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94890.html?_fr=mt2

경주 월성성벽 속에서 ‘인신공양’ 신라인골이 나왔다
등록 :2017-05-16 09:00 수정 :2017-05-16 10:04

국립경주연구소 성곽 토층에 박힌 성인 인골 2구 확인 
설 무성했던 인신공양 제례 실체 국내 첫 발견 
신라 풍속생활사를 다시 써야할 획기적 사건 
바깥 해자에선 삼국 최고 추정 목간들도 쏟아져


월성 서성벽 에이(A)지구에서 인골이 출토되는 모습이다.

천년 신라궁터인 경주 월성 성곽 안에 인골이 박혀있었다. 성곽 안 토층 속에 죽은 사람이 쪼그리거나 누운 채 틀어박혀 그 자세 그대로 유골이 된 모습이 최근 드러났다. 이른바 ‘인신공양(人身供養)’의 자취다. 하늘과 태양에 제사 지내거나 성, 제방, 궁궐을 지을 때 안전을 빌기위해 사람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친 풍속의 생생한 증거가 확인된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발굴중인 경주 월성에서 최근 성곽 단면을 잘라 조사하다 서성벽 기저부 토층사이에서 성인남자의 유골 2구를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유골은 성인 남자 2명의 것으로 추정되며 머리와 몸, 사지의 뼈들이 대부분 확인된다. 한구는 똑바로 누웠고, 다른 한구는 반대쪽 인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얼굴과 한쪽 팔이 약간 돌려져 있는 모습으로 묻혀 있었다. 두구 모두 얼굴 주변에서 나무껍질(수피)가 부분적으로 확인됐고, 축조된 성벽 토층 안에 의도적으로 주검을 넣은 정황이 뚜렷하다. 연구소 쪽은 월성 성벽을 쌓을 때 궁궐과 성의 안전을 기원하며 희생제물로 바친 인신제의의 국내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성벽의 다른 단면 토층 안에서는 역시 성의 축조제례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곰의 뼈들도 발견됐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국내 사례는 월성이 처음이다. 주거지 또는 성벽의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습속은 기원전 1600~1000년께 고대 중국의 상나라(은나라)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제방이나 건물의 축조와 관련된 인신공양 설화로만 전해져 오다가 월성 성벽의 인골발견으로 이런 설화가 고고학적으로 확증된 셈이다.

국내에서 고대 인신공양의 흔적은 앞서 여러 사례들이 있었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터를 조사하다 확인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우물 속에서는 어린 아이의 유골이 소, 말, 개 등의 뼈, 부서뜨린 제기들과 함께 발견돼 큰 화제를 모았다. 월성 해자와 전북 김제 벽골제 저수지에서도 과거 조사 당시 여러 인골들이 나와 대공사 때 사람을 죽여 매장하며 땅의 기운을 다스리려는 고대 풍습을 보여준다. 왕 등 권력자가 죽으면 수하 사람들도 죽여서 묻는 순장도 인신공양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수년전 생전 형상까지 복원한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의 10대 순장소녀, 경북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무더기 순장 흔적 등이 세간에 알려져 있다. 이번에 월성 성벽에서 나온 인골은 이런 과거사례들에 비해 인신공양 제례의 실체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첫 사례다. 인골이 나온 성벽 부근에서 다른 제례유물들이 나왔고, 좀더 떨어진 다른 성곽에서도 곰뼈가 나온 점 등으로 미뤄 성곽을 쌓을 때 여러 방식의 다양한 제례의식이 펼쳐졌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신라의 풍속, 생활사를 다시 써야할 큰 사건이라는 게 학계의 평가다.


2016년 공개된 월성 성벽 발굴 현장의 모습.

성곽 바깥의 해자(연못)에서 터번을 쓴 서역인의 토우와 삼국시대 최고연대(6세기초)로 추정되는 신라목간이 나온 것도 이번 조사의 획기적 성과로 꼽힌다. 해자에서 출토된 토우들은 사람과 동물, 말 탄 사람 등 다양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터번을 쓴 토우는 처음 나온 서역 소그드인의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눈이 깊고, 끝자락이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둘렀으며, 팔 부분이 소매가 좁은 카프탄 복식을 입고 있다. 이 카프탄 복식은 허리가 꼭 맞아 신체 윤곽선이 드러나고 무릎을 살짝 덮은 모양인데, 7~10세기 당나라 시대에 호복이라고 불리던 소그드인 옷과 모양이 유사하다. 그래서 이 토우의 주인공을 페르시아 복식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연구소쪽은 설명한다. 시기가 6세기께로 추정돼 현재까지 출토된 소그드인 추정 토우 중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고 한다.


국내 처음 발굴된 터번 쓴 서역인 모양의 토우상. 복식으로 미뤄 소그드인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시 해자에서 출토된 완형의 신라목간에는 ‘무술년(戊戌年)’‘병오년(丙午年)’이란 연대명이 처음 확인되는데, 그 시기에 당대 신라 관리의 이름인 ‘일벌(壹伐)’, ‘간지(干支)’ 등이 잇따라 일감을 받은 내력을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학계는 이 목간에 적힌 내용중 ‘간지’ 관등명을 주목하고 있다.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561년 신라 관등제를 정비하면서 이 명칭을 없애고 간(干)으로 축약시켜 사용했다는 점에서 6세기초반에만 쓰였던 관직명으로 보는게 통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술년, 병오년은 진흥왕의 선왕인 법흥왕 재위 기간(514~540)의 연대(518년, 526년)가 되어 지금까지 출토된 삼국시대의 어느 목간보다 연대가 이르다는 추론을 얻게 된다. 한반도 출토 목간들중에서 가장 연대가 이른 것은 중국 전한시대인 초원 4년(기원전 45년)에 만들어진 평양 정백동 364호분 출토 낙랑군 호구조사 기록 목간이 꼽힌다. 삼국시대 것으로는 함안 성산산성에서 나온 6세기 중후반 신라 파견 관리들의 목간을 가장 연대가 이른 것으로 간주해왔는데, 이번 발굴로 이런 통설이 흔들리게 됐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들.

출토된 다른 목간들도 주목할만한 새 사실들을 담고있다. 곡식과 칼 등의 출납 수량을 적은 한 목간에서는 완두콩을 ‘안두(安豆)’라고 읽는 고대 한반도 특유의 표기방식이 확인됐다. ‘아뢰옵고’라는 뜻의 이두식 한자 문구 ‘白遣(백견)’이 출토된 6세기 목간에 보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두에서 이런 연결형 어미의 용법은 8세기 이후 통일신라 시기 나타난다고 보았던 게 기존 학계의 주된 견해였는데, 통일 이전 고신라 때부터 고도의 이두 활용 체계를 구축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져 새 논란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유물들이 쏟아진 경주 월성 서쪽 에이지구는 2015년 6월 발굴조사가 시작된 곳이다. 연구소 쪽은 이 지역 발굴조사를 통해 서쪽 성벽을 5세기에 처음 쌓았고 6세기에 최종보수됐으며, 문이 있던 자리는 이미 유실되었다는 사실도 밝혀낸 바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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