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2283

"측근 실세 논란? MB는 대통령 본인이…"
[MB의 비용 2부] <3> 이명박 정부 '대통령·측근' 비리
박세열 기자, 곽재훈 기자(정리) 2014.12.10 09:43:14

과거 최고 권력자에게 개인 비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민주화 이후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개인(가족 포함)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7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이 전 대통령의 개인 비리와 이명박 정부의 측근 비리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더 심각한 모습을 보여줬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993년 3월 27일자 <세계일보> 3면에 실린 '이명박 의원 150억대 땅 은닉'이라는 기사는,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에 불을 지폈으며,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정치 이력 자체가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있었던 셈이다. 과거 최고 권력자의 비리는 법 제도 등의 미비 혹은 권력과 언론의 패거리 문화로 인해 축소되거나 덮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었다. 또한 제왕적 총재 시절의 관성 때문에 일정 부분 용인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이제는 좀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대표적인 것은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이다. 이는 대통령 본인이, 그것도 재임 기간 동안 직접 연루돼 있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였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그리고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씨,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씨,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 등의 이름은 시시때때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대통령과 고향이 같은 '사조직'의 권력 남용 의혹도 빼놓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었던 부분은 중요한 지점이다. 개발 독재 시기 기업 문화의 타성에 젖어 있던 그에게 최고 권력자의 위치는 버거운 자리였을 수도 있다. 민간 기업 출신인 그의 개인 캐릭터와 이력을 본인이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의 비리의 원인을 개인의 캐릭터 문제로 돌리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전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비용을 안겨줬다. 정확히 산정하거나, 추산할 수 없지만, 숱한 권력형 비리를 발견하고 조사하고 처벌하느라 든 사회적 비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막심했다는 점까지 따져보면 그 '비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프레시안>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의 비리와 대통령의 비리를 대하는 권부, 그리고 사법부의 태도, 또 대통령 비리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 등을 주제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선아 교수,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박선아 한양대 교수(왼쪽)와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선아 한양대 교수(왼쪽)와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정부, 부패에 대한 국민 인식을 냉소적으로 악화시켜" 

프레시안 : 한국사회는 대통령의 비리에서 늘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비리는 이전 정부와 어떻게 다를까? 

박선아 : 이명박 정부 임기 5년이 끝나고도 만 2년이 지났다. 총평하자면 그전 대통령들과는 비리 사건이 났을 때 국민이 받아들이는 태도, 분노의 질이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는 차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패에 대한 국민 인식을 다른 형국으로 악화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대기업에 재직했을 때, 이후 정치인이 돼서, 다시 본인 개인사업을 할 때, 대선기간 중에도 여러 형사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그 중 BBK 사건은 개인투자, 벤처, 금융영역까지 합쳐진, 한국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범죄였는데 이 전 대통령이 거기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몸통 아니냐' 하는 의혹까지 있었다. 

박근용 : 이는 냉소적 시선이었다. 그 전에는 '대통령이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같은 게 있었는데, 취임할 때부터 '전과 14범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왔으니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는데 그 밑의 사람은 얼마나 깨끗할까', '비리가 있어도 대통령 스스로가 비슷한 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데 척결한다고 스스로 강하게 말할 수 있겠나'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대통령이 저러니 공직자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였다. 

고위공직자 인선을 하면서도 '흠결이 있지만 아깝다' 수준이 아니라, 여러 비리가 많아도 그냥 인선을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높아져 오던 공직자 인선 기준이 너무 낮아졌다.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 파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5년간 수많은 비리 사건이 있었는데, 잠시후 본격적으로 다룰 내곡동 사건을 빼고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박선아 : 저는 효성그룹 사건이다. 친인척 관련은 아니지만, 이런 재벌 비호 사건은 이득의 규모로 봤을 때 다른 어떤 개인비리와도 차원이 다르다. 앞으로 '기업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분들이 정치를 할 때 시민들이 얼마나 감시의 눈초리를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도 안 되는 국가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었는데 기업이 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최초의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박근용 : 사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비리가 너무 많다 보니 딱히 뭘 하나 집을 만큼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게 없다. (웃음) 돈과 관련되지 않은 사건까지 넓힌다면 민간인 사찰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 한다. 

박 교수가 말한 효성 사건은 2009년 당시 수사를 안 하고 덮었던 사건인데, 국회에서 경찰 첩보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문제가 됐었고 특히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가 여러 자료를 공개하면서 안 건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였다. 그나마 (2009년에는) 해외부동산 매입 부분만 살짝 건드렸다. 원래 효성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이었다. 올해 들어 재수사하면서 조석래 회장이 다시 기소된 상황인데, 4년 전에 했어야 할 것을 미루다 보니 지금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효성 사건은 기억할 만하다.

▲박근용 처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용 처장. ⓒ프레시안(최형락)  

"내곡동, 현직 대통령 직접연루 비리사건으로는 유일한 수준" 

프레시안 : 앞서 박 교수가 BBK 사건을 언급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비리 의혹이 많았다. 내곡동 사저 논란도 기상천외한 사건이었는데, 시민사회의 반응은 당시 어땠었나?

박근용 : 대통령 관련 비리라고 하면, 전에는 주로 대통령 본인 비리보다는 대통령의 위세를 이용한 측근들의 호가호위 사건 아니었나. 이런 사건은 노무현 정부 때나 이명박 정부 때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본인과 관련돼 '현직 대통령이 이득을 보느냐 마느냐' 이런 케이스는 사례가 별로 없었다. 대상자가 현직 대통령이니 검찰 수사의 한계는 뻔했고 '검찰이 제대로 하겠나'하는 자포자기 분위기도 (시민사회에) 있었다. 

그나마 대통령 위세가 많이 빠졌을 때인 집권 4년차(2011년)에 사건이 터지면서 새누리당에서도 특검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일부 사실은 이광범 특검 팀에서 밝혔다. 내곡동 사건은 대통령 본인이 관련된 비리 사건으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나 한다. 처벌은 안 됐지만. 그래도 문제가 불거져 사람들이 항의하니, 정치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입주를 포기한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거다. (웃음)

프레시안 : 지난 6월 검찰이 무혐의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하면서 이제 사건이 종결된 것 아닌가?

박선아 :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만 일사부재리가 적용된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해도 공소시효 기간 이내라면 다시 수사해 기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물론 형사소송법 상으로는 수사를 재개하는 게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박근용 : 2012년 6월, 처음에는 정당들이 이 당시 대통령을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특검 수사가 끝나고 1심 판결이 나온 후인 2013년 3월에 고발장을 냈다. 1심 재판에서 김인종 당시 처장 등 경호처 관계자 3명이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는 사실이 나와서, 그것을 보면 이 전 대통령도 모르지 않았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이 전 대통령 임기 후이니 형사소추 대상이 되니까.  

결국 불기소 처분됐는데, 당사자 중 하나인 김인종 전 처장에게만 물어보고 "김 전 처장이 '구체적 지시를 받은 것은 없다'고 하니 더 이상 살펴볼 필요 없다"고 검찰이 끝내버린 거다. 압수수색을 한다거나, 이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해 진술이나 조사를 한다거나 이런 절차는 없었다.  

박선아 :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 기부'를 약속할 때, 논현동 사저만 남기면서 "우리 내외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하겠다"고 했잖나. 대선 때 이 대선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선거기간 중 한 무거운 약속이어서 (유권자들이) 그건 믿었는데, 내곡동 사저 의혹이 다시 나오며 우리가 생각했던 '사익추구형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다시 나오는 걸 보고 실망했던 것 같다.  

재산 대부분을 기부했디고 하지만 청계재단 문제도 같이 이야기될 수 있다. 청계재단이 공표된 취지에 맞춰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보다는 그 반대 측면이 많다. 지난 10월에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부동산 등 자산 매입을 통한 차입금 상환이 미진할 경우 재단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행정지도도 받았지 않나. 

프레시안 : 내곡동 사저 매입 과정에서 국고가 투입됐는지 하는 부분과 증여세 탈루 여부도 논란이었다. 

박선아 :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에 대해서는 특검에서 불기소 처분을 하면서도 증여세 탈루 혐의가 있다고 보고 국세청에 통보했었다. 국비가 들어간 부분은 경호처가 이시형 씨 대신 대납한 부동산 수수료 1100만 원이었다. 이처럼 내곡동 사건은 최고권력자 본인 또는 하나뿐인 아들이, 그것도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공익과 사익 추구를 구별하지 못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박근용 : 당시 특검을 한 달 더 연장하려 했는데 결국 못 했고, 특검에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았지만 청와대 측이 협조를 안 해 집행도 못 했다. 이시형 씨의 증여세 문제는, 이 씨가 낸 돈이 자기 돈이냐 부모에게 받은 돈이냐 하는 의혹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부터 차명재산 의혹이 있지 않았나.  

특검 수사결과를 보면, 이 씨가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에게 가서 이른바 '장롱 속 현금' 6억 원을 받아왔다는 건데 그 돈의 출처가 뭐냐는 것이다. 이상은의 개인재산이냐, 아니면 이 전 대통령 돈을 이상은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냐 이런 부분은 확인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사실 참여연대가 처음 고발을 결심했을 때는 배임·횡령 중심으로 생각했었지만, 이참에 규명 안 된 (이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이 이시형 씨에게 간 것 아니냐 하는 의혹도 밝혀 달라고 고발 당시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다.  

프레시안 : 고발장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이 전 대통령이 이 건으로 국고에 미친 손해를 9억7000만 원으로 추계했다. 이건 환수가 되는 돈인가? 

박근용 : 아니다. 기소가 배임으로만 돼서. 횡령이 아니니 그건 물어내는 돈은 아니다. ('지시'에 따라 직접 국고에 손해를 끼친) 김인종 전 처장도 벌금형만 받았다.  

프레시안 : 직접 손해 외에 사회적 비용도 꽤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박근용 : 특검 수사로 인해 사무실 임대비용, 수사관 인건비 등의 불필요한 돈을 쓰게 만든 건 분명하다. (기획재정부가 2012년 당시 이광범 특검팀에 배정한 예산은 12억8000만 원이었다. 편집자) 그런데 사회적 비용…. 당시는 이미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서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볼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웃음) 

▲박선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선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정부 친인척 비리, 이상득 빼놓을 수 없어" 

프레시안 : 내곡동 외에도 많은 비리 사건과 의혹들이 있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여러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  

박선아 : 이 전 의원은 2007년 10월 솔로몬저축은행에서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당시는 이미 이명박 후보의 대선 당선이 가시화되던 시점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권 개입과, 엄청난 국고 손실을 빚은 자원외교에도 이 전 의원이 관여돼 있다. 이명박 정부 친인척 비리를 얘기하면서는 이 전 의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이 전 의원은 포스코 인사 개입의 배후로 지목받기도 했다. 인사 개입에 관여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그리고 포스코 인사 개입 건에 연루된 또다른 실세는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이었다.  

박근용 : 천신일 회장의 경우 인사청탁 사건이 시발점이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2009년에 연임을 시도하며 천 회장을 통해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지만, 그 부분은 규명되지 않고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에서 불법자금 43억 원을 받아 로비에 썼다는 정도로 끝났다. 의혹이 2가지였는데 하나만 건드리고 끝난 것이다.  

이 전 의원의 경우 그 정도 지위에 올랐으면 돈은 안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을 통한 인사청탁이나 로비는 분명 가능성이 있다. 한상률 전 청장 사건에서도 이 전 의원이 경주로 내려가 같이 골프를 쳤다는 등 관여된 정황이 있지 않나.  

밝혀지지 않은 것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인사청탁 로비 사건이다. 한 전 청장의 전임자인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에게 자신의 부인을 통해 그림을 갖다줬다는 일명 "그림 로비" 사건인데, 안원구 국장이 한 청장의 인사청탁을 폭로했지만 올해 4월 결국 한 전 청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한상률 사건은 수사가 2010년에 종결됐는데, 진작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으면 무죄가 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한 전 청장은 논란이 되니 2009년부터 미국으로 도피했고, 2011년 2월 귀국한 이후 검찰이 수사를 재개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 증거도 다 인멸할 수 있었던 때였다. 이미 정지(整地)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들어온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최근 정윤회 씨나 박지만 씨 등의 '권력 암투설'이 나오는데, (언론에 보도된 의혹을 보면) 정 씨도 금품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뭔가를 했다기보다는 '자기 사람'과 '자기 사람이 아닌 사람'의 선을 그어서 누구를 잘 봐달라, 누구는 안 된다 했다는 것 아니냐.  

이명박 정부 때도 박영준 차관이 양재동 파이시티 건으로 받은 돈으로 드러난 게 1억 원 정도로 액수가 적은 편이다.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이 SLS로부터 받은 돈으로 검찰이 밝혀낸 것도 1억 원 정도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사청탁 등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역시 이같은 '찍어내기'의 대표 격인 권력남용 사건이었다.  

프레시안 :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사건이지만, 기획 주제가 'MB의 비용'인 만큼 돈 관계도 짚어보자. 불법사찰 사건에서 규명되지 않은 의혹 중 하나가 '영포회(영일만·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의 활동비 등 자금이 어디서 나왔냐는 것이었다.  

박근용 : 특수활동비 개념으로 공금을 썼을 것이다.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및 고용노사비서관실 예산에 특수활동비 등 영수증이 필요 없는 항목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공적 용도를 뛰어넘어 썼다는 게 유력한 추정이다. 구체적 금액을 모를 뿐 세금이 쓰인 건 분명하다고 본다. 

특히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준 '관봉' 5000만 원이 있지 않나. 나중에 무슨 류충렬 공직복무관리관이 '돌아가신 장인에게 받은 돈'이라고 하면서 은폐됐었는데, (이 돈을 류 관리관에게 장석명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건넨 만큼 : 편집자) 청와대 특수활동비였을 수도 있고, 세금으로 조성된 게 아닌 다른 비자금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세금이라면 그야말로 엉뚱한 데 지출된 것이다.  

"검찰, 권력형 비리에 왜 무력한가?" 

프레시안 : 권력형 비리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결국 왜 검찰 수사는 이같은 비리 사건 앞에서 흐지부지되는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검찰 수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박근용 : 정치검찰로 완전히 회귀한 5년. 집권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위기감을 느끼며 검찰을 확실히 장악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집권 반대 세력을 위축시키고 본때를 보이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닌가 한다. 2009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것도 그렇다.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인데, 정부에 대한 불신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사회통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니라 반대세력에 대한 처벌 위주로 가겠다는 공격으로 읽혔다. 검찰을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쓴 게 아닌가 한다.  
 
 
감사원 문제도 있다. 법률상 여러 권한이 있지만 감사원은 지금 최약체 정부기관이 됐다. 공무원의 비리 또는 공무에 관계됐다면 사인(私人)의 비리도 감사원을 통해 초기 수사가 가능한데 너무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자원외교 건만 봐도, 한참 추진하고 있을 때는 잘못 진행돼도 손도 못 대다가 정권이 바뀌니 건드리는 수준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감사를 했지만 문제 제기를 안 하다가 정권 바뀌니 겨우 한 것 아니냐. 감사원은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예방적으로 문제를 빨리 시정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그래서 감사원을 국회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지만 이 논의가 나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프레시안 : 왜 그럴까? 역시 권력 구조적 문제일까? 

박근용 :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검찰개혁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얘기가 많이 나왔다. '옷 로비' 사건이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아들들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나약하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강조된 게 정치적 독립이었다. 그러나 독립시켜 놓았더니 검찰 자체가 권력집단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 검찰이 정치적으로 종속됐다고 하지만, 검찰이 가진 권력은 집권세력도 바꿀 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독립보다는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검찰개혁의 방향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인사권자의 의중에 따라 말단 검사까지 인사를 다 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집권세력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검찰총장이든 지방검찰청장이든 주민직선제를 시도해볼 수 있다. 지금은 지검장들이 총장, 장관, 대통령 등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지만, 선거제도로 바꾸는 순간 인사권자가 아니라 시민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시민들 중에도 보수적인 이들이 있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균형이 맞춰질 것이다.  

박선아 : 같은 생각이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1960~61) 헌법은 대법원장을 (법관들의) 선거로 뽑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은 주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다. 한국은 검찰시민위원회를 통한 기소배심제가 있지만 아직 시민의 사법 참여가 시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검찰 독립보다는 시민 참여가 선진국형이고 사법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본적 요구를 반영하는 방향이라고 본다.  

박근용 : 그리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수처) 등 특별 수사기구가 있었으면 한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경쟁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대충 했는데 다른 기관이 비리를 훨씬 많이 밝히면 망신'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도 된다. 지금은 검찰만 장악하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검찰만 장악해 될 게 아니라면 더 조심하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박선아 : 공수처 등은 사실 내용이 다 나와 있는 상태인데 국민들이 미는 힘이 빠져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도 초반에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면서 검찰개혁을 어떻게 하겠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쑥 들어갔다.  

박근용 :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상설특검법에 합의해 준 것도 아쉽다. 상설특검법이 엉망이라는 것을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보지 않았나. 상설특검 제도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특검 수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지고 여야가 엄청나게 공방을 했다. 과거에 '이거 수사하자, 하지 말자' 하고 여야가 몇 달씩 싸우고, 수 개월 후에야 특검법 만들어지던 것과 뭐가 다른가. 상설특검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게 세월호 국면에서 확인된 거다. 

프레시안 : 검찰개혁을 위한 시민적 추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민들이 권력형 비리에 관대한 것일까? 

박근용 : 관대한 면이 있다. 그것을 부추긴 것이 검찰의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꿰어맞추기 수사'다. 이놈도 나쁘고 저놈도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집권세력 뿐 아니라 야당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물론 실제로 비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야당은 '흠집 내기'라고 주장했다.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부패 문제에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다'는 생각이 깔리도록 된 것이다.  

박선아 : 결국은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비리가 있었음에도 같은 당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비리가 났을 때 신속히 수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그것이 선거에 반영되는 식으로 사법과 정치가 같이 가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집권세력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있고 국민적 평가도 있었음에도 선거 결과는 그와는 다르게 나온 부분이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눈을 좀 높였으면 한다. 

"박근혜, MB의 길 가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언하는 것으로 좌담을 마무리하자.  

박선아 :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경제적 토대는 1970년대에 이미 튼튼하게 기반이 마련돼 있다. 박 대통령 일가와 그 측근들은 육영재단이나 영남대학교, 한국민속촌 등 어마어마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에서와 같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또다른 형태의 비리가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측근 비리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감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박근용 : 선거 전에 시민들과 모임을 해 보면 '박근혜는 부패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다', '박근혜는 믿는다'는 분들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이 워낙 반대되는 이미지라 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점수를 따고 선거에 나갈 수 있었고 당선 후에도 박 대통령 본인이 부패로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상황은 이명박 정부 때 많이 후퇴했던 공직자 부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회복할 좋은 기회였는데 고위공직자 인선을 하면서 이를 살리지 못했다. 최소한 '금품 로비 등에 대해서는 엄단한다'는 잣대를 세워 주는 정도는 해 줘야 한다.

박세열 기자, 곽재훈 기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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