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daum.net/reallie/9170667


부여 동명왕과 고구려의 동명왕

원래 동명왕과 주몽은 별개의 인물입니다.

 

동명왕은 본디 '부여' 의 건국자이고, 주몽은 '고구려' 의 건국자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수백년 정도의 차이가 나지요. 그러나 부여의 건국자 동명왕은 굉장히 신성시되었던 것 같고, 이것이 부여를 계승했다고 자처한 고구려의 건국설화와 겹쳐지면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에게도 동명왕이라는 명칭이 덧붙여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고구려 당시의 기록물인, '광개토대왕릉비' 에도 주몽을 동명왕이라 부르지 않고 '추모왕'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고구려 주몽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니, 아래에서는 간단히 동명왕(부여시조)의 탄생과 부여 건국에 대한 설화만 간단히 언급해 보겠습니다.

 

 

1. 부여 시조 동명왕에 대한 기록: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국

 

처음에 '북이' '색리국'索離國 이 출행하였는데['색'은 혹은 '탁'으로 음이 '도락'으로 변했다.] 그 시녀가 후에 임신을 하니,['임'음이 '인짐'으로 변했다.] 왕이 돌아와 시녀를 죽이려 하자, 시녀는 말하기를, "전에 하늘 위에 기를 보았는데 큰 계란과 같았다. 와서 나한테 내려오더니, 그런 뒤로 태기가 있습니다"했다. 왕은 시녀를 가두었더니 뒤에 남자 아이를 낳았다. 왕이 명하여 이것을 돼지우리에 버였으나,['뇌'는 '권(우리)'이다.]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굿간으로 옮겼으나['난'은 '란(우리)'이다.] 말도 역시 이와 같았다. 왕은 이로써 이상히 여기어, 이에 그 어미에게 알려 거두어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했다. 동명은 자라면서 활을 잘 쏘았다. 왕은 그 용맹스러운 것을 꺼려서 다시 죽이고자 했다. 동명은 달아나서 남쪽으로 '엄수'['고려'가운데에 '개사수'가 있는데 이물이 맞는지는 의심스럽다.]에 이르러, 활로써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모두 물 위에 떠올라 동명이 이를 타고 물을 건넜다. 이리하여 '부여'에 이르러 왕노릇했다. 동이의 땅 안에서 가장 좋은곳으로, 땅에서는 오곡이 잘 되고, 또 명마와, 붉은 옥, 담비['날'은 표범을 닮았고, 앞다리가 없으며 음이 '노팔'로 바뀌었다.] 등이 난다. 큰 구슬은 대추만하고 나무를 둥글게 둘러 성을 쌓고,  궁실과 창고와 감옥이 있다. 그 사람들은 거칠고 크고 씩씩하고 용맹스러우며, 근실하고 인후해서 도둑질이나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 활과 화살, 칼, 창 같은 것으로 병기를 삼는고, 여섯 가축으로 벼슬 이름을 지으니, '마가', '우가', '구가' 등이 있다.[위지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 견가가 있다.]

 

 

간단히 비교를 해 보면,

 

동명왕:                                                            주몽:

색리국 출신                                                     부여국 출신

-> 어머니는 색리국왕의 시녀                            ->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 유화  

-> 계란 모양의 기(氣)가 내려와 임신함              -> 임신 도중에 태양빛이 항상 따라다님

-> 사내아이를 낳음(알을 낳지 않았음)               -> 알을 낳음

-> 짐승우리에 가뒀으나 짐승들이 되려              -> 길에 버렸으나 짐승들이 보호함 + 사

보호함                                                                 람들이 쪼개려 해도(설마 도끼로?)

                                                                           무사함

-> 다시 어미에게 주고 기르게 하였는데,            -> 다시 어미에게 주고 기르게 하였는데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쏨                                          ,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쏨

                                                                      -> 마굿간에서 일하게 만들자, 그 안에서

                                                                          좋은 말을 속임수로 얻음

-> 남쪽으로 달아나다 엄수를 건널 때 활로         -> 동남으로 달아나다 큰 물을 만나자,

물을 치니 물고기, 자라가 떠올라 길을 만들           '나의 외할아버지는 (물의 신인) 하백

어 줌 (외할아버지가 하백이 아니라서 외할            이다' 라 하며 외할아버지의 빽을 이

아버지 빽을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직접 활          용하자(?) 저절로 물고기와 자라들이

로 물을 쳐야 했던 것이었다~~)                           떠오름

-> 물을 건너 가서 나라를 세움                          -> 물을 건너 가서 나라를 세움

                         (부여)                                                            (고구려)                     

 

(참고: 동명왕 기록은 위와 같이 <후한서 동이열전> 의 부여국, 주몽에 대한 기록은 <북사 열전> 의 고구려를 바탕으로 한 것임.)

 

그러나 이후 고려시대에 이르면, <삼국유사> 에서도 주몽을 동명왕으로 지칭하고 있고, <동명왕편> 도 부여 시조가 아니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부여의 동명왕 설화가 어느 샌가 주몽에게 덧씌워졌다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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