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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폭동 낙인 규명 열쇠…보안사 자료 공개해야
등록 :2017-05-23 00:13 수정 :2017-05-23 08:32

5·18 진상 규명-이것부터 밝히자 ② 보안사의 광주 왜곡·폄훼

80년 2월 보안사 폐지했던 정보처 복원, 80년 5월 광주에 장교 보내 정보 수집, 전두환 “광주 상황 즉시 보고” 지시
민간인 위장 ‘선무단’ 기록 사라져 군 일지에 ‘300명 도착’기록만 남아 누가 보냈고 뭘 했는지는 베일 속
88년 국회 청문회 대비해 서류 조작, 과거사위 제출 자료도 9권 통째 빠져 “보안사 행적 밝혀야 5·18 진상규명” 


80년 5월25일 계엄사령부 상황일지엔 ‘서울 선무공작 요원 도착 예정'이라고 적힌 보고가 나와있다.

“10·26사건이 나던 밤 전(두환) 장군은 제일 먼저 그 소식을 노태우 장군에게 알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1979년 10월26일 밤 보안사령부(보안사·현 기무사령부) 보안처 쪽에서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을 급히 찾아왔다. 신군부가 82년 5월 낸 <제5공화국전사>엔 ‘사령관’ 전두환의 편지를 가지고 간 이가 홍성률 중령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 편지에서 전두환은 “대통령 각하께서 운명(?)하신 것 같다. 더 이상의 것은 추후에 연락하겠다. 이 내용은 보안 조치하고 서신은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고 썼다. 홍성률은 7개월 뒤 광주에 나타난다.

보안사는 80년 5·18 때 정보수집 등을 위해 5월19일 홍성률 대령(1군단 보안부대장)을 광주로 파견했다. 그는 5월20일 광주에 도착해 친척 집에 비밀아지트를 설치한 뒤 경찰과 505보안대 요원의 지원을 받아 3개 정보조를 통합 지휘했다. 보안사 상황보고에는 “(5.23.) 18:30 시내에 잠복하여 특수임무를 수행중인 당 부대 홍성률 대령의 보고에 의하면, 극렬 폭도들의 약탈과 강제 동원 등으로.…(중략)”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5월24일 광주 시내를 빠져나가 송정리 비행장에서 머물면서 무력진압작전이 끝난 뒤 6월 초 상경했다. 이때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5·18 종합보고를 하기도 했다.

신군부가 5·18민주화운동을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낙인찍는 과정에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보안사가 특수정보활동을 통해 광주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 보안사가 주도한 5·18 왜곡 실태를 밝혀야 5·18 폄훼·왜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80년 2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폐지한 보안사 정보처를 복원시켜 민간정보를 수집하도록 한 바 있다. 전두환은 5월19일 홍성률 대령뿐 아니라 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실장, 최경조 보안사 대령 등을 광주로 파견했다. 전두환은 당시 최예섭 실장에게 광주상황을 즉시 보고토록 지시했고 “광주의 505보안부대에 지원할 것이 있으면 지원하라”고 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군인 300명으로 꾸린 ‘선무단원’들에 대해선 관련 군 기록이 상당수 사라져 버렸다. 다만, 당시 광주에 주둔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의 5월25일 작전일지에는 ‘선무단원 안전 호송 요청’이란 제목으로 ‘25일 07시 서울에서 서울제강 노장호국단원 300명이 워커힐 버스 8대에 분승해 출발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13시 전주도착, 선무단원이 계엄분소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조치 바란다’고 돼 있다. 같은 날 계엄사령부 상황일지에도 ‘서울 선무공작 요원 도착 예정, 단체명:서울노장호국단, 인원:300명, 수송편:워커힐 버스 8대로 고속도로 이용, 07:00 출발, 13:00 도착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선무단원들 파견은 보안사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 기록이 없다. 5·18연구자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누가 이 군인들을 광주에 파견했는지, 와서 무슨 임무를 수행했는지 등이 전혀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보안사는 80년 5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5·18 왜곡·폄훼에 가담한다. 88년 5월11일부터 89년 12월까지 보안사의 ‘5·11연구위원회’는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 등에 대비해 5·18 관련 군 서류까지 조작했다. ([단독] 보안사, 비밀조직 꾸려 “5·18 폭동”으로 조작)

연구자들은 보안사의 5·18 왜곡 행적을 규명하려면 기무사가 국방부 과거사위원회(2007)에 제출했던 보안사 자료 49권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사비밀로 묶여 있는 이 자료들의 내용이 연구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려졌는데, 49권 가운데 9권 분량의 자료가 통째로 없는 상태라고 한다. 애초 기무사가 9권 분량을 제출하지 않은 것인지,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가 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방부 과거사위에 제출된 보안사의 보존기록들도 자료가 ‘재가공’돼 제출된 것인지 검증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전두환 등 신군부 집권에 핵심 구실을 한 보안사가 80년 이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료 등을 조작해왔을 가능성이 높다”며 “80년 5·18 당시와 그 이후 보안사의 행적을 밝히는 것이 5·18 진상규명의 첫 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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