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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구려! - 관직 체계의 변화 과정
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
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학원 한국사 강사  |  gosilec@lec.co.kr 승인 2014.09.03  11:29:22

얼마 전, 각 방송사에서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고구려와 관련 있는 대하사극들이 앞다투어 제작되고는 하였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생소한 관직명과 관직 체계, 군사 조직 등이 등장하고는 한다. 

고구려사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한 목적은 차치하고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조금 더 배가하기 위해서라도 고구려의 이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1. 나부체제(那部體制) 시기(건국 ~ 3세기말) 

이 시기에는 나부의 대표자들인 대가(大加)들이 중앙 정부의 국정 운영에 참여한다는 조건 아래 나부의 수장들은 스스로 관인을 두고 개별 나부를 반자치적으로 지배해 나갔다. 

이 때 국왕은 귀족들을 세력 크기에 따라 일원적으로 편제하기 위해 관등제를 수립했는데, 3세기 중엽 당시 고구려 관등으로는 상가(相加),대로(對盧),패자(沛者),고추가(古鄒加),주부(主簿),우대(優台) 등이 있었으며 이와 함께 나부의 장들도 자신의 휘하에 별도로 사자,조의,선인 등의 관인들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 해도 이들은 왕의 사자,조의,선인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없었다. 나부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했던 기구는 국가의 모든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제가회의(諸加會議)였다. 

국왕은 대가(大加)들의 협조와 동의를 얻어 정치를 운영했다. 따라서 국왕도 자신의 직할지 외에는 나부의 長이나 복속민 집단의 대표를 통해 간접적, 집단적으로만 지배할 뿐 직접 통치를 할 수 없었다. 즉 나부체제의 기본 성격은 다원적이고 간접적인 통치라 할 수 있다.
  
2.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확립 시기(4세기~5세기) 

그러나 대외정복전쟁이 가속화되고 농업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왕의 권한은 점차 강화되었고 나부의 독자성은 해체되어가면서, 마침내 3세기 말경에는 나부체제가 붕괴되고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가 구축되었다.  

소수림왕대에 도입된 율령은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하는데 기준을 제공했다. 이전에는 각 나부들이 독자적으로 다스렸으나, 율령 반포 이후에는 고구려 전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성문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다원적이던 정치조직을 일원화하게 되었고, 이는 국왕 중심의 국정운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먼저 중앙의 관계조직은 ‘형(兄)’계 관등과 ‘사자(使者)’계 관등이 분화되어 일원적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관직 끝에 ‘형’이 붙는 관직은 부족장세력들이 중앙귀족으로 귀속되는 과정에서 여러 관등으로 분화 개편된 것이다. 
  
‘사자’는 원래 조세,수취 등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던 관료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개편한 것이다. 말하자면 ‘형’은 귀족 세력들을 각기 세력의 크기에 따라 둔 것이며, ‘사자’는 실제 행정을 담당하던 사람들 중에 유능한 순서에 따라 차등을 두어 나눈 것이다. 

고구려 중기의 전제적 왕권은 이러한 일원적 관등제도에 기초한 관료체제의 운영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왕은 국내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직접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국왕과 귀족의 차이는 현격하게 벌어졌다. 천손계(天孫族)인 왕은 태왕(太王), 성태왕(聖太王)으로 불려지는 신성한 존재였고, 정치적으로 전제군주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런 변화를 배경으로 지방지배방식도 간접통치에서 직접통치로 전환했다. 3세기 말 4세기 초부터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부터 지방관을 파견했다. 

이 시기 지방관들은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된 크고 작은 성에 상주하면서 지역 지배를 담당했다. 4세기 중반까지는 주요 거점지역에만 지방관을 파견했지만, 4세기 중후반경 이후에는 하위 지방관이 지배하는 지역 몇 개를 포괄하는 범위를 상위지방관이 관할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요컨대 점적인 지배에서 면적인 지배로 전환되고 단위 지역 중심의 지방조직에서 중층적인 조직으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3. 귀족연립체제(6세기~멸망) 

그런데 6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흔들리게 되었다. 대규모 정변이 발생하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중앙 정계가 분열되었으며, 경제적인 변동으로 민(民)의 분화도 심화됨으로써 갈등과 혼돈을 겪게 되었다.  

이런 내부 혼란을 틈타 백제와 신라가 연합해서 한강 유역을 탈취해 갔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맞이하게 된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귀족들은 타협을 통해 내분을 수습하고, 합의에 의해 최고위직인 대대로(大對盧)를 선임하는 귀족연립체제를 수립했다.  

이 시기에 주요 국정은 국왕의 전제적인 통치가 아닌, 고위귀족들의 합좌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운영되었다.  

조의두대형 이상의 관등에 오른 귀족들이 국정을 장악하였으며, 최고위직인 대대로는 3년마다 귀족들이 선임하였다. 또 막리지(莫離支)라는 집권적 관직이 등장하여 정권을 장악한 것도 후기 통치체제의 특징이었다. 

현재 드라마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전까지 도움을 주는 여러 인물들은 초기 통치체제인 나부체제 하에서 관리가 될 것이며, 드라마 ‘연개소문’은 제3시기인 귀족 연립 체제, 즉 귀족권이 강화된 상황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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