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맞은 MB 멘토들... '명박산성' 무너진다
[정치 톺아보기] 사랑도 인기도 권력도 곡선이다
11.12.16 09:43 ㅣ최종 업데이트 11.12.16 10:46  김당 (dangk)

▲ 이명박 대통령, 한미FTA 이행법안 서명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9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통과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랑은 곡선이다."(함민복, '곡선').
 
시인 함민복(49)은 최근 펴낸 카툰시집 <꽃봇대>에서 사랑을 곡선으로 표현했다. 올해 늦장가를 간 시인의 사랑이 함축된 표현이리라. 그러나 곡선인 것이 어디 사랑뿐일까.
 
인기도 곡선이다. 연기 생활 20년, 마흔에 맡은 첫 주연으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늦깎이 배우 김윤석(43)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기는 가랑잎처럼 떨어지는 것 같다. 서서히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추락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바닥이 코앞까지 다가와야 느낌이 오는 거지."(10일 <중앙일보>)
 
MB "일하는 사람에겐 권력 누수가 없다"... 전임자들은 놀았다?
 
등산도, 정치권력도 곡선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게 세상 이치다. 그래서 등산보다 하산길이 위험하듯, 정권도 임기 말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5년 단임제의 특성상 역대 정부의 마지막 2년은 롤러코스터였다. 자식과 친인척 그리고 측근이, 대통령에게는 '웬수'였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예외'일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본인의 자신감이 넘쳤다. MB는 지난 2월 취임 3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산행을 마치고 호기롭게 말했다.
 
"3년 지났으니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5년 임기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행이 아니고) 5㎞ 평지를 뛰고 그 다음 선수에 바통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MB는 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는 그런 생각 전혀 없다"고 했다. 마치 '대통령 못해먹겠다'던 전임 대통령의 어법을 패러디해 뛰어난 능력과 넘치는 자신감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일하는 사람에겐 권력 누수가 없다"고도 했다. 마치 전임 대통령들은 '허송세월 하느라 권력 누수가 왔다'는 말본새다.
 
MB는 불과 두 달여 전에도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는 '기네스북에 새길 말씀'을 남겼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반듯한 몸가짐을 주문하는 자리였다지만,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구속되고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의 의혹이 쏟아지는 때에 그런 말을 했으니 '도덕'이 나닌 '도둑' 혹은 '도적'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만하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아마도 MB는 대선과정에서 불법자금 문제가 없었기에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때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MB의 후보시절 대선조직인 안국포럼에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신재민에게 1억 원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 돈이 안국포럼에 유입된 것인지 개인이 유용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씨 말고도 이명박 대선캠프에 참여한 인사의 상당수가 당시 기업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각종 비리에 얽힌 MB 측근과 친인척들을 '총정리'한 오마이뉴스의 '그림뉴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쌩얼을 보여드립니다)에 따르면, 그 수는 17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는 공천청탁을 대가로 30억을 챙겨 유죄가 확정된 MB의 사촌처형이 있는가 하면, 저축은행 로비대가로 4억 원을 챙긴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사촌처남도 있다. 아직 20개월이 더 남았는데도 이 정도다. 권력의 속성상 임기말로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쯤 되면 국정 운영의 총체적 책임자로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머리를 숙여도 시원찮은 판국이다. 그런데 촛불시위가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스스로를 자책"할 기미도 안 보인다. 대통령은 여전히 친인척은 친인척이고 측근은 측근일 뿐, 본인만 비리에 가담하지 않았으면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잘못 이끈 이른바 '멘토'들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알려졌다시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최고 사령탑은 '6인 회의' 멤버들(이명박·이상득·최시중·박희태·김덕룡·이재오)이다. 이 가운데서 대통령의 동갑내기 친구인 김덕룡(70) 민화협 상임의장과 연하인 이재오(66) 의원을 제외한 연장자인 핵심 멘토는 '형님과 그 친구들'인 박희태·이상득·최시중 3인이다.
 
① 박희태 - "날치기 하느라고 피곤해서 그렇다"
 
▲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5월 4일 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홍희덕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경위들에 의해 밀려난 가운데 박희태 의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남소연
박희태(73) 국회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6인 멤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지만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이했다가 원외대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2009년 재보선에서 기사회생해 김형오 의장 후임으로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박희태 의장은 '폭탄주의 원조'답게 폭탄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1983년 가을 춘천지검장 시절 강원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맥주잔에 양주를 부어서 마시길 강요하는 군장성들 때문에 처음으로 맥주잔에 양주잔 뇌관을 담은 폭탄주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폭탄주 문화를 검찰과 군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뜨린 장본인인 셈이다. 그러나 폭탄주 후유증일까? 6선의 '중재의 달인'인 그에게서 명대변인 시절의 총기와 균형 감각은 찾기 어려워졌다.
 
지난 11월 25일 오후 5시경 국회의장 접견실. 박희태 의장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 천기흥)로부터 19대 국회의원선거구 획정보고서를 건네받았다. 일부 획정위원이 걱정이 많은 탓인지 수척해졌다고 안부 인사를 하자 박 의장은 이렇게 화답했다.
 
"날치기 하느라고 피곤해서 그렇다."
 
참석자들이 웃으며 "그래도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었으니 한 시름 놓았겠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날치기 할 게) 아직 한 개 더 남았다"고 다시 한번 농담을 했다. 2012년도 정부 예산안 '날치기 처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농담이라지만 국회의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권력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겨워하는 박 의장에게서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 얼마 뒤에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출신의 박 의장 비서(8급)가 지난 10·26 재보선 때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비서는 디도스 공격이 자신의 단독범행임을 주장한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9급)를 최 의원에게 소개해준 고향 선배다. 그 둘은 범행 전날에도 강남 룸살롱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 둘이 디도스 공격 며칠 전에 1억 원의 금전거래를 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그중 1000만 원은 대가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8~9급 비서의 디도스 공격은 이미 무너져가는 '한 지붕 세 가족'의 한나라당과 홍준표 대표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이제 디도스 공격은 MB정권을 향하고 있다. 그가 비록 국회의장이라는 정치적 중립(무소속)의 위치에 있지만 전 집권당 대표로서 이 지경이 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특히 검찰은 15일 국회의장 비서실을 사실상 압수수색했다. 전례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의장이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② 이상득 - 두 번째로 '국립호텔' 신세지는 '대통령 형님' 되나
 
▲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3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의장에서 열린 교육ㆍ사회ㆍ문화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팔짱을 낀 채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18대 국회 최고령·최다선 의원인 이상득(76) 전 국회 부의장은 동생만 아니었으면 국회의장을 하고도 남았을 정치인이다. 당(정책위의장,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과 국회(운영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치인으로서 최종 선택지는 국회부의장·의장이 되거나 총리·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로서는 동생이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국회의장을 못했으니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러나 권력 집중의 파열음은 임기 첫해부터 터져 나왔다. 그것도 포항·영일 출신 5급 이상 중앙부처 공무원 모임인 '영포목우회' 송년의 밤 행사장에서 울려퍼졌다. 이날 '영일만 친구'가 울려 퍼진 가운데 서울까지 와서 행사를 후원한 포항시장은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고 '영일대군'을 칭송했고, 시의회 의장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고 '형님예산'을 추켜세웠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은 그 완결판이었다.
 
대통령의 형님과 그의 측근인 박영준 차관의 거취 문제는 국무총리실의 이른바 민간인 사찰 문제로 다시 불거졌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소장파를 중심으로 '막후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비등했다. 그는 일선 정치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자원외교'에 매진하겠다는 명분으로 버텼다. 그러다가 끝내는 곡선을 그으며 추락하는 가랑잎이 땅바닥에 닿아서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4차에 걸친 쇄신파의 퇴진공세에도 꿈쩍 않던 노정객을 항복하게 만든 것은 자신을 15년 동안 보좌한 박배수 보좌관을 포함한 '수족'과 '측근'의 비리였다. 박 보좌관은 이국철 SLS그룹 회장과 저축은행으로부터 구명 로비자금 7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의 '왕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차관 역시 이국철 회장의 로비를 받은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정보통인 박지원 의원이 처음 이국철 로비의 몸통으로 '형님'을 지목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로비 의혹은 양파껍질 벗겨지듯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박주선 의원의 말대로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낸 사람은 접수대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혼주와 신랑, 신부를 보고 낸다"는 것이 백만인의 상식이다.
 
게다가 박 보좌관은 그 돈을 의원실 직원 4명의 통장으로 잘게 쪼개 입금해 자신의 계좌로 재입금하는 '돈 세탁'을 거쳤다. 의원실 직원 7명 중에서 5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이다. 의원이 몰랐다면 '허수아비 영감'인 셈이다. 그런데 이 의원은 스스로를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치밀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자평했다. 그는 검찰에서 가서 자신이 '허수아비'임을 증명해 알리바이를 입증해야 한다. 그는 노량진수산시장을 강탈한 전두환의 형님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호텔' 신세를 지는 '대통령 형님'이 될 처지에 놓였다.
 
③ 최시중 - 제2의 MB정권 만들려다가 '인생 4모작' 사려나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3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형님의 '영일만 친구'인 최시중(76)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명박 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을 지낸 MB의 '멘토'이자 '형님'의 대학 동기다. 두 사람은 서울대(정치학과와 상대) 다닐 때 부터 향우회에서 만나 알게 되었고, 졸업해서도 지근거리에 있는 회사(<동아일보>와 코오롱)에 입사해 더 가까워졌다. 그도 기자들에게 '상득이와 친구'가 된 사연을 "거리가 가깝잖아. 그래서 약속 없을 때 서로 만나 밥도 먹고 그러면서 친해졌지"라고 밝힌 적이 있다. MB와 친하게 된 것도 '상득이'를 통해서였다.
 
"1970년대 중반쯤에 상득이가 현대 다니는 똘똘한 동생이 있다고 해서 만났지. 정말 보니까 아주 명석해. 그래서 될 놈이다, 이렇게 생각했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꿈을 꾸기 시작한 건 (MB가) 1992년 전국구 의원으로 출마한 뒤라고. 그때부터 우리가 꿈을 꾸고 준비를 한 셈이지."
 
그는 식사나 술자리에서 후배 기자들에게 "내 친구들이 다 건강한데 일이 없어 얼마나 적적한지 모른다"면서 젊을 때 노후에 대비하는 '인생 이모작'을 강조하곤 한다. 그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거쳐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대표로 변신했고, MB 정권을 만든 '막후 실력자'로서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냈으니 '인생 3모작'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그는 방통위 출입기자들과 비공식 간담회에서 향후 인생 계획을 묻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내 나이가 곧 여든인데 뭘 하겠어. 남은 기간 MB가 잘하도록 멘토 역할을 잘하고, 또 하나 있다면 MB 뒤를 이어 할 사람을 잘 봐뒀다가 '선수'로 키워서 잘하는 걸 보면 그걸로 내 인생이 참 보람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어떤 사람이 괜찮은가 쭉 보고 있지."
 
MB 정권 5년으로는 부족해 '제2의 MB 정권'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그는 곤경에 처한 친구와 달리 마지막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한겨레>에 따르면 최시중 위원장은 종합편성 채널의 횡포를 바로잡아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종편의 '영업상무'가 되어 기업인들을 불러 압박하고 있다. 그는 종편 출범 직후 대기업 광고책임자들을 불러모아 "광고비 지출을 늘려라"고 요구했다. 조중동에 종편을 안겨주더니 이제는 '종편 시중들기'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그의 이런 행태는 조중동이라는 난폭한 아이에게 특혜를 줘 '학교'에 입학시키더니 '치맛바람'으로 공정경쟁을 휘젓는 빗나간 종편 사랑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지난 6월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종편채널이라는 하나의 아이를 낳은 만큼, 걸음마까진 각별하게 보살펴 안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원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지원 의사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3년 전 영포회 송년 모임에서 건배사를 했다. 최 위원장이 '이대로'를 선창하자, 다른 사람들은 '나가자'로 답했다. '이대로'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라는 뜻으로 대선 캠프에서 쓰던 건배 구호였다. '나가자'는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그가 '이대로 나가면' 노익장을 넘어 노추가 된다. '인생 3모작'을 이룬 그가 의도하지 않은 '인생 4모작'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 뒤에 제19대 국회의 청문회장에 서게 될 1순위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화 살이 16년차인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와 김포를 잇는 곡선이 아름다운 초지대교를 바라다보며 '다리의 사랑' 연작을 썼다고 한다.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는 힘이 아니라 / 서로 연결하려는 의지로 다리는 존재한다."
 
서로 연결하려는 의지로 존재하는 게 어디 사랑뿐일까? 대중의 인기도 정치의 권력도 마찬가지일 터. 서로 연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명박산성'이 무너지는 것은 사필귀정이 아닐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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