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0096


민며느리

장래 성인이 된 뒤 아들과 혼인시켜 며느리로 삼기 위하여 민머리인 채로 장래의 시집에서 데려다가 기르는 여자 아이.

한자로 예부(豫婦)라고 한다.

동옥저(東沃沮)와 고구려, 조선시대에 이러한 혼인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와 동옥저에서는 여자의 나이가 10세쯤 되면 남의 민며느리로 주었는데, 이것은 주로 가난 때문이었다. 시가(媤家)에서는 민며느리가 성인이 되면 돈과 비단을 지참시켜 일단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그 뒤 다시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게 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사회의 하층에 간간이 흔적을 남겨 왔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민며느리제도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비례론(非禮論)이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넓은 범위에 걸쳐 행하여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일반 양반계층의 가정에서는 보기 드물며, 빈곤한 가정의 딸로서 대체로 10∼12세 때 데리고 와서 양육하여 혼기가 되면 일단 친가로 보냈다가 다시 데리고 와서, 또는 친가로 보내지 않고 옷만 갈아입혀 혼례를 치르고 며느리로 삼은 예를 볼 수가 있다.

가난한 양민들 사이에서 간혹 있던 혼인풍속의 일종이었으며, 대체로 남자의 집이 여자집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것이 상례였다. 이때 혼수자금으로 선채(先綵) 300냥 내지 100냥 정도를 지불하고 데려오는 수도 있었으나, 이 경우 민며느리라기보다 매매혼(賣買婚)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민며느리는 장래의 시가에 와 혼인할 때까지 노역봉사를 하는 것이 상례였으니, 일종의 봉사혼(奉仕婚)의 성격도 띠는 것이라 하겠다.

이 제도는 남자가 어리고 여자가 나이 많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남자가 연상인 경우가 많았다.
 
[참고문헌]
『한국가족제도사연구(韓國家族制度史硏究)』(최재석, 일지사, 1983)
『한국가족제도연구(韓國家族制度硏究)』(김두헌,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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