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416.html

미군 빠져나간 동두천 도심 황량…기지 반환 늑장에 발전계획 차질
등록 :2017-07-12 05:00 수정 :2017-07-12 15:32

[미군기지이전 잃어버린 10년] ③ 
지역경제 불황 겪는 동두천 가보니

휴전선까지 불과 20㎞ 거리인 경기 동두천에는 ‘외국인관광특구’가 있다. 인구 10만명이 채 안되는 군사 도시에서 ‘외국인’은 사실상 미군과 그 가족이 거의 전부다. ‘관광특구’에 소요산 관광지와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등 몇몇 볼거리가 있다지만, 전철 1호선 보산역 뒤편의 상가가 중심이다. 폭 5~6m가량의 길 양편으로 클럽(유흥주점), 레스토랑, 옷가게, 미용실, 잡화점 등 150여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철길과 도로 건너 편에는 주한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인 캠프 케이시(약 428만평)가 있다. 주한미군 주력 전투부대인 2사단 예하 210포병여단과 1기갑여단의 주둔지다.

미군 ‘전략적 유연성’ 재배치 추진
“상권 완전히 죽어” 상인들 한숨
“도심 852만평 제때 돌려줬으면”
진즉 무슨 수가 나도 났을텐데”

화창한 주말이던 지난달 10일 오후, <한겨레>가 돌아본 이 곳 거리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손에 꼽을만큼 한적했다. 빼꼼히 문이 열린 한 클럽 앞에선 흑인 여성 한 명이 어쩌다 두세명씩 지나가는 미군 병사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님이라곤 없었다. 어두운 실내에서 새어나온 팝송이 쇠락한 거리로 흩어졌다. 고종빈 관광특구 상가연합회장은 “지금은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 현재 동두천 주둔 미군이 약 4000명이라는데 우리가 체감하는 건 500명도 안되는 것 같다”고 했다.

동두천 토박이인 고씨의 ‘체감’은 느낌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워 해외 병력을 중무장 지상군 대신 해·공군과 스트라이커 부대 중심의 신속기동군 체제로 재편해왔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동두천 주민들은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을 지역경제 불황으로 실감한다. 고씨는 미군이 즐기는 튀김 가게를 6년째 한다. 한 달 매상은 400만원가량. 이런저런 비용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그 전엔 클럽과 레스토랑을 했습니다. 한참 좋을 땐 월 2천(만원)도 넘게 벌었어요. 그런데 걸프전쟁 때 미국이 동두천 미군을 빼내 파병한데다 일부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이 곳 경기도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전투부대를 긴급편성하면서 주한미군 2사단의 2기갑여단 병력 3600여명을 빼냈다. 이 부대는 그 뒤 미국 본토로 재배치됐다. 또다른 주력부대인 1기갑전투여단도 지난해 6월 장비는 그대로 둔 채 철수했다. 지금은 미국 본토의 2기갑여단의 병력을 9개월마다 순환배치하는 형식으로 기존 전력을 대체하고 있다. 해외 주둔군 예산 절감 정책에 따른 조처다.

지난달 10일 경기 동두천 도심인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상가 거리가 화창한 봄 날씨의 주말임에도 이 곳으로 나온 미군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지난달 10일 경기 동두천 도심인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상가 거리가 화창한 봄 날씨의 주말임에도 이 곳으로 나온 미군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미국은 이들 부대의 장비와 인력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이 경기로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고정 주둔군과 달리 순환배치 병력은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데다, 2사단 항공여단 등 다른 예하부대들도 평택으로 옮겨갔거나 해체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미군을 상대로 옷가게를 하는 조아무개씨는 “주말에 외출·외박을 나오는 병사들도 지금은 전철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서울로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은 몰라도 동두천에선 미군이 안나간다’고 믿었는데 이젠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두천 시당국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한때 2만명에 가까웠던 미군이 지금은 수천 명(정확한 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정도로 급감했지만 미군 공여지 중 반환된 땅은 전체 면적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그것도 대부분 산악지대이거나 변두리여서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지역이다. 옛 도심과 맞닿은데다 신도시급 규모로 넓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는 빨라야 2020년에나 기지 이전과 공여지 반환 절차가 시작될 예정이다. 동두천시 전략사업과 공여지개발팀 관계자는 “미군 이전과 공여지 반환이 10년째 지연되면서 도심이 공동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환받은 땅에 대기업 생산용지와 대학·연구단지, 주거 및 공공시설, 세계문화촌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은 시작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위 관계자는 또 “이미 10여년 전에 반환받은 땅도 산업연관 효과가 떨어지는 탓에 민간투자자들에게 외면받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동두천시 미군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의 한종갑 위원장은 서울 이외 지역 주한미군 기지 이전사업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순조롭게 됐다면 동두천도 진즉 무슨 수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의 면적만 852만평이나 됩니다. 이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기 반환과 개발에 적극 관심을 갖고 특별지원책을 마련해줘야죠.”

주한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인 경기 동두천 도심의 캠프 케이시 정문 앞 표지석.
주한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인 경기 동두천 도심의 캠프 케이시 정문 앞 표지석.

관련 법률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미 2006년에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2008년에는 ‘공여구역주변지역 발전종합계획’(2008~2017)도 확정했다. 그러나 미군 기지 이전과 공여지 반환이 연거푸 늦어진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호흡이 맞지 않아 관련 계획들의 집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5년 10월 발간한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에 대한 정부지원 현황과 향후 과제>를 보면, 2014년까지 계획된 관련 예산 42조8880억원 중 실제 집행된 것은 8조3731억원으로 추진율이 19.5%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발전종합계획’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수립된데다 지자체가 제출한 계획안에 대해 중앙정부의 타당성 검토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방정부와 미군 및 중앙정부 간의 소통 채널이 부족한 점, 공여지 매입비 지원액이 너무 적고 사업비는 지원되지 않아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동두천/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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