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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감은 13세, 14세의 소녀들이었다”
[기획-‘위안부’, 책임지지 않는 일본①-2]생존자들이 입증하고 있는 강제연행의 실상-사기, 납치, 인신매매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7년 05월 21일 일요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만행을 알린 위안부 생존자는 고 김학순 할머니다. 김 씨는 광복 46주년을 하루 앞둔 1991년 8월14일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생존자로서 증언했다.

그 이전에도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윤정옥 교수가 한겨레에 ‘정신대 취재기’를 연재하고 한국의 여성운동이 정대협을 결성한 후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나서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취로사업에 나갔다 우연히 알게된 원폭 피해자 할머니(이맹희 씨)로부터 ‘정대협에 한번 가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고백의 계기였다. “나도 일본에게 억울한 일이 많고 내 인생이 하도 원통해서 어디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던 참이라 내가 군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권> 한울).


▲ 미군 164통신사진중대가 1944년 8월 14일 촬영한 버마 미치나(미트키나)의 일본군 위안부 사진. 왼쪽의 4인은 아시아계 미군들이며 오른쪽으로는 조선인 위안부들이다. 사진출처=정대협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사람들이 ‘정신대’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하게 됐다”고 했다.(경향신문 1991.12.7. ‘정신대 김학순 할머니 회견’) 1년여전인 1990년 6월 일본 참의원에서 당시 노동성 국장이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과는 관계가 없는 민간업자의 활동이었고, 조사 자체도 불가능하다’고 답변한데 대해 김 씨는 분노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70여년, 일본은 여전히 ‘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를 끌고 간 것도 다름 아닌 일본군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7살이었다. 1941년 김학순은 친한 언니와 함께 중국 북경에 갂다가 영문도 모르고 일본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어머니가 사 준 노란스웨터를 입은채 였다. 그는 곧바로 중국 각가현의 일본군 부대로 이송돼 다른 여섯명의 조선인 여성들과 함께 갇힌 채 일본군인들에게 짓밟혔다. 모포가 씌어진 침대 하나와 세수대야가 놓인 좁은 방에 갇혀, 옷이 찢기고 맞아가며 김 씨는 도망칠 생각만 했다. 김 씨는 운이 좋게도 5개월만에 한 조선인의 도움을 받아 부대를 탈출할 수 있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등장으로 여러 지원단체가 만들어졌고 피해 여성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같은해 12월 두번째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한 이가 문옥주 할머니다.

문 씨는 만 16세이던 1940년 친구네 집에 다녀오던 길에 칼을 찬 일본군에게 붙들려 중국 동북부 도안성으로 이송됐다. 문옥주씨는 운이 좋게도 일본인 장교의 눈에 들어 1년만에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으나 1942년 7월 급여가 좋은 식당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또다시 버마(미얀마) 랑군으로 끌려갔다. 이때로부터 문씨는 다시 3년 4개월을 갇혀서, 술취한 일본군으로부터 살해될 위험에 놓이거나 자살시도를 하는 등 죽음과 삶을 넘나들었다.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VAWW RAC)’의 니시노 루미코는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증언 52건을 분석해 위안부의 연행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보였다. 곧 사기·감언(병원, 공장 등에서 일하게 해준다며 속이는 등의)에 의한 연행이 33명(63.5%), 납치·유괴가 11명(21.2%), 인신매매가 8명(15.4%)였다.(피해자 증언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연행의 강제성,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 후마니타스)  

또한 이들 대다수가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니시노 루미코의 분석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86.5%가 미성년 연행이었다. 윤정옥 교수가 보건사회부에 신고된 56건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전체의 80%가 미성년(12~19세)이었고, 12%만이 20세 이상이었다. 나머지는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였다.(‘조선 식민정책’의 일환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 역사비평사)

지난 2015년말 한일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강행한 직후 미국 델라웨어대 마가렛 D.스테츠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독자의견 형식의 글을 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생존자들이 증언하듯이, 이같은 잔인한 성노예 시스템의 많은 대상들은 ‘성인여성(women)’이 아니라 초경도 하지 않은 ‘13세 혹은 14세의 소녀들(girls)’이었다”며 “그들은 매일같은 강간에 바쳐지기 위해 짐짝처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전선으로 실려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일본의 ‘위안부’ 동원이란 범죄가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쟁범죄일 뿐 아니라 아동 인신매매이자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였다“는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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