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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인물들 <초기>

고구려의 인물들 <초기> - 역사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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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인물들 <중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566
고구려의 인물들 <전성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6
고구려의 인물들 <후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7



1. 동명(추모)성왕고구려의 시조이며, 내부 단결을 도모했으며, 훌륭한 신하들을 등용하였다.
 

오이(장군) : 부여 탈출과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고구려 건국 초기의 장군으로서 부분노와 같이 행인국을 점령하였다.

마리와 함께 양맥을 공격하였다. 사서에는 최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2대째에 이르러 왕을 섬겼다.

             

마리(장군) :  부여 탈출과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오이와 함께 2만의 군사로 양맥을 쳤으며, 고구려현을 공격하였다.

2대째에 이르러 왕을 섬겼다.

 

협보(장군) :  부여 탈출과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정사에 소홀한 유리명왕에게 간언하였으나 노여움을샀다.

이에 분개하여 남쪽의 한(韓)나라로 이주하였다.

당시의 관직은 대보라고 한다.

 

재사(대신) :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무골,묵거와 함께 모둔곡에서 주몽에게 간언한 3명의 현인중 1명이다.

극씨 성을 하사받았다.

 

무골(대신) :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재사,묵거와 함께 모둔곡에서 주몽에게 간언한 3명의 현인중 1명이다.

중실씨 성을 하사받았다.

 

묵거(대신) :  고구려의 건국에 주몽을 수행하였다.

재사,무골과 함께 모둔곡에서 주몽에게 간언한 3명의 현인중 1명이다.

소실씨 성을 하사받았다.

 

부분노(장군) :  고구려 초기의 명장이다.

부위염과 함께 행인국을 공격하여 그곳을 성읍으로 만들었다.

선비족이 침입했을때에는 이를 이용하여 적의 빈 성을 점령하여 항복시켰다.

 

부위염(장군) :  고구려 초기의 명장이다.

북옥저를 공격하여 그곳을 성읍으로 만들었다.

 

연타(취)발(대신) : 졸본부여의 실력자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소서노를 주몽의 아내로 맞이시켰다.

 

다물후 송양(제후) :  비류국의 왕으로 동가강 유역의 지배자였으나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딸을 유리왕의 비로 맞이시켰다.

 

구도,일구,분구(대신) :  동명성왕이 나라를 개국할때에 보좌한 인물들.

대무신왕대에 들어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추발소의 처사에 뉘우친 자들이다.

 
 

2. 유리명왕 : 부분노,오이,마리등의 주몽대의 인물이 그를 보좌하였다.
 
 설지(대신) :  제사에 쓸 돼지를 놓쳤으나 국내성의 땅에서 가까스로 잡았다. 
 
그러나 그땅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해명태자(왕자) :  힘이 장사였으며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음에도 졸본에 있었다.

전시중에 유리명왕의 군사를 빼돌려 적을 쳤으나 전멸당하였다.

이에 나라사람들의 신뢰를 잃었고, 유리명왕의 꾸짖음에 부끄러워하여 여진의 동원에서 자결하였다.

 

연비(장군) :  신나라의 왕망이 고구려에 명하여 흉노를 토벌케 하려하나 고구려는 현도군을 공격하였다.

이에 엄우가 고구려를 치니 연비가 대적하였으나 전사하였다. 그의 목은 장안으로 보내졌으며 이때문에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로 비하하였다고한다.

 

위사물(대신) :  우씨와 함께 국내성지역의 토착세력으로 보인다. 유리명왕이 등용하였다.

위씨 성을 하사받았다.

 

우씨(대신) :  위사물과 함께 국내성 지역의 토착세력으로 보인다. 유리명왕이 등용하였다.

양 겨드랑이에 날개같은것이 달렸다 하여 우씨 성을 하사받았다.

 

을소(대신) :  을파소의 조상이다. 유리명왕대의 대신.

 

도조,옥지,구추(장군) :  유리가 고구려고 갈 때에 그를 수행하였다.

 

사비,탁리(대신) :  교시(제사에 쓰이는 돼지)가 도망치자 장옥택에서 돼지의 힘줄을 끊었다.

이에 왕이 노하여 그들을 생매장시켰으나 발병하니, 무당은 사비와 탁리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왕이 무당을 통해 그들에게 사죄하니 병이 나았다.

 

도절(왕자) :  태자로 있었으나 부여왕 대소의 부름이 두려워 나가지 아니하였다.

이에 대소왕이 노하여 5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일찍죽어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다.

 

 

3. 무휼태왕 : 나라를 잘 다스렸으나, 형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 불운의 대왕이다.

 

괴유(장군) :  대무신왕이 부여국을 치러갈 때 만난 장수이다.

키는 9척정도의 장신이며 힘은 장사였다고 한다.

대소왕을 죽였으나 후에 포위되어 마로와 함께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마로(장군) :  적곡출신이며, 대무신왕이 부여국을 치러갈 때 만난 장수이다.

창술이 매우 뛰어나며, 부여국을 치러갈 때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대소왕이 죽은 이후 포위되어 괴유와 함께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다.

 

낙씨왕(제후,대신) :  대소왕의 사촌동생이다. 백성 1만여호를 이끌고 고구려로 귀순하였다.

대무신왕에게 낙씨 성을 하사받았으며 연나부를 다스렸다고한다.

 

을두지(대신) :  요동태수가 고구려를 대침공하였을 때 계책을 사용한 고구려의 재상이다.

송옥구가 대군을 상대로 전면전은 어려우니 기습을 요청할 때 그는 지구전을 주장하였다.

후에 양국의 군량이 떨어져 갈 때에 꾀를 내어 잉어를 보내었다.

이에 요동태수는 아군은 식량이 떨어졌으나 고구려는 물이 풍족하다 생각하여 철군하였다.

 

송옥구(대신) :  요동태수가 고구려를 대침공하였을 때 계책을 요청한 고구려의 재상이다.

자신은 대군을 상대로 전면전은 어려우니 기습을 요청하였으나 을두지는 지구전을 주장하였다.

(이후내용 위와 같다.)

 

추발소(대신) :  구도,일구,분구가 폭행을 일삼다 파직되었을 때에 이들의 죄를 뉘우치게 하였다.

그때의 관직명이 비류부장이였으며, 왕이 그 공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대실씨 성을 하사받았다.

 

호동왕자(왕자) :  한족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대책을 알려준 왕자이다.

우선 낙랑국을 멸하고, 현도군과 요동군을 친다는 대책이었다.

옥저와 함께 낙랑국을 치려는 길에 낙랑국의왕 최리를 만나서 그곳의 공주와 인연을 맺는다.

후에 공주로 하여금 자명고를 찢어 없애게 하였고, 왕은 노여워하여 공주를 죽이고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낙랑을 고구려에 편입시키는대에 큰 공을 세웠으나 첫째왕비의 모함에 슬퍼하며 자결하였다.

 

배극(장군) :  배극이란 이름은 가명이다.

본래 대무신왕과 어려서부터 친구였고, 후에 대무신왕은 그에게 배극태대장군이라는 관직을 주었다.

배극은 후에 사람들이 그를 추증한 시호이다.

 

상수(대신) :  고구려 초기의 세력가이다.

 

위수(대신) :  상수의 동생이다.

그의 동생인것으로 보아 위수 또한 고구려 초기의 세력가인듯 하다.

후에 대무신왕에 투항한것으로 보아 권세를 잃고 대신이 된 것으로 보임.

 

우도(대신) :  상수의 사촌동생이다.

그의 사촌동생인것으로 보아 우도 또한 고구려 초기의 세력가인듯 하다.

후에 대무신왕에 투항한것으로 보아 권세를 잃고 대신이 된 것으로 보임.

 

최리(대신) :  낙랑국의 왕이었으나, 호동왕자의 계책으로 자명고가 손상되었다.

이에 왕이 노하여 공범이었던 자신의 딸을 죽이고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4. 민중태왕 : 즉위 4년밖에 안되어 병으로 인하여 죽었다. 때문에 알려진 장수가 많이 없으며,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한 것 외에는 알려지는 업적이 없다.

 

대승(대신) :  민중왕대에 대가 직을 수행하였다.

후에 한나라 낙랑군으로 가서 한나라에 귀부했다.

 

 

5. 모본왕 : 중국에 원정전쟁을 하였으며, 지나친 왕권강화 때문에 살해당하였다.


두로(대신) :  모본왕의 충실한 신하이다.

왕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실정이 많은탓에 두로가 겁을 먹었다.

이로인하여 모본왕을 죽였다.

 

4장군(장군) :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필자는 4명의 장군이란 뜻에서 4장수라 표현하겠다.

모본왕이 북경동북 300리에 위치한 우북평, 북경 동북지역의 어양, 중국의 북방 전진기지인 상곡, 서하항과 흉노 북쪽을 잇는 태원을 장수를 시켜 공격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4장군이다.

 

태자 익(왕자) :  모본왕이 태자로 삼았으나, 나랏사람들의 강력한 반발로 왕이 되지 못한 불운의 태자이다.

 
 

6. 태조태왕 : 화려평야와 산둥반도를 점령하였고, 고구려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부여태후(태후) :  태조대왕의 어머니로서 강단이 있느 여자라고 한다.

고조선의 영토를 수복하기 위하여 동옥저를 멸하였고, 동쪽국경을 창해까지 확대하였다.

 

달가(장군) :  부의 족장이었다. 72년에 조나를 정벌하였다.

 

설유(장군) :  환나부의 패자직을 맡았으며, 74년에는 주나국을 점령하였다.

 

수성(왕제,장군) : 후에 차대왕이 된다. 현도군을 쳤다.

 

고복장(장군) :  태조대왕 때에 우보직을 맡았다.

수성이 왕이 되려하자 맹렬히 그를비난 하였다.

후에 이때문에 수성에게 죽었다.

 

목도루(대신) : 고구려의 대신.

좌보로 임명되었다. 후에 수성(차대왕)과 정사에 참여했으나, 그가 왕이 되려함을 알고 벼슬에서 물러나려 하였다.

결국 수성이 왕이 되어, 폭정을 일삼자 좌보에서 은퇴하였다.

 

막근 태자(왕자) :  태조왕의 태자이며, 태자라는 이유로 차대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만덕 왕자(왕자) :  태조왕의 왕자이며, 형 막근이 죽임을 당하자, 자신도 자살을 했다.

 

을음(대신) :  고구려 초기 주나국의 왕자였다.

설유에 의해 포로가 되었으나 왕으로부터 고추가에 임명되었다,

 
 

7. 차대왕 : 지나친 왕권 강화로 살해된 실정을 한 왕

미유(대신) :  차대왕이 왕제직에 있을 때 어지류,양신 등과 함께 왕위를 잇는것을 권하였다.

그 공으로 후에 좌보가 되었다.

 

어지류(대신) : 차대왕이 왕제직에 있을 때 미유,양신 등과 함께 왕위를 잇는것을 권하였다.

그 공으로 후에 좌보가 되었다.

차대왕이 죽은 후에는 백고를 추대하였다.

 

양신(대신) :  차대왕이 왕제직에 있을 때 미유,어지류 등과 함께 왕위를 잇는것을 권하였다.

그 공으로 후에 중외대신이 되었다.

 

추안(왕자) :  차대왕의 왕자였으나 신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달아났다.

그러나 후에 사면령을 받고, 양국군이 되어 두 고을을 다스렸다.

 
 

8. 신대태왕 : 왕실과 신하의 균형을 맞추었고, 내부의 단합을 다졌다.


명립답부(대신,장군) : 차대왕을 죽이고, 올바른 정치를 폈다.

현도태수 경림이 쳐들어오자 좌원에서 크게 승리하니 이것이 좌원대첩이다.

현명한 인물로, 나라살림을 풍족하게 하였다.

 

우거(장군) :  대가직을 수행하였다.

공손탁이 부산적을 치니, 군을 이끌고 연인과 함께 도왔다.

 

연인(장군) :  주부직을 수행하였다.

공손탁이 부산적을 치니, 군을 이끌고 연인과 함께 도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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