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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제25권 백제본기 : 제16대 아신왕

 

0 년 (AD 392) : 아신왕이 왕위에 올랐다.

 

阿莘王 或云阿芳 枕流王之元子 初生於漢城別宮 神光炤夜 及壯志氣豪邁 好鷹馬 王薨時 年少 故叔父辰斯繼位 八年薨 卽位

 

아신왕(阿莘王)<혹은 아방(阿芳)이라고도 하였다.>은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처음 한성(漢城)의 별궁(別宮)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에 비치었다. 장성함에 뜻과 기개가 빼어났으며, 매 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했다. 왕이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진사가 왕위를 이었는데 8년에 죽자 즉위하였다.

 

2년(393)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又祭天地於南壇 拜眞武爲左將 委以兵馬事 武王之親舅 沈毅有大略 時人服之 秋八月 王謂武曰 “關彌城者 我北鄙之1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謀將兵一萬 伐高句麗南鄙 武身先士卒 以冒矢石 意復石峴等五城 先圍關彌城 麗人嬰城固守 武以糧道不繼 引而歸

 

봄 정월에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또 남쪽 제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다. 진무(眞武)를 좌장(左將)으로 삼고 군사 업무를 맡겼다. 무(武)는 왕의 외삼촌으로 침착하고 굳세며 큰 지략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복종하였다. 가을 8월에 왕이 무(武)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미성(關彌城)은 우리 북쪽 변경의 요해지(要害地)이다. 지금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과인(寡人)이 분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바이다. 경은 마땅히 마음을 써서 설욕하라.”

[무는] 드디어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도모하였다. 무가 몸소 사졸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면서 석현성(石峴城) 등 다섯 성을 회복하려고 먼저 관미성을 포위하였으나, 고구려 사람들은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무는 군량 수송이 이어지지 못하므로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3년(394)

 

三年 春二月 立元子腆支2爲太子 大赦 拜庶弟洪爲內臣佐平 秋七月 與高句麗戰於水谷城下 敗績 3白晝見

 

봄 2월에 맏아들 전지(腆支)를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서제(庶弟) 홍(洪)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가을 7월에 고구려와 수곡성(水谷城) 밑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4년(395)

 

四年 春二月 星孛于西北 二十日而滅 秋八月 王命左將眞武等 伐高句麗 麗王談德 親帥兵七千 陣於浿水之上拒戰 我軍大敗 死者八千人4 冬十一月 王欲報浿水之役 親帥兵七千人 過漢水 次於靑木嶺下 會大雪 士卒多凍死 廻軍至漢山城 勞軍士

 

봄 2월에 살별[星孛]이 서북쪽에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없어졌다. 가을 8월에 왕이 좌장 진무(眞武) 등에게 명령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고구려 왕 담덕(談德)[광개토왕]이 친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패수(浿水) 가에 진을 치고 막아 싸우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여 죽은 자가 8천 명이었다. 겨울 11월에 왕은 패수의 싸움을 보복하려고 친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靑木嶺) 밑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큰 눈을 만나 병사들이 많이 얼어죽자 군(軍)을 돌려 한산성(漢山城)에 이르러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6년(397)

 

六年 夏五月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秋七月 大閱於漢水之南

 

여름 5월에 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냈다. 가을 7월에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7년(398)

 

七年 春二月 以眞武爲兵官佐平 沙豆爲左將 三月 築雙峴城 秋八月 王將伐高句麗 出5至漢山北柵 其夜 大星落營中有聲 王深惡之 乃止 九月 集都人習射於西臺

 

봄 2월에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삼고, 사두(沙豆)를 좌장(左將)으로 삼았다. 3월에 쌍현성(雙峴城)을 쌓았다. 가을 8월에 왕이 장차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를 내서 한산 북쪽의 목책에 이르렀다. 그 날 밤에 큰 별이 병영 안에 떨어져 소리가 났다. 왕이 이를 심히 꺼리어 [정벌을] 곧 중지하였다. 9월에 서울 사람들[都人]을 모아 서쪽 돈대[西臺]에서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8년(399)

 

八年 秋八月 王欲侵高句麗 大徵兵馬 民苦於役 多奔新羅 戶口67

 

가을 8월에 왕이 고구려를 치고자 하여 군사와 말들을 크게 징발하였다. 백성들은 전역(戰役)에 시달려 신라로 많이 도망하니 호구가 줄었다.

 

9년(400)

 

九年 春二月 星孛于奎婁 夏六月庚辰朔 日有食之

 

봄 2월에 살별[星孛]이 규(奎)와 루(婁) [별자리]에 나타났다. 여름 6월 초하루 경진에 일식이 있었다.

 

11년(402)

 

十一年 夏 大旱 禾苗焦枯 王親祭橫岳 乃雨 五月 遣使倭國求大珠

 

여름에 크게 가물어 벼의 모가 타서 말랐다. 왕이 친히 횡악(橫岳)에서 제사지냈더니 곧 비가 왔다. 5월에 사신을 왜국에 보내 큰 구슬을 구하였다.

 

12년(403)

 

十二年 春二月 倭國使者至 王迎勞之特厚 秋七月 遣兵侵新羅邊境

 

봄 2월에 왜국의 사신이 왔다. 왕이 이를 맞아 위로함이 특히 후하였다. 가을 7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의 변경을 쳤다.

 

14년(405)

 

十四年 春三月 白氣自王宮西起 如匹練 秋九月 王薨

 

봄 3월에 흰 기운이 왕궁 서쪽에서 일어났는데 마치 한 필의 비단[匹練]과 같았다.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1. 原本 「?」. 鑄字本에 의거 수정.
  2. 「?支」, 東國史略 「映」. 以下 同.
  3. 原本 「大」. 三國史節要에 의거 수정.
  4. 「八千人」, 本書 卷18 廣開土王 4年條 「八千餘級」.
  5. 原本 「帥」. 三國史節要에 의거 수정.
  6. 原本 誤刻. 鑄字本에 의거 수정.
  7. 鑄字本 「減」. 榮 「?」, 燾·烈 「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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