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420.html

지자체 “우리땅 병들지 않게” 미군기지 시민통제 나선다
등록 :2017-07-12 05:02수정 :2017-07-12 15:30

[미군기지이전 잃어버린 10년] ③ 커지는 시민통제 목소리
경기도 의회, 작년 ‘미군 환경사고 관리 조례’ 첫 물꼬
평택·부산·동두천 등 기초의회도 ‘주민권익 보호’ 잇따라
주한미군 외면 땐 실효성 없는 ‘사문 규정’ 한계 불구
“지자체의 문제 제기 지렛대 삼아 정부 협상력 높여야” 

“2000년대 이후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이하 소파)의 개정과 부속 합의서 등을 통해 미군의 환경보호 책임을 명문화한 규약들이 개선돼 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게 사문화하고 무력하다는 거죠.”

경기도 의회 양근서 의원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미군 주둔에 따른 주민 피해를 보호할 실질적 수단이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한국의 여론을 의식하고 외교 협상 과정에서 거부할 명분이 없어 환경보호 협정들에 합의했지만 적극적으로 지키려 하진 않는다”며 “한국 정부도 관련 규정을 들어 미군쪽의 책임을 묻는 노력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12월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왼쪽)과 주한미군사 헤드룬드 기획참모부장이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5년 12월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왼쪽)과 주한미군사 헤드룬드 기획참모부장이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차원에서 주민 권익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최근 1~2년새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의회가 양 의원의 대표 발의로 ‘주한미군기지 환경사고 예방 및 관리 조례’를 제정하면서 첫 물꼬를 텄다. 이어 12월에는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신설했다. 경기 평택(2016년 11월)과 부산 남구(2017년 2월)도 잇따라 환경 조례를 만들었다. 경기도 당국은 이런 조례들의 집행을 전담하는 공여구역환경팀을 신설했다.

경기도 의회가 조례 제정에 앞장선 계기는 2015년 5월 오산 주한미군 기지 내 탄저균 유출 사태였다. 양 의원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적극적 대응은커녕 현황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상위법인 소파 환경협정들을 근거로 관련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방의회가 미군 관련 조례를 만드는 게 가능한 지를 꼼꼼히 따진 뒤 초안을 만들어 환경부 및 외교부와 협의했는데, 환경부는 ‘외교부와 협의하라’고 떠넘기고, 외교부 쪽은 ‘된다, 안된다, 답을 잘 안하고, 국방부는 ‘협의대상이 아니다’고 외면했었다. 중앙 정부가 소파 규정으로 확보된 우리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고 질타했다.

양근서 경기도 의원(왼쪽 세번째)이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근서 의원 제공
양근서 경기도 의원(왼쪽 세번째)이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근서 의원 제공

6월말 현재 국내 지자체들의 주한미군 관련 조례는 모두 9개다. 그 중 공사 입찰이나 기지주변 주민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외한 5개가 미군 주둔과 이전에 따른 주민 피해 방지와 권익 보호에 관한 적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경기 동두천의 ‘미군재배치 관련 활동 지원 조례’(2015년 10월)는 “시장이 미군기지 반환 지연으로 초래되는 지역발전 저해 및 지역경제 공황 사태 등의 해결을 위한 주민 활동에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 활동’에는 시민운동, 국회와 중앙정부의 지원 건의, 미군 공여지 반환 및 개발 촉구,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 등이 망라돼 있다.

경기도에는 주한미군 공여지의 87.0%가 집중돼 있다. 미군 재배치에 따른 반환 대상 면적은 전국의 96.1%를 차지한다. 그만큼 주민 권익을 법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례 제정에 앞장서는 건 당연해보인다. 문제는 지자체 조례가 법령체계상 하위법이어서 중앙정부와 미군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직까진 조례의 적용 분야가 ‘환경’ 쪽에 한정돼 있는데다, 의무 조항조차도 현실적 제약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예컨대, 경기도 환경조례는 “도지사는 소파 환경분과위원회를 통해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정보 제공을 적극 요청해야 한다”(제7조 환경정보의 공유)고 규정했다. ‘환경 정보’는 “환경안전시설 현황, 정기점검 실적, 환경이행 실적, 환경 악영향 최소화 프로그램, 각종 생화학 노트 등을 포함”한다. 경기도는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 어느쪽으로부터도 관련 정보를 받지 못했다. 경기도 미군기지 공여구역 환경팀 관계자는 “환경조례 제정 이후 실무팀을 꾸리고 중앙정부와 미군 쪽에 환경정보 공유를 요청했지만 ‘평상시 정보공유는 협조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자체 중심의 예방적 관리는 불가능하고, 사고가 터진 뒤에나 수습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의회 건물 전경
경기도의회 건물 전경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움직임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주목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인 하주희 변호사는 “일본 오키나와현의 주일미군기지 반대 투쟁에서 보듯 미국은 여론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지역 주민들이 적극 권익을 요구하고 지자체가 이를 근거로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건 중앙정부가 미국과 협상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의회가 조례를 만들기 앞서 2002년 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주한미군 기지와 관련한 민원들을 공동 협의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왔다. 경기도 행정2부지사와 미군 2사단장이 공동의장을 맡는 ‘한미협력협의회’가 그것이다. 한국 쪽에선 경기도 9개 시·군 부시장 및 부군수, 육군 대령급 책임자 등 21명, 미군 쪽에선 2사단과 8군 사령부 등의 장성과 영관급 고위장교 21명이 각각 참여해 연간 서너 차례 본회의와 실무회의를 연다.

지난 4월 열린 본회의에선 동두천 캠프 모빌의 조기 반환, 평택 미 공군 탄약고 조기 이전 및 군용기 소음 저감 대책, 포천 자주포 사격장의 도비탄(포탄이 바위 등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 차단 방지벽 설치 등을 안건으로 올려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이다. 김동근 경기도 행정2 부지사는 “지역 사회와 주한미군이 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공유하고, 상대를 이해하며, 해결책을 함께 찾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 쪽에서 방어적 자세로 나오면 우리가 (문제의 현장이나 정보에) 접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전엔 미군 쪽이 한미협력협의회를 의례적인 만남 정도로 여겼는데, 만남이 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미군도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김 부지사는 “현재 경기도 한미협력협의회는 양쪽이 각기 주어진 권한의 범위 안에서 최대치까지 왔다고 본다. 그 범위를 넘어서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법령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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