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어깨죽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하니Only] 권오성 기자   등록 : 20111226 15:33 | 수정 : 20111226 17:17
   
정봉주 입감하는 날…지지자들 1000여명 나와 응원
“절대로 울지 마십시오, 울면 우리가 지는 것이죠…”

≫ 무대에 오른 나꼼수 팀

그는 외롭지 않았다.
 
‘비비케이(BBK) 저격수’ 정봉주 전 의원이 검찰에 출두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잇길에는 그를 배웅하고자 모인 1000여명의 지지자와 시민들로 가득찼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공지한 대로 “빨간색 드레스 코드”에 맞춰 목도리, 장미, 장갑 등을 빨간색으로 맞춰 입은 사람들은 공지한 시간인 낮 12시에 앞서 속속 모여 들었다.

  
구속되는 사람을 배웅하는 길이지만 오히려 축제의 분위기가 넘쳤다. 정 전 의원이 이미 ‘나꼼수’를 통해 “절대로 울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울면 저들이 웃습니다. 울면 우리가 지는 것이죠”라고 공지한 대로 사람들은 영하의 강추위에도 웃으며 정 전 의원의 등장을 기다렸다. 평소 엄숙함이 서려있던 서초동 법조타운에 비틀즈의 명곡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가 메아리쳤다.

8살과 5살 짜리 두 딸과 함께 나온 강인권(50·사업)씨는 “국회의원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을 공권력으로 구속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이 순간을 보여주고 잊지 않았으면 해서 딸을 데리고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서정희(48·구직 중)씨는 “우리가 지금까지 방관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정봉주 의원과 나꼼수 때문에 깨닫게 되었다”며 “가는 길 지켜주는 정도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시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인> 기자,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와 함께 정 전 의원이 등장하자 모인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그를 보고자 다가왔고 멀리 선 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 미래권력스

무대에 오른 정 전 의원은 변함없는 농담으로 좌중의 폭소를 끌어내며 지지자들의 우려를 떨어버렸다. “너무 행복하죠? 오늘 우는 분들은 한나라당 프락치(첩자)입니다. 즉시 적발해서 같이 교도소로 데려가겠습니다.” 김어준 총수도 “오늘 이 사람은 구속 수감이 아니라 지도 방문을 가는 것입니다. 다음에 오실 분에 앞서 현지 시찰을 가는 것”이라며 폭소를 이어갔다. 김용민씨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성대모사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서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 지지 발언을 이어갔다. “뒤에서 정봉주 의원의 구속 시기를 26일로 조율한 배후”로 소개받은 박영선 의원이 첫 발언자로 등장했다. 박 의원은 “오이시디(OECD) 국가 가운데 명예훼손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집중 규탄했다. 그는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관한 법 개정안을 정봉주 법으로 이름짓고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정청래·천정배·이석현·정동영 의원과 노회찬 공동대변인 등이 “정봉주를 구출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늦게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가 단상에 올랐으나 좌중에서 “지금까지 뭘 했느냐”는 고함이 나오기도 했다.

명진스님도 무대에 올라 거침없는 입담을 쏟아냈다. “그저께는 정봉주 의원에게 탈옥하라고 했지만 오늘은 탈옥을 말리려 왔어. 감옥에 있다가 뒤늦게 들어오는 사람들 얼차려 줘서 야물딱지게 혼내고 나와야 돼. 그러자면 우리가 그 일당들을 얼른 감옥에 보내야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정연순 사무총장은 “다시는 정 전 의원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민변이 ‘쫄지마 기금’이라는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기금을 만들어 여러분의 변호를 맡겠다”고 밝혀 박수 갈채를 받았다.
 
≫ 눈물을 보이며 들어가는 마지막 정봉주 모습

출두시간인 오후 1시가 가까워 오자 나꼼수 4인방이 다시 무대에 올라 마지막 발언을 이어갔다. 유머를 잃지 않은 김용민씨와 주진우 기자의 발언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어준 총수가 “잠시 후에 인사말 끝내고 정 전 의원은 들어간다”며 말을 잇지 못하자 분위기는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정봉주 의원과 10년 동안 매일 같이 만나 지겨웠는데…. 들어간다고 하니 어깨죽지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네요. 그를 보내는 이들은 지금 웃고 있겠죠. 그 웃음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꼭 이기겠다.”

마이크를 건네 받은 정 전 의원은 웃으며 “오늘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두려워하지 않겠다. 진실과 함께 갇히고 그 진실이 승리하는 날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돈 워리 비 봉주”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정 전 의원은 인사를 마친 뒤 붉은 목도리를 풀어 아내 송지영씨에게 감아준 뒤 포옹을 했다. 그 순간에는 여기저기에서 여성 지지자들이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닦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정 전 의원이었지만 아내를 두고 단상을 내려와 검찰로 걸어가는 동안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둘러싼 시민들은 장미 꽃을 던지고 “정봉주”를 연호하며 가는 길을 지켰다.

김어준 총수와 포옹을 나눈 정 전 의원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갔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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