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081535001

MBC의 몰락 10년사 1-'대표 얼굴'들은 이렇게 쫓겨났다
김재영 MBC PD(남극의 눈물,PD수첩 등 연출)
입력 : 2017.07.08 15:35:00

2012년 2월, 서울 명동에서 열린 MBC 파업 행사에 참여한 오상진 당시 MBC 아나운서가 거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제공
2012년 2월, 서울 명동에서 열린 MBC 파업 행사에 참여한 오상진 당시 MBC 아나운서가 거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제공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축출이 시작됐다. 

손석희 현 jtbc 뉴스룸 앵커는 2009년까지 10년간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였다. 당시에도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혔다. 당시 보도를 보면 손석희에 대한 보수진영의 교체 요구가 강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100분 토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수가 뉴라이트 인사로 교체된 MBC 감독기관인 방문진과 청와대가 그를 비토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의 토론을 일주일 앞두고 10년 넘게 지키던 MC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3년에는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그는 물러났다. 그 즈음 ‘설마 시선집중인데, 청취율, 영향력 1등인데…’ 하는 상식적인 믿음이 부질없음을 김재철 사장은 증명했다. 시선집중의 고정 출연자를 강제로 하차시키고, 내용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검열을 시도했다. 프로그램을 두고 불화설이 돌았고 손석희는 떠났다. MBC는 결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유랑민이 된 MBC 아나운서들 

강제 축출의 시작은 2008년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교체부터였다. 그의 클로징 멘트는 그것을 따로 본다는 시청자가 있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비판적인 그의 발언을 이명박 정부가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경영진은 기자들의 제작 거부사태까지 불러일으키며 신경민 앵커의 하차를 강행했다. 이후 MBC 경영진은 일선 PD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미화·윤도현 등을 프로그램에서 내쫓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쌓이고 쌓여 2012년 방송의 독립을 요구하는 170일 파업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결국 그 파업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7년 4월 오상진 아나운서가 MBC의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그는 한때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다. 뛰어난 외모와 매너로 MBC가 오랜만에 찾아낸 대형 아나운서였다. 그가 라디오 스타 말미에 흘린 눈물을, MC들은 퇴사 이후의 회한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사실은 정작 프리랜서가 돼서야 겨우 다시 설 수 있었던 MBC는 그와 더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006년 입사한 오상진 아나운서가 전성기로 향해 가던 때, 그가 맞닥뜨린 환경 변화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반듯한 외모만큼이나 바른 길을 가고자 했다. 대중적 인기를 핑계로 언론인의 양심에 복무하는 것을 저어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MBC 화면에서 그가 사라졌다. 그는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자리에 있었다. 파업이 끝난 후에도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를 MBC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사표를 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서울 MBC에서만 800여명이 넘는 인원이 끝까지 참여한 파업이었다. 그 원동력에는 기꺼이 파업의 얼굴이 돼준 MBC 아나운서들이 있었다. 이들이 공정방송을 외치고, 유인물을 돌리고, 일일 호프를 열고, 집회의 사회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대중들이 MBC 파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파업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올라갈수록 이들에 대한 경영진의 증오도 함께 높아졌다. 170일 후, 이들에 대한 개별적 보복이 시작됐다.

마이크를 빼앗기고 영업직, 송출실로 

PD나 기자가 자기 전문성과 무관한 분야를 몇 년씩 전전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아나운서가 특정 시기에 마이크를 빼앗기는 것은 직무 특성상 훨씬 더 큰 타격이 된다.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붙잡고 TV에 등장하는 시간만큼 실력이 유지되고, 시청자와의 유대감이 향상된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MBC 경영진은 공정방송을 외친 아나운서들로부터 집요하게 마이크를 빼앗았다. 뉴스 따로, 스포츠 따로, 심지어 라디오 뉴스 따로, 아나운서가 하는 모든 일에 계약직들을 뽑았다. PD들이 프로그램에 아나운서들을 캐스팅하겠다고 해도 아나운서실 간부들 선에서 번번이 묵살됐다.

멀쩡한 아나운서들이 멀뚱하게 하루를 보냈다. 경영진은 때가 되면 잡초를 뽑듯이 이들을 영업직으로, 송출실로, 심의실로 보냈다. 강재형·박경추·차미연·손정은 등은 그렇게 회사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굴욕감을 느낀 아나운서들은 연수를 떠나고 휴직을 했다. 결국 박혜진·최현정·김정근·문지애 등은 MBC를 떠났다. MBC를 대표하던 얼굴과 목소리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화면에서 사라진 아나운서들이 바로 MBC의 자산이자 경쟁력이었다. 그들은 양심에 충실했고, 공정했으며, 뛰어난 직업인이기도 했다. MBC 아나운서실은 수십 년간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방송인을 길러내는 산실이었다. 현 경영진들은 이런 아나운서들의 삶과 터전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시청자들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이 사실 누군지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다. MBC의 경영진은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일종의 관리인이다. 그 본분을 잊고 그들은 MBC를 공공의 재산이 아닌 자기들이 만든 구멍가게처럼 운영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자가 사랑했던 아나운서, 앵커, MC, DJ들을 수없이 잘랐다. 그 방식은 노골적이었고, 저열했다.

2012년 파업 도중 한 아나운서가 동료들을 뒤로 하고 회사의 품에 안겼다. 궁지에 몰린 경영진은 반색했다. 그는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했다. 그가 자리를 지킨 지난 5년간 뉴스데스크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역대 최저를 갈아치웠다. 시청률은 2%대로 추락했다. 역대 최장수 앵커 기록을 눈앞에 둔 그를 오늘도 뉴스데스크에서 목격한다. 손석희·박혜진·오상진·문지애의 이름이 지워진 자리를 채우고 있다. MBC 아나운서들이 성명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12년 파업 이후 11명의 아나운서가 제자리를 잃고 회사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으며, 11명의 아나운서가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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