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526223305254?s=tv_news


[현장K] '김주열 열사' 주검 운전사의 '마지막 순례'

이형관 입력 2020.05.26. 22:33 


[KBS 창원]

[앵커]


1960년 3·15 의거 당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숨진 김주열 열사의 주검을 경찰이 마산 앞바다에 버릴 때, 이를 지켜봤던 증인이 있습니다.


주검을 옮기던 차를 몰았던 운전사 '김덕모' 씨입니다.


KBS 창원은 3·15 의거 60주년을 맞아 김 씨의 증언을 따라 60년 전, 역사의 현장을 되짚어 봅니다.


현장 K, 이형관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승만 독재정권과 부정선거에 항거했던 3·15 의거.


실종 27일 만에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싸늘한 주검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17살 김주열 열사의 끔찍했던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60년 전, 경찰이 김주열 열사의 주검을 마산 앞바다에 몰래 버릴 때 이용했던 차량을 운전했던 김덕모 씨.


'그 날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증언하고 싶다며 KBS 취재진을 만났습니다.


4년 전, 양심고백을 했지만,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방송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김덕모/당시 차량 운전기사 : "(후손들이) 진실 그대로 내가 이야기한 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내가 오래 살아있으니까 오늘을 계기로 사실 그대로 보도가 됐으면 합니다."]


당시 20살, 마산의 한 사업가 운전사로 일하던 김 씨는 '경찰 일을 도와주라'는 사장의 지시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경찰이 민간인 차량을 빌려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1960년 3월 16일 새벽, 마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과 민간인 1명을 태운 지프 차를 세운 곳은 지금의 '마산세무서' 앞.


숨진 김주열 열사는 탱자나무 울타리 옆 도랑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습니다.


[김덕모/당시 차량 운전기사 : "밤에 누가 여기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올라와 보니까…. 그때는 김주열인지 몰랐어요. 최루탄이 (눈에) 맞아서 있더라고요."]


경찰들은 숨진 김주열 열사를 차 뒷좌석에 실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까운 바다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당시 겁에 질려 뒷좌석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운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덕모/당시 차량 운전기사 : "옛날이 생각이 조금 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것 때문에 항상 가슴이 못이 박혀서…."]


도착한 곳은 '마산항 제1부두'.


경찰들은 바닷가 공사장에 있던 가슴팍 만한 돌을 김주열 열사의 상체에 얹은 뒤 철사로 칭칭 감아 바다에 던졌습니다.


하지만 주검은 한 달이 넘지 않은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올랐습니다.`


[김덕모/당시 차량 운전기사 : "(경찰이) 철삿줄을 끊고 돌을 달아서 던졌어요. 묶어서요. 바다에 못 떠오르게 하려고 했는데, 그게 떠올랐어요. (그걸 다 지켜보셨겠네요) 그럼요."]


김주열 열사의 처참한 모습은 사진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4·19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운전만 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에서 '혐의없음'으로 풀려났지만, 마음의 죄는 씻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끔찍했던 김주열 열사의 모습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한 여든한 살의 김 씨, 마지막 증언을 모두 털어내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김덕모/당시 차량 운전기사 : "(지금) 더 명백하게 (당시 상황을) 재연하니까, 좋지 않네요. 더 마음이 아프네요. 조금 후련해야 하는데…."]


KBS 뉴스 이형관입니다.


이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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