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2dltQOR 
* 소제목은 보기 편하게 내용에서 뽑아 임의로 달았습니다.

고구려의 경제 구조에 대해
김용만 2005.04.04. 20:20


1) 고구려 초기 경제구조

아래에 고구려가 약탈 경제 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글이 있군요.

약탈 경제. 이것이 고구려의 경제구조를 설명하는 말인지, 아니면 경제체제를 말하는 것인지, 좀 분명히 해둘 필요는 있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이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친 경제체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경제구조를 의미한다고 해야 할텐데, 경제구조에서 약탈 경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즉, 고구려의 경제는 자급자족에서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에 크게 의존하여 고구려인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고구려가 약탈경제 구조를 가졌다고 말하는 근거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고구려전에 기록된 고구려는 넓은 평야가 없어서, 힘써 일해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음식을 절약한다는 내용, 그리고 동예 등으로 부터 식료품 등을 빼앗고, 좌식자라 불리는 놀면서 일도 안하지만 잘 먹는 사람들의 존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고구려가 약탈 경제라는 말은 적어도 초기에는 분명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고구려가 남의 것을 빼앗아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구려가 남의 것을 빼앗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지요. 

동예 등 약한 나라의 것을 빼앗는 것은 기록에 너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구려가 약탈의 대상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먹잇감은 "후한" 입니다.


2) 태조왕 시기 약탈경제

특히 태조대왕 년간에는 고구려의 후한 침략은 아주 분명한 목적을 갖고 침략을 밥먹듯이 합니다. 나는 종종 왜 고구려가 이렇게 침략국가, 약탈국가였음에도 우리 민족은 침략만 받아온 나라라고 했는지, 그것을 만든 놈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말을 앵무새 처럼 지껄이는 우리 선배들과, 일부 후배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참 너무 공부들 안한다. 삼국사기만 한번만이라도 읽어보지. 참.

어쨌든,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하는 목적은 그들이 가진 물건을 빼앗거나, 포로를 잡아오기 위함입니다. 후한에서는 고구려의 공격을 막으려고 하지만, 재빨리 약탈하고 도망가는 고구려 사람들을 잡기 힘듭니다. 또 이 부분에서 잡설 한가지. 어떤 고구려연구자 한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고구려가 후한을 습격한 것은 선비족을 손에 넣어 이들을 시킨 것이라고요. 그리고 더 나아가 북위나 수나라를 습격한 것도 거란족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요. 즉 고구려는 본래 습격할 능력도 없지만, 선비, 거란 등 유목민을 일시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왜 고구려가 농경민이기에 습격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려는 기병이 없나요. 기병도 없이 어떻게 선비, 거란족 등의 유목기병을 제압하나요. 고구려가 후한을 습격한 시점은 서기 110년대가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는 선비족은 고구려로 부터 떨어져 나간 시점입니다. 게다가 후한, 북위 등이 납치한 포로들을 돌려달라가 구체적으로 요청한 대상은 고구려이지, 선비나 거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선입견이란 이래서 무섭습니다.

어쨋든. 고구려는 후한으로 부터 막대한 재물과 포로를 돌려받는 재미로 수시로 침략을 했습니다. 그러자, 후한에서는 대책을 들고 나옵니다. 

첫번째는 지방군의 반격. 그런데 이들로는 고구려군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실정이지요. 

두번째는 주(州) 단위의 대군의 반격. 그런데 이런 경우 고구려는 재빨리 도망갑니다. 결국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세번째는 책구루를 통해 아예 정식으로 물건을 줍니다. 그러니 침략해오지 말고 아예 물건을 줄 터이니, 사이좋게 지내자는 방식이지요. 전한이 흉노에게 했던 방식의 축소판입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몇번 물건을 받아가다가, 점점 교만해져서,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후한의 불만을 삽니다. 왜 고구려가 책구루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을까. 그것은 그 물건의 양이 적은 것이지요. 그러니 고구려는 다시 습격을 합니다. 책구루가 무슨 고구려에 대한 책봉, 우월한 한 나라의 권위를 내세운 하사품의 창고 이런 것은 다 헛소리입니다. 


네번째는 책구루로도 안되는 만큼, 차라리 포로라도 돌려받자는 의미에서 성인 포로 1명당 베40필, 어린이는 20필에 교환을 합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고구려는 솔솔한 재미를 봅니다.

자.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아니 인구 5900만을 헤아린 대제국 후한이 뭐가 아쉬워서 고구려에게 이처럼 저자세를 취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냥 국가 단위의 징집령을 발동해서 대군을 동원해 습격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후한에게 고구려는, 수와 당에게 고구려와는 다른 존재였습니다. 후한에게는 고구려가 전력투구를 해서 멸망시킬 만큼 두려운 상대가 아니지요. 게다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동원할 여력이 안되었지요. 흉노를 비롯한 대적해야 할 다른 적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그러니, 고구려는 그저 위무정책으로 말썽만 안 피우는 정도에서 달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만큼, 고구려의 후한 침략이 고구려의 우위를 드러낸다는 것도 아닌 셈입니다. 그저 약소국이 강대국의 약점을 잘 활용해서 이익을 챙겼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3) 농업 경제로의 전환

그런데, 문제는 고구려가 언제까지 후한을 습격하는 약탈을 통해 국가의 부를 축적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후한은 부여와 친교를 맺으면서, 고구려를 견제합니다. 나중에 위나라는 선비족도 포섭하여, 244년 전쟁에서는 용병으로 활용하여 동천왕 군대를 격파시키기도 하지요.


그런만큼, 고구려로서는 태조대왕 말기에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습격을 하자니 선비족에 비해 점점 얻는 이익이 적고, 비용도 많아지지요. 그런만큼 효율성도 없고, 위험은 늘 상존하지요. 잘못하면 대대적인 반격을 받게 될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농사를 짓자니 그 다지 넓은 평야도 없었지요.

그때 태조대왕이 훌륭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새로운 배후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바로 책성 지역의 개척이 이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태조대왕은 요동과 낙랑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도 하지요. 즉 빠르게 약탈 경제의 비중을 줄이고, 농업 경제의 비중을 높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것이 고구려가 더 큰 성장을 하게 된 원인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에 대한 약탈을 2세기에 정점에 올랐고, 그 이후로는 약탈을 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은 전체 경제에서 그 다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즉 고구려는 농업경제 국가가 된 셈입니다.

고구려가 상업이 발달하고, 국제 교역이 활발했고, 광공업도 성장했다고 하지만, 전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최고의 산업은 역시 농업이 것입니다. 전형적인 통상국가인 소그드왕국 처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니며, 농업에만 의존하여 제한적인 무역을 했던 조선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상업과 무역에 종사했던 것이 고구려입니다.


4) 결론

결론을 내리자면, 


고구려는 농업 경제 국가입니다. 약탈 경제는 2세기 때에 그 비중이 높았지만, 곧 농업 경제로 변신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이의 성공적인 전환이 곧 고구려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상업, 광공업은 그 비중이 조선에 비해 컸으나, 전형적인 상업국가들 비교할 때에는 그 산업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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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05.04.04. 18:17

얼마전 고구려사를 정리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거기서 저는 6대 태조대왕~10대 산상왕까지를 "2. 고구려의 독자적 문명형성기"로 구분했습니다. 이 시기 고구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전 시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라면 활발하게 진행되던 고구려의 "대외정복기록"들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부쩍 후한의 침입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외침을 고구려는 모두 막아내는데 이건 고구려가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해 후한과의 차별성을 둔다고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외정복이 사라짐과 동시에 고구려에는 중국의 유민들이 수만 단위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게 과연 뭘 뜻하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는 내부적으로 경제 개혁 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 시스템 자체를 크게 변화시킵니다. 대외지향적이 아니라 내부체제변화로 돌아선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고구려의 국력 축적이 훗날 동천왕과 고국원왕 시절 국란을 맞이하고도 회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고선지장군 05.04.05. 00:12

고구려가 건국이후 중앙집권국가체제로 발돋음 하기 전의 경제, 사회상황을 새롭게 알게 된것 같네요. 어쨌든 결론적으론 약탈경제가 시기에 국한된 단어이지만, 고구려초기에는 약탈경제라고 충분히 평가할수 있다는 내용이네요.


麗輝 05.04.05. 01:31

그런 셈이죠. 그리고 약탈경제라는 용어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고구려는 그런 약탈경제라는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해서 농경을 주력으로 하는 경제구조를 구축했고, 아울러 다양한 경제구조를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국이었습니다. 그걸 명심하십쇼~

 
영락태왕 05.04.11. 10:33

고구려는 단일민족에 의해서 통치된 국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사방에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전쟁에 의해 수많은 유민들이 고구려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고구려는 당연히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제국의 모습을 띠게 되고 전성기때는 동방4국의 하나가 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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