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129

비류국 [沸流國]
집필자 이현혜

고구려 건국기 지금의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佟佳江 : 渾江)유역에 위치하였던 작은 나라.

《삼국사기》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비류수(沸流水)에 채소잎이 떠내려옴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아 사냥을 하면서 비류국을 찾아가 국왕 송양(松讓)을 만났는데, 송양이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대 동안 이곳에서 왕 노릇을 해왔으나, 땅이 작아 두 임금을 용납하기 어려우며 그대가 도읍을 정한 지 오래지 않으니 우리의 부용(附庸)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분노하여 송양과 활쏘기 등으로 겨루었으나 송양이 항거하지 못하고 이듬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고 한다. 비류국의 지배층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이동해온 것 같으며, 정착시기가 고구려보다 빨라 선주(先住)토착세력으로서 우세한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한, ‘송양’의 음이 고구려 5부의 하나인 소노(消奴)와 유사함을 근거로 송양에 대한 주몽의 승리를《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 소노부로부터 계루부(桂婁部)로의 왕실교체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초기 고구려세력에 병합된 비류국은 송양의 딸이 유리왕의 비로 들어가는 등 주몽집단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고구려 국가의 성장과 함께 유력한 지배집단의 하나가 되고 있다. 다물국(多勿國) 또는 비류나(沸流那)로 기록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고구려국호고」(이병도, 『서울대학교론문집 인문사회과학』 3, 1956 ;『한국고대사연구』, 1976)
『한국사강좌』-고대편-(이기백·이기동, 일조각, 1982)
「고구려 초기의 지방통치제도」(이종욱, 『역사학보』 94·95합집,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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