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paran.com/lovegyodong/20412750 


화개산성이 오두산성보다 관미성에 가까운 이유
 1. 관미성은 화개산성을 가리키는가?  
 2. 오두산성이 관미성인가 ?  
 3. 관미성 위치의 여러 가지 설  
 4. 화개산성이 오두산성보다 관미성에 가까운 이유 세 가지  

1. 관미성은 화개산성을 가리키는가? 

기원전 1세기경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비류, 온조 집단은 한강 유역에서 연맹체를 형성하였고 다시 온조 집단으로 합치면서 강화를 포함하고 있던 미추홀 지역이 백제에 편입되었다. 백제가 요서 지방을 경략하는 등 주변지역의 행상 교역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강화지역은 더욱 중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대왕은 즉위 초부터 맹렬하게 백제공격에 나섰는데 그 시대에 백제는 같은 민족이 아니라 조부(고국원왕)를 죽인 불굴대천의 원수였다. 그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주 전선은 예성강 유역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재위기간동안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확장시켰는데, 예성강을 경계로 백제에 대해서는 즉위 초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였다. 광개토대왕2년(19세,392년) 석현성 (개풍군 북면 정석동)을 비롯한 10개 성을 빼앗고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 4년(21세)에는 수곡성(지금의 신계), 광개토대왕 5년(22세,395년)에는 패수(지금의 예성강)에서 침공해 온 백제군을 격파하고 백제와의 접경지대에 7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으며, 광개토대왕 6년(23세,396년)에는 한강 너머에까지 진격하여 58성 700촌락을 공략하여 왕제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관미성은 삼국사기를 역주한 사학자 이병도에 따르면 “강화 교동도를 가리킨다.”로 되어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교동도라 주를 달고 있는 등 많은 사학자들이 교동도를 비정하고 있다.

<이병도 박사의 역주>

"관미성은 광개토왕비에 나타나는 백제성 이름 중의 각미성(閣彌城) 그것이 아닌가 한다. '각(閣)'과 '관(關)'은 글자모양도 비슷하고 음도 비슷하므로 혹 혼용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성이 지금 어느 곳인가에 대하여 나는 일찍이 경기만의 교동도에 비정한 일이 있다. 교동은 고구려 소유시대에는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였다. '고목'은 '고마' '고무'의 사음(寫音)으로 '관미', '각미'와도 상관이 있는 말인 듯하며 더욱 그 지리로 보아 양자의 비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섬의 유명한 '화개산성(華蓋山城)'은 후세의 개수를 많이 거친 것이지만 실상 백제, 고려 이래의 고성일 것이다. 목은 이색의 시에 '해중화개삽청천(海中華蓋揷靑天)'이라 함과 같이 험고한 곳이다. '각미', '관미', '고목'등은 이 화개의 고칭(古稱)일는지 모르겠다.

또 광개토대왕의 백제방면 정토가 본 '사기'에는 차년조(此年條) 이후에는 더 보이지 아니하나 광개토대왕 비문에 의하면 익(翌) 6년에 왕이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대대적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58성, 7백촌을 함락 하고 그 도성(漢城)을 포위 공격하여 백제왕의 항복과 동시에 성밑 맹(盟)을 맺고 남녀 1천 명과 세포 1천필의 헌출을 받고 인질로 왕제(王弟)와 대신 10명을 데리고 환도하였다"


2. 오두산성이 관미성인가 ? 

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산86에 속하는 오두산성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많다. 오두산은 한강과 임진강 하류가 맞닿은 곳에 표고 119m로 솟아있으며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북한 지역이 남쪽으로는 김포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서쪽으로는 한강이, 북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 두강이 만나서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에 위치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오두산성은 현재 정상에 통일전망대가 들어서 있어 그 규모와 원형이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고 산 정상부근에는 여기저기에 성벽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으며 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를 통하여 계속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한국전쟁이후 거의 유실 파손되었으나 1990년 9월부터 1991년 11월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규모가 밝혀지고,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토기, 백자, 기와, 철촉 등의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김명우 박사는 "광개토대왕의 남하정복지에 대한 일고"라는 논문에서 ▲강화연안소재설 ① 교동 ② 강화도, ▲임진강 하구소재설, ▲예성강 하구소재설 ① 중류북안설 ② 하구 북안설 ③ 하구 남안설중 임진강 하구소재설을 지지하면서 관미성 위치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두산성은 이미 조선시대 중엽부터 삼국시대의 성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또한 이 성의 형세는 현재로서는 3면이 초절(哨絶)하고 해수가 환요(環汀)하고 있으나, 고대에 있어서는 4면초절(四面哨絶)의 형세를 이루고 있던 천험의 요새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곳 오두산은 곧 지금의 임진강과 한강의 하류가 만나는 곳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임진강하류가 둘러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하류가 둘러 있으며, 서쪽 연안부근에서 두강의 하류가 합류하여 서해의 해문으로 흘러 들어간다. 산 주변의 연안지대가 모두 가파른 형세이고, 북쪽으로는 임진강하류를 건너면 바로 개풍군(개성)지역에 닿는다. 때문에 광개토왕이 남하할 때 개성 지역을 통과하여 임진강을 도하하든지, 아니면 서해 쪽에서 수군을 이끌고 한강하구 쪽으로 진입하든지 이곳은 지리적으로 남에서 북을 방비하는 매우 중요한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3. 관미성 위치의 여러 가지 설 

한편 이형석 박사(백두문화연구소)는 당시 고구려의 수도는 국내성이었으며 광개토왕은 수군을 이끌고 침공하였으므로 왕은 국내성에서 압록강을 따라 황해에 이르고 초도→장산곶→옹진 앞 바다를 거쳐 황해도 연안군과 강화도의 불음도 사이를 지나 교동에 상륙, 고구려성(토성)을 쌓고 관미성을 공격했으리라고 추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강의 입구인 개풍군과 강화도 사이를 지나고 한강을 따라 하남 위례성(아차산성)을 침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관미성을 강화도 북단의 별립산(400m)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또한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의 저자 해양문화연구소장인 윤명철 박사는 별립산 북쪽에 있는 봉천산 지역으로 비정하는데 봉천산에는 토성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한편, 삼국사기 <백제본기 진사왕조> 진사왕3년(387년) 정월에 "「진가모」를 달솔로 삼고 「두지」는 을솔로 삼았다. 가을 9월에 말갈과 관미령(關彌嶺)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도학 박사는 「삼국사기」 권 23 백제온조왕본기 10년조에 보이는, <왕이 말갈군을 곤미천(昆彌川)에서 방어하다 패한 백제군이 청목산(개성송악산 또는 청석동 부근 산으로 추정)으로 후퇴하였다>는 기사에 의거하여 곤미천을 예성강으로, 청목성을 개풍군의 청석동으로 비정한 후에, 삼국사기 전24 백제 진사왕 본기 3년조에 보이는 관미령이 관미성과 관계있는 이름으로 보고 "7중성(七重城)과 7중하(七重河)의 관계처럼 관미령 역시 곤미천과 관련 있는 지명으로 보여 개성근처의 고개가 된다. 이 관미령에 북변요새지인 관미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관미성은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로 들어진데 자리 잡았다고 하였으므로 예성강 남안에 위치함이 된다"고 말하였으며, 여기에는 북한학자 박시영 박사와 이형구 박사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 국내성에서 광개토왕이 수군을 이끌고 왔다면 개성부근의 고개에 있는 성 또는 오두산성은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4. 화개산성이 오두산성보다 관미성에 가까운 이유 세 가지 

오두산성은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토기, 백자, 기와, 철촉 등 유물이 다수 발견됨으로 인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축조된 성으로 확인되어 오두산성이 관미성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미성이 오두산성일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만만치 않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오두산성이 관미성이라 표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화개산성은 성의 규모가 적어 많은 수군이 상륙하였다는데 동의하기가 쉽지 않으며 따라서 오두산성을 관미성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교동의 화개산성이 오두산성보다는 관미성일 가능성이 더 많다고 주장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를 필자가 들어보겠다. 

첫째는, 백제와 고구려의 당시의 주전선은 예성강이었다는 점으로 오두산성은 임진강에 접하고 있으므로 주전선을 예성강보다 동남쪽인 임진강으로 옮긴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광개토대왕이 수군을 이끌고 관미성을 침공한 392년의 2년 후인 394년 백제군과 수곡성에서 전투한 것으로 미루어 평산군, 금천군, 토산군, 평천군, 배천군, 개풍군 등은 백제의 영토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임진강 유역을 통해 육지로 고구려가 침공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둘째는, 삼국사기에 "그 성(관미성)은 사방이 험란하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基城四面絶海水環繞)"는 기록인데 관미성은 천연의 험준한 지세위에다 축조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고 사방에 바다로 싸인 장소에 위치 하었음을 추정케 한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2 신라편에 보면 "해구군은 본시 고구려의 혈구군으로 경덕왕이 개명, 지금 강화현이니 영현이 셋이다(중략.)그중 교동현은 본디 고구려의 고목근현으로 해중의 섬(高木根縣海島也)" 이라는 기록에 부합된 다는 점. 그리고 목은 이색의 시에 "해중 화개삽청천"이라 하여 화개산성은 험란하고 높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오두산성은 지금의 파주시 탄현면인 바, 삼국사기 동 신라편에는 교하군으로 언급되어 있는바 "교하군은 본시 고구려의 천정구현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영현이 둘인데 봉성현은 본시 고구려의 술이홀현, 고봉현은 본시 고구려의 달을성 현인데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라고 간단히 기술되어 있다는점 〔잡지제6 지리4 고구려편에 보면 한산주 소속에 천정구현(파주군교하면)과 고목근현(강화군교동면)이 나와 있다.

셋째는, 삼국사기에 "그 성은 사방은 가파르고 바닷물에 둘러 싸여있다"고 기록되어있는바 화개산성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천연의 요새이고 오두산성은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이 닿아 있고 두강이 만나서 서해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에 위치해 있을뿐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는 서술과 틀리며 화개산은 높이가 259.5m로 높고, 오두산은 119m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 등이 삼국사기 관미성의 서술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관미성에 대한 숙제를 풀기위해서는 교동의 화개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빨리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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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고구려 영역확장사 연구: 공석귀 서경문화사 1999.10
○ 고구려의 대외정복연구 : 이인철 백산자료원 2000.3
○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 윤명철 사계절 2000.10.
○ 삼국사기 : 이병도역주 을유문화사
○ 강화 향토사 연구 : 이형석 내고장인천 2000.3월 1996
○ 한국사의 이해 <광개토왕의 남하정복에 대한 일고> : 김명우, 1991년 윤내현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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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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