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결' 대법원... 정봉주, 닥치고 수감?
[기고] 정봉주 전 의원 변호인 이재화
11.12.22 20:13 ㅣ최종 업데이트 11.12.22 20:27  이재화 (news)

▲ 대법원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게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린 가운데,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 전 의원이 고개를 숙이고 대법원을 떠나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을 1심부터 상고심까지 변론하였던 변호인이다. 변호인들은 판결 후에 그 판결에 대하여 논평하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글을 올린다.
 
정봉주 의원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 항소심 판결(2008노1607)은 2008년 12월 11일에 선고되었고 정 의원은 이날 상고를 하였다. 공직선거법에는 '선거범에 대한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제2심, 제3심은 전심의 선고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3년 11일 만에 선고를 했다. 대법원이 3년 후에 내놓은 판결문은 고작 9쪽짜리 판결이고, 그 내용도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요약한 후 아무런 구체적 이유없이 '원심판단은 정당하고 위법이 없다'는 형식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오늘(22일)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본 변호인은 도대체 3년 동안 대법원을 무엇을 심리하였고, 무엇을 연구하였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성의없는 짤막한 판결을 위해 3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였는지,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에 정하는 판결선고 기간을 어기면서까지 사건을 몇 년간 미루면서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주심을 맡았다. 그런데 양 대법관은 2011년 2월까지 이 사건을 캐비닛에 넣어놓고 판결을 선고하지 않았다. 양 대법관은 왜 법에 정한 기간 동안 판결을 할 수 없었을까? 아니 왜 판결을 하지 못하였을까?
 
그리고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된 이상훈 대법관이 이 사건 주심을 맡았다. 이 대법관도 주심을 맡은 지 10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대법관은 10개월 동안 무슨 고민을 하였을까? 이왕 공직선거법에서 정하는 기한 동안 판결하지 못했는데 왜 굳이 이 시기에 판결을 선고하였을까?.
 
최근 '김경준 기획입국'에 대한 가짜편지사건 등 BBK 사건에 대한 진실이 하나 둘씩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때, <나는 꼼수다>에 대한 국민들의 열광적 성원, 이에 대해 현 정부의 SNS에 대한 규제 운운하는 이때, 제19대 총선이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이때, 왜 대법원은 3년 동안 미루어온 판결을 선고하였을까?
 
대법원은 이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놓아야 한다. 만약 합리적인 이유를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대법원이 '판결'한 것이 아니라 '정치'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 행정처가 혹시 '검토할 사항이 많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이 사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판결문에 그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판결문에는 그러한 흔적이 전혀 없다. 변호인의 상고이유에 대해 답해야 하니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몇 글자만 기재해 놓았을 뿐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변명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의 솔직한 고백만이 국민을 납득시킬 수있다.
 
재판부 성향에 따라 유죄와 무죄로 운명이 달라진 두 사건
 
▲ 대법원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게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린 가운데,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 전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BBK진상조사단으로 정봉주 의원과 함께 활동했던 김현미 의원의 공직선거법 사건도 변론했다. BBK와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정봉주와 김현미 의원 단 2명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할 무렵, 이명박 후보자 측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2명은 형사처벌 시키겠다"고 하였고, 검찰은 다른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내지 불기소처분을 하면서도 위 두 사람에 대하여서는 기소를 하였다.
 
김현미 의원의 공소사실 요지는 '이명박 후보자가 다스와 도곡동 땅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발언은 허위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 제11형사부(부장 이기택)는 2008년 12월 17일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명박 후보자가 다스와 도곡동 땅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부터 제기되어 이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 있었고, 그러한 의혹은 김만제의 언급에 대한 보도뿐만 아니라 2007. 8. 13.자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이후에도 도곡동 땅 매도대금 중 일부가 다스의 증자대금으로 사용되었고, 다스의 BBK 투자금이 LKe뱅크의 자본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언론보도 등에 의하여 뒷받침이 되고 있는 점, 그 후 2007. 12. 5.자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명박 후보자가 다스의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발표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국민의 상당수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불신하였고, 이러한 불신은 김경준의 자필메모,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들과의 면담 내용 공개 등에 의하여 더욱 증폭되었으며, 결국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전면적인 재수사를 하기까지 한 점, 피고인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변인으로서 당론에 따라 위 브리핑을 한 것인 점, 위 브리핑은 이명박 후보자의 재산헌납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매표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그 설득력을 높이기 위하여 그 동안 줄곧 제기해 왔던 차명재산의혹을 다시 한 번 언급한 것에 불과하고, 거기에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근거를 들어 위와 같은 의혹이 진실인 것처럼 호도한 것은 아닌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으로서는 이명박 후보자가 다스와 도곡동 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와 같이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도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인에게 허위사실공표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위 고등법원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은 2009년 6월 23일 "원심판결은 모두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2009도174판결). 정봉주 의원의 발언은 대부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전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라는 점, 언론보도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를 하였다는 점, 국민 다수가 검찰의 수사를 믿지 아니하였다는 점, 검찰수사 결과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됨에 따라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명박 후보자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여부 등에 관하여 전면적인 수사를 하도록 하였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 김현미 의원 사건과 정봉주 의원 사건은 사실상 동일한 사건이다.
 
그런데 정봉주 의원의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부장 박홍우)는 "피고인이 공표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서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1년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은 위 고등법원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이처럼 동일한 두 사건은 고등법원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유죄와 무죄로 그 운명이 달라졌고, 대법원 재판부의 성향과 재판의 시기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졌다. 이 상반된 두가지 판결을 두고 국민들은 과연 어느 판결에 장단을 맞추어야 하는 것인가. 전문가인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검찰수사에 대하여 일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인가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정봉주 의원 사건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의 논지는 두가지다. 그 하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자가 'BBK에 관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자신은 관련이 없다'라고 발언했는데 그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도 아니한 채 발언을 하였다는 것이고, 그 둘은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더 조사를 하여 김경준을 만나 이 사건 의혹의 진정성, 김경준이 제시한 서류와 그 동안 제시되었던 BBK 관련 서류가 진정하게 작성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발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발언 하였다는 것이다.
 
위 고등법원 판결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자가 해명한 것과 검찰의 수사발표가 진실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논리는 의혹의 한 당사자에 불과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자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검찰의 수사에 왜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검찰 수사를 비판하려면 검찰보다 더 많은 수사를 해 검찰이 명백히 편파수사 내지 부실수사를 하였다는 명백한 근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적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해명하면 그 해명이 합리적인 것인지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국회의원이 검찰과 같이 수사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그 동안 확보된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경준이 구속수감 중이었는데 어떻게 그를 만나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되었는지 확인한다는 말인가.
 
변호인인 나는 위 고등법원 판결을 보고 과연 재판부는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민주주의사회에서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이 정도의 발언도 하지 못하게 하면 과연 합리적 여론 형성과 후보자 검증은 어떻게 하란 말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와 같은 고등법원 판결에 대하여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것도 절묘한 타이밍에 선고한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지 오늘 대법원은 삼엄한 경비 속에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례적으로 방청객 수를 제한하고 철저한 몸수색을 한 후, 수많은 경비원들을 도열시킨 가운데 '피고인 정봉주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을 하였다. 오늘 대법원 판결을 본 국민들은 대법원이 정치적 고려없이 법리대로 판결했다고 믿을까? 사법부의 정의는 살아있다고 믿을까?
 
법조인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정말 우울한 하루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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