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543.html

검찰은 ‘제보자’ 색출이 그리도 중요했을까
등록 :2017-05-21 11:32 수정 :2017-05-21 11:45

강희철의 법조외전 ②
‘돈봉투 만찬’ 보도 이후 검찰, “관행이다” 둘러대곤 안에선 ‘제보자’ 색출 나서
감찰 착수할 시간만 버려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봉투 만찬’을 <한겨레>가 단독 보도(5월15일치 1면)하고 난 뒤 검찰 안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 상층부는 이 기사의 ‘소스’가 내부에 있다고 보고, 그 ‘유출자’를 색출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기자에게도 밥을 먹자고 청해서는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화를 걸어 이말 저말 건네다 은근슬쩍 떠보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시도가 있었다.

동시에 온갖 엉뚱한 이야기들이 검찰 안팎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들은 것만도 ‘버전’이 여러 가지다. 차기 검찰총장을 노리는 검찰 고위 인사가 잠재적 후보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아웃’시키기 위해 기자에게 대놓고 흘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인사상 피해를 받고 한직에 가 있는 어느 인사가 권토중래를 위해 평소 가까이 지내던 기자에게 제보했다, 문제의 만찬 참석자 중 한 사람이 기자에게 직보했다더라, 어느 입 가벼운 참석자가 말한 것을 들은 검찰 내 고위 인사가 기자에게 알려준 것이다 등등.(역시 인사를 앞둔 검찰 내부는 ‘정치판’ 저리 가라 수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중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 스스로 취재 경위와 과정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다. <한겨레> 내부 데스크에게도 소상히 알리지 않았다. 가까운 분들이 물어올 때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선 제보자로 지목 당하는 ‘피해자’들이 검찰 안에서 생겨나고 있다. 단순히 기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그런 의심을 받게 됐다는 데 못 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감찰이 진행 중인 지금 취재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는 것은 여러 모로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고민하다, 취재과정 일부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단이 된 곳은 음식점이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맞은편 스타벅스 매장 쪽 뒷골목을 따라 조금 내려가노라면 ㅂ음식점이 나온다. 이 집은 그 흔한 인터넷 포털 맛집 소개에도 나오지 않는다. 외양도 허름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좋은 식재료를 쓰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 단골이 많다. 이 집을 <조선일보>는 18일치 신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낮에는 간단한 식사를 팔지만 저녁엔 1인당 6만원 짜리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이 곳 단골 손님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그는 검찰 내에 미식가로 알려져 있다. 한 검찰 인사는 “음식이 나오면 레시피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날 ㅂ음식점 예약자도 이 지검장이었다.

2016년 11월1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년 11월1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4월21일 저녁 이 음식점에는 이 전 지검장-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일행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더 있었다. 그 중 두 사람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 화장실을 오가다 몇 번 마주쳤다고 한다. ‘누군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병우와 1000번 통화했다는 그 안태근과 수사본부장이 술자리를? 얼마 전까지 수사한다고 하지 않았나?”

회동일에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기자는 두 가지 얘기를 전해 들었다. ‘수사 끝나고 이영렬과 안태근이 저녁에 만나 술 한잔 했다더라’, ‘장소는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는 ㅂ음식점이다.’ 그래서 처음엔 회식 날짜가 언제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이 대목은 나중에 후배 서영지 기자가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리베로’로 출입처에 매이지 않은 몸이라 시간을 두고 조금씩 확인 취재를 해나갔다. 저 정도 ‘급’이 되면 단 둘이서만 만났을 리 없다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일행이 있었다. 면면을 보니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부장들이 있었고, 검찰 인사와 예산, 전국 검찰청의 수사 상황 파악 등을 주무로 하는 검찰과장(옛 검찰1과장)과 형사기획과장(검찰2과장)이 동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17일)한 그 주 금요일인데, 술만 먹고 헤어졌을까?’하는 의문은 법무부 청사가 있는 과천 취재 과정에서 매듭이 풀렸다. 동석자 중 한 명인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받은 봉투에 1백만원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우여곡절 끝에 확인이 됐지만, 부장들에게 간 액수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매달렸다. 돈이 술보다 훨씬 중요했다. 안 국장은 특수본 수사 대상자였다. 그런 그가 무혐의를 받았고, 수사팀에 돈봉투를 건넸다. ‘부정처사후 수뢰’ 등 몇 가지 죄명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 이전에 100만원은 단 한번의 수수만으로도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에 정확히 저촉되는 액수다. 부장들에게 준 봉투에는 1차장에게 건넨 것보다 적은 액수가 들어 있었으려니 짐작했지만 추가 확인이 필요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이임식이 끝난뒤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안경을 벗고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이임식이 끝난뒤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안경을 벗고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 지검장이 검찰과장들에게 건넨 돈봉투도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검찰국의 여러 과장들 중에서 인사·예산 담당자와 전국의 수사 상황을 파악하는 주무 책임자 두 사람만 골라 동석시킨 것도 그렇고, 200명이 훨씬 넘는 휘하 검사들 챙기기에도 빠듯하고 바쁠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 인사가 예상되는 민감한 시점에 법무부 주무 과장에게 돈봉투를 건넸다는 것도 예사로운 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청와대가 지난 12일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등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언급했다. 기사는 타이밍이다. 부장들에게 건네진 정확한 금액 등 작은 팩트 몇 가지를 보완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못 쓸 상황은 아니었다. 시점상 보도를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사에 봉투 속 금액을 50만~100만원으로 애매하게 적은 것은 그 때문이다.

참석자 10명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검사장급 3명을 빼고는 일부러 적지 않았다. 꼭 검찰이 아니어도 상사가 회식에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인지상정에서다. 돈봉투도 그 자리에서 거절하거나 돌려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14일 기사를 쓰다 법적 판단에 대한 조언을 들으려고 한 검찰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더니,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도 솔직히 큰 사건 끝내고 나면 한 잔 하고 그랬거든. 강 기자도 잘 알면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요?”

그런데 금일봉(돈봉투) 얘기를 꺼내자 톤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일봉을 주고받았다고? 야~ 그건 정말 이상하다. 좀 엽기적이네. 자기들끼리 모여서 ‘우리 앞으로도 잘 해보자’고 스크럼이라도 짠 건가? 최소한 감찰 대상이다. 분명히 특수활동비에서 썼을 텐데, 그렇게 쓰라고 주는 돈이 아니거든. 감찰 결과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기사가 나가자 법무부와 검찰은 관행이라서 문제될 게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론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검찰의 이런 행동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던 기간 김수남 전 검찰총장, 안태근 당시 검찰국장 등 검찰 주요 간부들과 통화했다는 특검 수사 자료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에도 검찰은 내부 제보자 색출에 열을 올렸다. 특검에 파견 갔던 검사들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두어졌다. 검찰 상층부는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엉뚱한 일을 벌이느라 스스로 감찰에 착수할 수 있는 이틀의 시간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피하고 싶었을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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