

KAL 858기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씨가 최근 어느 방송에서 한 말이다 (<채널 에이>, 2014년 11월 5일). 나는 이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믿고 싶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정말 115명을 죽인 테러범이라면, 사죄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방송에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에 좀 더 신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의혹 논란과는 별개로, 그녀로 인해 평생의 상처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계속되는 고통 속에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희씨의 계속되는 방송 출연

그런데 그녀는 최근 몇 년에 걸쳐 각종 방송에 잇따라 출연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말레이시아 항공기 실종과 관련해 비행기 '폭파범'으로서 '모셔졌다'(<뉴스 와이>, 2014년 3월 17일).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언론사의 초대 자체가 적절했는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여러 언론(주로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모진 피난생활"의 아픔을 호소하는 김현희씨. 그녀가 고통받아 마땅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모습을 봤거나 전해 들은 KAL 858기 실종자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김현희씨에 따르면 자신은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노무현 정부와 "종북세력"이 그녀를 다시 불러냈다는 것이다)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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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에 출연한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 ⓒ TV조선

혼란스러운 나는, 한편으로 김현희씨의 이런 활동을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녀는 사형을 기다려야 할 처지였지만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녀로서는, 지금의 이런 활동이 증인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호주 비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는 적어도 1988년 1월 12일을 기준, 김현희씨에 대한 사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공식 수사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고(1988년 1월 15일), 더욱이 재판에 따른 사형선고가 내려지기 훨씬 전이었다(1990년 3월 27일). 그녀의 증인 역할이 처음부터 당시 군사정권의 정치적 계산과 깊이 연결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권으로서는 사건을 어떻게든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이는 군사정권이어서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본능 아닐까).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던 이 부분은 이른바 '무지개공작' 문건이 국정원 과거사위에 의해 공개되며 알려지기도 했다.

이 문건은 1987년 12월 2일에 작성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비행기가 실종된 지 겨우 사흘 뒤였다. 정권의 사활이 달린 선거를 앞두고, 안기부(현재의 국정원)를 포함한 당국은 이 공작에 적지 않은 예산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예산 중 일부라도 블랙박스와 잔해, 또는 시신을 수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더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김현희씨의 증인 활동은 넓게는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최근 몇 년간 그녀가 방송에서 하는 말은 문제가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국가기관과 시민단체를 동원해 '김현희 가짜 만들기 공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녀의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정부가 만든 과거사위가 자신을 가짜라고 발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욱이 재조사 요구와 시도는 가짜 만들기가 아니라 사건의 특성상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의혹들을 해명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김현희씨 말대로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종북세력"의 활동이 아니라, 종북-반북을 넘어 최소한 시신이라도 보고 싶어했던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김현희씨에 대한 조사 실패로 많은 한계를 낳았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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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013년 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AL858기 폭파사고의 주범인 김현희에 대한 재조사 및 가족회와 김현희와의 공개토론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진짜이든 가짜이든, 김현희씨도 괴로울 것이고, 실종자 가족들은 더욱 괴로울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년 365일 늘 똑같이 괴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2014년 11월 29일, 이제 사건 발생 27년이 된다. 나는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는 이적행위를 한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이 눈물 어린 하소연이 다름 아닌 김현희씨에게서 나오고 있는 상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에 어느 실종자 가족이 내게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것 같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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