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35932

국방부 장관의 잘못된 기억과 '별들의 침묵'
[분석] 재연된 청와대-국방장관 '진실게임'... 민망한 박근혜정권의 시스템
15.08.16 11:12 l 최종 업데이트 15.08.16 11:12 l 지용민(hanfan)

유승민 의원 "저는 초기대응이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었습니까?"

김태영 국방부 장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와 같이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는 걸' 같이 겸해서 말씀하셨는데요…."  - 2010년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 중

잠시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0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는 하루 전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으로 격앙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휴전 후 대한민국의 영토가 북한으로부터 직접 포격을 받은 최초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 민간인 사망자도 2명 발생했다. 부상자도 다수 발생한 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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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전,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진실게임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당시 이 대통령이 '확전자제' 발언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발언논란으로 국방장관과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경질됐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0년 11월 25일자 ⓒ 조선일보

당시 한나라당 국방위원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국방장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확전 자제"였다고 대답했다. 

이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직후 청와대는 강하게 '부인'했고 오후 계속된 국방위 보고자리에서 국방장관은 "'확전자제'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오전 발언을 번복했다. 

정리하면, '2010년 11월 북한이 공격했다→사상자가 발생했다→국방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했다→이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자 청와대에서 강하게 (국방장관 발언을) 반박했다→국방장관이 오전의 발언을 뒤집었다'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패턴이 5년 후인 2015년 8월에도 발생한다. 

5년만의 데자뷰... 대통령 보고는 4일이었나 5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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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함지뢰 도발 사건 국방부 대응 질타하는 유승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난 4일 발생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과 관련, "사고 발생 48시간 이후에 합동 현장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질타하고 있다. ⓒ 유성호

유승민 의원 "대통령이 언제 보고를 받았나. (중략) 전날 지뢰 사고가 터졌는데 8월 5일, 그 다음 날 세 가지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조사는 8월 6일 날 이뤄진다. 이거 좀 이상하다. 어떻게 된 것인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사고가 나고 바로 현지 군단 조사단이 8월 4~5일 조사를 했고 8월 4일 늦게 북한의 목함지뢰에 의한 도발이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런 사실이 다 (청와대에) 보고가 됐다." - 2015년 8월 12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또 유승민 의원이 중요한 발언을 이끌어냈다. 여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중진임에도 국방장관을 향해 날을 세웠다. 질의에 나선 유 의원은 "장관은 언제 지뢰 사고 보고를 받았는지"를 물었다. 이어 "대통령은 언제 보고를 받았는지"를 물었다. 이에 국방장관은 자신이 보고하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유 의원은 "대통령은 누구에게 보고를 받는가"를 물었다. 

지난 12일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 영상회의록에 등장한 유 의원이 국방장관을 향해 단순한 내용을 물었다. 그가 알고 싶어 한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시스템'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언제 보고를 받았고, 누가 보고를 했고 하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시스템'에 관련된 것이다.

시스템이 어떻길래 '북의 도발이 8월 4일 오전에 있었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다음날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했고, 통일부 장관은 고위급 회담을 제안할 수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포함된다. 

실제 지뢰 도발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5일, 박 대통령은 철원의 DMZ인근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해 "DMZ는 'Dream Making Zone(꿈이 이루어지는 지대)'"이라며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남북 화합의 길로 동참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뢰 도발을 알고도 남북의 화합을 제안했다면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북한이 의심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보수세력들의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 의원이 물은 것처럼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점이 중요하다. 국방장관의 말처럼 8월 4일에 보고받은 것인가. 

국방장관의 국회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또다시 청와대 관계자들이 기자들 앞에 섰다. 5년 전 장면과 동일하다. 청와대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기자실을 찾아 "한 장관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4일 보고한 내용은 'DMZ에서 미상의 폭발사고로 부상자 2명이 발생했다는 상황보고였고, 북한 목함지뢰에 의한 도발로 추정된다는 보고는 5일 오후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청와대가 장관의 발언을 정면에서 뒤집은 것이다. 

국방부도 같은 날 저녁 해명자료를 내고 "(한 장관이) 기억에 의존해서 발언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는 자신의 조직장을 '셀프 디스' 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행적을 옹호한 셈이 됐다. 

입다문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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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숙여 인사하는 한민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마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4일 늦게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국방장관의 기억이 맞는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유승민 의원이 궁금해한 '청와대 보고 시스템'이 주목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접한 청와대 조직이 어떤 보고라인을 거쳐서, 대통령에게는 최종적으로 누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관의 '기억'이 도마 위에 오른 지금,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존재한다. 지난 12일 '언제, 누가' 등 육하원칙을 따지며 묻는 유승민 의원을 상대로 국방부장관은 "4일 늦게 보고했다"고 대답했다. 

유승민 의원과 국방장관의 질의응답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장관의 뒤에서 발언지원을 위해 배석한 국방부의 고위 장군들도 유심히 청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청와대에서 "4일이 아닌 5일 오후다, 국방부장관이 틀렸다"고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는 "4일 늦게 보고됐다"라는 장관의 발언을 수정하지 않았다. 장관의 발언을 사후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는 대목은 인식을 공유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 무수히 많은 '별'들도 '잘못된 기억'을 장관과 공유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현재로써는 국방장관의 '잘못된 기억'이 문제인 것으로 매듭지어지는 모습이다. 청와대도, 심지어는 국방부에서조차 장관의 기억을 언급하며 '발언 실수'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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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5년 후... 또 다른 진실게임 국회에 출석한 국방부장관이 지뢰도발사건 관련해 상부에 지난 4일 보고했다고 발언했다. 청와대는 강력히 부인했다. 국방부는 장관의 '기억탓'으로 돌렸다. 이를 보도한 <경향신문> 15년 8월 14일자 ⓒ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14일 자 기사에서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 장관이 합참에서 지난 4일 밤 '북한 소행 가능성'을 청와대에 전달한 사실을 알고 국회에서 답변했다가 나중에 청와대를 의식해 말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고 장관의 '말 바꾸기' 의혹을 보도하고 나선 것이 언론 보도 중에서 주목되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국방부장관의 말이 틀렸다"라고 노골적으로 반박했다. 국방부도 장관의 '기억'을 운운하며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지난 5일 행적은 명분을 잃지 않게 됐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몰랐기에 '남북화합'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그로 인해 국방장관을 비롯해 지난 12일 함께 국회에 출석했던 국방부 고위장성들은 그 대척점에 서서 명분을 잃게 됐다.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위증'을 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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