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숫자] 한국 가계 빚 ‘1000조’
박재현·김형규·김다슬 기자  입력 : 2011-12-27 21:29:37ㅣ수정 : 2011-12-27 21:29:38

907,000,000,000,000원. 

올해 말 한국 가계 빚의 규모다.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가계신용은 지난 9월 말 현재 892조457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말에는 90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가계신용 통계에서 제외된 자영업자 대출 158조원을 더하면 실제 가계 빚은 100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907조원을 기준으로 하면 국민 한 사람당 1822만원, 가구당 5218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3·4분기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40만2599원으로 연소득은 4083만원이다. 연소득보다 빚이 더 많은 상황이 한국 가계의 현실이다. 전·월세값과 물가는 폭등했지만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탓이다. 

 

대기업 차장인 이모씨(41)는 내년 2월 경기 분당의 아파트 전세 만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2억2000만원인 전세보증금을 3억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았다. 이사를 고려했지만 아이들 학교 때문에 포기했고, 돈을 융통하기로 했다. 마땅한 담보가 없어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8000만원까지는 어렵다. 예금과 보험을 깨고 은행대출금을 합쳐도 돈이 모자라 제2금융권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1년 새 14.5% 올랐다. 물가상승률도 4%를 넘을 게 확실하다. 올해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다. 고물가와 소득정체 여파로 마이너스통장 대출, 신용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생계형 가계대출’도 급증해 올해 말 사상 처음 25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빚이 늘어나고 금리가 뛰면서 이자 부담도 커졌다. 올해 가계가 부담한 이자액은 56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연 5.35%였던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올해 9월 말 5.86%까지 뛰었다. 저축은행 금리는 연 16.7%로 올랐다. 이자 부담 증가는 가계의 소비위축을 초래했다.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가계는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한국은행·통계청·금융감독원이 전국 1만가구를 조사한 결과 74.2%가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꺼리자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로서는 고금리 부담을 감수하면서 제2금융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신협·카드·여신전문·보험 등 제2금융권 총자산은 올해 6월 말 889조1000억원으로 3년 전(610조4000억원)과 비교해 45.7% 불어났다. 같은 신용등급이어도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 금리는 24.4%로 은행(9.8%)보다 2.5배 높다. 

은행과 비은행, 대부업체 등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리는 다중채무자도 늘었다. 지난 6월 말 현재 비은행권 차입자이면서 은행 또는 다른 비은행권에 대출이 있는 다중채무 비중은 전체 비은행 대출의 57%였다. 

중산층도 빚에 갇혔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지만 집값이 떨어지는 추세인 데다 거래마저 끊겨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득이나 담보 수준보다 대출규모가 크고 이자만 납부하는 주택담보대출 중 36.2%가 내년과 2013년에 만기를 맞는다. 하우스푸어를 넘어 파산 위험마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2012년이다. 경제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고용이나 소득 증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공산이 커 가계발 신용대란을 향해 질주하는 듯한 형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급속히 증가할 뿐만 아니라 질도 점점 취약한 상황에서 경제전망도 암울하다”면서 “대내외 경제여건이 더욱 불안해져 상환압력이 들어온다면 과다부채 가구를 중심으로 가계가 도산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parkjh@kyunghyang.com>

■ 309 … 김진숙씨 크레인 위 농성 일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51)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겨울엔 추위에 떨고 여름엔 달궈진 쇳덩이에 화상을 입으며 열 달을 버텼다. 태양광 배터리에 의지해 트위터로 시민들과 소통했다. BBC, CNN, 알자지라 등 외신들도 그의 농성 소식을 세계에 전했다. 시민들은 5차례 ‘희망의 버스’로 그를 응원했다. 결국 ‘해고자 1년 내 재고용’이란 노사 합의가 도출됐다. 그가 크레인에서 보낸 309일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과 노동자도 힘을 모으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1982년 세워진 85호 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씨가 농성을 벌이다 자살한 곳으로 김 위원이 내려온 후 해체됐다.

■ 151 … FTA 비준안 찬성 의원 수

지난 11월22일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국회의원 15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한·미 정부가 FTA를 체결하기로 합의한 뒤 한국의 법과 제도를 바꾸고 사법주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논란은 4년5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 비준을 통과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4분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다섯 번째 날치기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논란이 끝나진 않았다. 지난 12월9일 판사 166명이 한·미 FTA 연구 태스크포스 설치 건의문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다. 판사들은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43)가 대표로 작성한 건의문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 110만 … 사실상 청년 실업자

지난 10월 말 현재 정부가 밝힌 청년(15세 이상 29세 이하) 실업자는 32만4000명이다. 2003년보다 8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은 청년층의 ‘사실상 실업자’는 110만1000명이라는 통계를 내놨다. 사실상 실업자란 청년층 가운데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취업무관심자 등 실업 상태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사실상 실업자까지 포함한 체감 실업률을 계산하면 22.1%에 이른다. 

■ 19 … 쌍용차 사태 이후 숨진 사람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실업률 7.7%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청년 인구는 줄지만 사실상 실업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03년 99만명에서 2011년까지 110만1000명으로 11만1000명이 늘었다. 사실상 실업자를 포함한 실업률은 17.7%에서 22.1%로 4.4%포인트 증가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한 후 지금까지 19명이 숨졌다. 19명 중 9명은 자살했다. 19번째는 지난달 9일 사망한 쌍용차 희망퇴직자 차모씨의 부인 오모씨였다. 천안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한 달에 한두 차례 가족과 만나오던 차씨는 아내가 죽고 이틀이 지나서야 소식을 접했다. 

쌍용차는 2009년 2646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면서 1년 뒤 생산량에 따라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들을 차례로 복직시키겠다고 노조와 합의했으나 아직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해고자와 가족들은 시민 5600여명의 성금으로 지난 10월 경기 평택시에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열고 일상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형규·김다슬 기자 amorfati@kyunghyang.com>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