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509201228755

출구조사 어떻게 했나..다섯번째 유권자 찾아 뛴다
안승진 입력 2017.05.09. 20:12


선거 출구조사는 투표장에서 나오는 다섯번째 유권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한국방송협회 제공

“누군지 잘 봐야 해요...”
9일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에 마련된 4투표소의 줄은 길게 이어졌다. 한명이 투표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한 출구조사원이 동료에게 “파란 체크무늬”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하얀 모자를 쓴 다른 조사원이 재빨리 유권자 뒤를 따라붙었다. 이어 공손하게 말을 건다.

“방송 3사에서 대통령선거 출구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투표를 마친 유권자는 시간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출구조사원 정모씨(21)는 “열심히 뛰어가 말을 걸면 차가운 대답이 돌아오는 때가 많다”며 “거절당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고 응답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워했다.

조사원은 이 유권자에 대한 사전 출구조사 결과에 '무응답'이라 기록했다.


19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오른쪽)가 조사원 안내에 따라 출구조사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한윤종 기자

이후에도 출구조사원의 '추격전'은 지속됐고, 이를 쭉 지켜보다가 궁금증이 생겨 조사원에게 물었다.
"똑같이 투표를 마치고 나왔는데, 어째서 어떤 유권자는 그 뒤를 쫓아가 출구조사를 부탁하고, 다른 이는 그냥 보내주는지요?"

이 조사원은 투표를 마친 이를 상대로 전수 조사를 벌일 수 없는 만큼 다섯번째 투표자만 대상으로 한다고 귀띔했다. 4명을 지나쳐 보내고 바로 다음 유권자를 조사하는 식으로 무한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통계학적인 부연 설명도 뒤따랐다.

"통계가 신뢰를 얻으려면 같은 간격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조사에 유효한 샘플 수를 확보하는 한편 몇번째 유권자를 조사했을 때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조사에도 무리가 없는가 판단해 적절한 간격을 정한 게 다섯번째였다. 역대 선거에서도 거의 5번째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출구조사원들 가운데는 역할이 갈린다. ‘카운터’라 불리는 조사원은 투표소를 빠져나오는 유권자 수를 '正'자로 표시해 메모지에 적다가 다섯번째가 나타나면 동료에게 알린다. 이에 동료는 빨리 뒤쫓아가 양해를 구하고 출구조사를 진행한다. 다섯번째 유권자를 놓치면 정확한 조사에 차질이 빚어지는 만큼 현장에서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카운터 역할을 맡은 출구조사원의 수첩에 '正'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출처=통계청 블로그 기자단

출구조사 진행 시 유권자 간격 말고도 조심해야 할 게 또 있다.

공직선거법 167조 2항에 따르면 출구조사는 투표소 50m 밖에서 진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조사원들은 투표소에서 멀찍이 떨어져 유심히 살펴보다가 다섯번째 유권자가 50m를 벗어났을 때에 맞춰 조사하기 위해 재빨리 쫓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50m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화곡본동 4투표소는 출구에서 20m도 안 되는 거리에 대로변을 접하고 있다. 다섯번째 유권자를 주시하지 못하고 한시라도 눈을 떼면 행인과 섞여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탓에 원래는 공직선거법 중 출구조사 거리제한 규정에 따라 투표소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서 대기해야 하는 조사원들은 출구 근처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한 관계자는 “50m나 떨어지면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구분하기가 불가능할 때도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두 투표소가 가까이 붙어 있거나 화곤본동 4투표소처럼 대로변에 인접하면 누가 어느 투표소에서 나왔는지, 지나가는 행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 결과 표본추출 간격 선정에 불확실성이 커져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줄곧 사왔다.

앞서 국회는 2012년 출구조사 거리제한을 100m에서 50m로 완화한 바 있다.


19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제4투표소 인근에서 출구조사원들이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윤종 기자

“갈색 옷 아주머니!”

카운터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이번에도 한 조사원이 50대 여성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흔쾌히 응했다. 이어 투표용지를 본떠 만든 설문지에 성별과 연령, 지지하는 후보를 체크했다.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사원이 급하게 설문지를 뜯어내 조사함에 넣었다.

조사원에게 "원래 응답자가 설문지를 조사함에 넣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워낙 바쁘게 일처리를 해야 하고 응답자들도 바쁘기 때문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사원은 응답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답례로 껌 한통을 건넨 뒤 다시 다른 유권자를 찾아 뛰어갔다.

이렇게 모인 설문지는 조사원들의 관리를 맡은 조장에 의해 1시간마다 확인된다. 조장은 태블릿PC에 내용을 입력·집계한 뒤 중앙 조사기관으로 보내고, 각 조사기관은 이 같은 결과를 합산한다. 이번 19대 출구조사는 임의로 설정한 전국 330개 투표소에서 1650명의 조사원에 의해 진행됐다.

이번 조사에는 기존과 달리 심층출구조사가 추가됐다.

심층출구조사는 기존 득표 조사에 더불어 응답자의 학력과 소득, 결혼 여부, 정치적 기대 등의 구체적인 성향까지 조사·분석한다.

정확한 설문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심층출구조사에 응한 안덕현(25)씨는 “단순 지지만 묻는 게 아니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나 차기 정부의 운영 방향, 탄핵에 대한 의견, 차기 대통령의 통합 과제 등도 물었다”고 전했다.

같은 조사를 마친 다른 응답자는 “10개 좀 넘는 질문을 받았다”며“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19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4투표소에서 다리에 깁스를 한 유권자가 들어서고 있다. 한윤종 기자

심층출구조사는 전국 63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기존 출구조사와 달리 30번째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또 30번째 유권자가 응답을 거절하면 31번째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서울 강서구에서 심층출구조사를 진행하던 한 조사원은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잘 응해준다”고 전했다.

심층출구조사는 응답자가 태블릿PC로 설문 결과를 기재해 즉시 중앙에 전달된다. 다만 응답자가 고령이라 태블릿PC 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종이로 대신했다.

심층조사에 참여한 심계선(79)씨는 “사드 배치나 국민통합 등의 질문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에 옆에 있던 한 조사원은 “설문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고령은 피하고 있다”며 “설문 내용에 대해 충분히 전해 어르신들이 아는 내에서 답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출구조사를 진행한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미 심층출구조사를 하고 있다”며 “단순히 국민이 어떤 후보를 선택했는지 알아보는 데에서 나아가 누가 왜 뽑았는지 등 응답자의 성향을 조사한다”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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