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호동왕자, 큰어머니를 탐했다고?
[사극으로 역사읽기] 낙랑공주 죽음으로 내몰고, 제1왕후 때문에 자살한 호동왕자
11.01.31 11:20 l 최종 업데이트 11.01.31 11:20 l 김종성(qqqkim2000)


▲  SBS 드라마 <자명고>의 호동왕자(정경호 분). ⓒ SBS

'호동왕자' 하면 '낙랑공주'와 '자명고'가 떠오른다. 고구려 대무신왕(재위 18~44년)의 제2왕후에게서 태어난 호동(好童)은 얼굴이 잘나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말 그대로 '잘난 남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낙랑공주가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그의 꼬임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호동은 잘난 얼굴을 무기로 여자(낙랑공주)의 인생을 망쳤지만, 결국 '또 다른 여자'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편을 살펴보자. 

호동은 잘난 얼굴을 무기로 낙랑왕 최리의 딸 즉 낙랑공주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옥저 지방을 관광하다가 최리의 눈에 띄어 그의 사위가 된 것이다. 결혼하자마자 고구려로 돌아온 그는 은밀히 공주에게 사람을 보내 낙랑의 비밀병기인 자명고(自鳴鼓)를 찢어버릴 것을 요구했다. 

스스로(自) 울린다(鳴)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자명고는, 적군이 침투하면 자동으로 울리는 북과 나팔을 가리킨다. "자명고를 찢지 않으면 다시는 만나주지 않겠다"는 것이 호동의 협박이었다. 잘난 얼굴을 활용해 낙랑공주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잘난 남자를 이용한 일종의 고구려 '미남계'였다. 정치적으로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 호동은 '나쁜 남자'였다. 

적군의 침입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자명고가 실제로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현대 과학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낙랑의 특정 지역을 통과하는 대규모 군사이동으로 인한 파장과 낙랑 궁궐에 보관된 자명고의 파장이 일치할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공명현상(共鳴現狀)이라 한다. 공명현상을 이용한 장비가 바로 MRI(자기공명영상 진단장비)다. 

'자명고를 찢지 않으면 우리는 끝'이라는 호동의 협박을 못 이긴 낙랑공주는 결국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했고, 자명고가 찢겨진 틈을 놓치지 않고 고구려는 낙랑을 침공해 낙랑왕 최리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낙랑은 자명고만 믿고 국경경비를 소홀히 했으니,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고구려의 침공을 당했던 것이다. 

항복 직전에 최리는 자기 딸을 죽여 버렸다. '나쁜 남자'의 꼬임에 넘어간 낙랑공주는 그렇게 '나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때가 대무신왕 15년 4월(서기 32.4.29~5.28) 이후였다. 참고로, 한·중 양국의 사료에 나오는 대부분의 연도는 양력이 아닌 음력이다. 이런 경우에 4월을 양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논문과 역사책에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1왕후, "호동이 저에게 음란한 생각을 품은 것 같아요"


▲  <자명고>의 낙랑공주(박민영 분). ⓒ SBS

자명고가 찢기고 낙랑공주가 죽고 나서 몇 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32.12.21~33.1.19)의 일이었다. 낙랑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공로를 세운 호동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큰 공을 세운 덕에 차기 대권을 꿈꿀 수 있게 된 전도유망한 왕자가 갑작스레 목숨을 끊었으니 참으로 날벼락 같은 뉴스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호동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낙랑공주의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였을까?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호동이 자살한 것은 큰어머니(제1왕후)를 탐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낙랑공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서 큰어머니까지 탐했다니, 이런 호래자식이 어디 있나!'라고 분개하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혐의는 순전히 중상모략이었기 때문이다. 제2왕후의 소생인 호동이 큰 공로를 세우자 이 때문에 혹시라도 그가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 제1왕후가 꾸며낸 조작사건이었던 것이다.

호동의 승승장구에 불안감을 느낀 제1왕후는 대무신왕에게 "호동이가 저한테 예의를 다하지 않네요. (저에게) 음란한 생각을 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헐뜯었다. 호동이 자신을 어머니로 예우하지 않는다면서 그건 아마도 자신을 이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호동을 총애한 대무신왕은 제1왕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남의 자식이라고 미워하는 겁니까?"라고 왕은 쏘아붙였다. 지금 왕을 설득하지 못하면 나중에 자신이 도리어 화를 입을 것이라고 판단한 제1왕후는 어떻게든 자기 말을 믿도록 하기 위해 급기야 눈물까지 펑펑 흘렸다. "대왕께서 한 번 몰래 살펴보세요. 만약 이런 일이 없다면 제가 벌을 받지요."

정 못 믿겠거든 호동의 행동을 몰래 관찰해보라는 이야기였다.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 호동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한 번 지켜보라는 말이었다. 제1왕후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대무신왕의 마음속에서 호동에 대한 의심이 싹텄다. 호동이 큰어머니를 탐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금세 자라서, 왕은 호동을 처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무신왕과 호동의 나이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무신왕은 11세에 태자가 되어 15세에 즉위했고 대무신왕 15년 현재 29세였다. 대무신왕 15년 4월에 호동이 낙랑공주와 혼인을 하고 낙랑을 상대로 정치공작까지 전개했으니, 이때 호동의 나이는 10대 중반이나 후반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1왕후와 호동의 나이차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이차가 열 살 미만이었을 수도 있다. 대무신왕이 제1왕후의 말을 믿은 데에는 이런 요소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호동이 꽃미남이라서 평소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점도 그 순간에 대무신왕의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내가 해명하면 왕에게 근심 끼치는 일"... 끝내 자살한 호동왕자

아버지가 자신을 처벌하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도 호동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갈 생각도 안했고 해명할 생각도 안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왜 가만히 있느냐고. 

호동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만약 해명한다면 이거는 (큰)어머니의 악을 드러내고 왕에게 근심을 끼치는 일이니 어찌 효(孝)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마치고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것은 큰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불효이기 때문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었다. 


▲  <자명고>에 나온 대무신왕의 제1왕후(성현아 분). ⓒ SBS

이 일을 두고 김부식은 호동이 오히려 불효를 범했다고 평가했다. 호동의 행동으로 인해 아버지 대무신왕이 죄 없는 자식을 죽인 셈이 되었으므로 호동은 불효를 범한 것이라는 게 김부식의 평가였다. 그러나 호동의 죽음은 효냐 불효냐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하다. 물론 호동은 효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고 말했지만, 거기엔 보다 더 본질적인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호동이 죽자마자 제1왕후의 아들인 해우(훗날의 모본왕)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는 호동이 죽기 전에 후계구도를 둘러싼 정치투쟁이 이미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투쟁의 와중에 자살을 택한 것은 그가 자신의 패배를 예감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왕위 투쟁에서 패배한 왕자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닌가. 그러므로 호동을 사지로 몰아넣은 본질적 요인은 정치투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제1왕후의 아들인 해우는 거의 갓난아기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제2왕후는 일찌감치 호동이라는 왕자를 낳은 데에 비해 제1왕후는 오랫동안 왕자를 낳지 못했던 것이다. 자명고 사건을 계기로 호동의 위상이 급부상하자, 제1왕후 측에서 초조한 나머지 갓난아기를 후계자로 내세워 정치투쟁을 전개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호동의 라이벌은 해우가 아니라 제1왕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호동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제1왕후였다. 

순진한 낙랑공주를 죽음으로 내몬 '나쁜 남자' 호동은 얼마 안 가서 제1왕후의 계략에 휘말려 큰어머니를 탐했다는 '추잡한' 누명을 쓰고 결국 그 자신도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서두에서, 호동이 잘난 얼굴을 무기로 여자의 인생을 망쳤지만, 결국 '또 다른 여자'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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