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57679

"결혼식 전 수갑 체포... PD수첩 탄압에 유서 쓸 생각도"
[어게인 MBC④] MBC 탄압의 상징,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편 김보슬 PD의 아픈 증언
MBC 김보슬 시사교양 PD(ohmy_star) 17.09.08 14:13 최종업데이트 17.09.08 14:13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네 번째 글은 2008년 <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송하고 이명박 정권의 MBC 장악 시나리오의 첫페이지를 장식했던 김보슬 PD의 글입니다.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중 독보적인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뉴스타파

최승호 선배가 영화 <공범자들>을 만든다고 인터뷰를 부탁하셨다. 난 며칠을 고민해야만 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괴로워서가 아니었다. < PD수첩>이 정권의 표적이 된 시발점이 '나'였다는 죄책감에 난 오랫동안 대중 앞에 이야기하는 걸 꺼렸다. 편파·왜곡 방송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갈가리 찢긴 < PD수첩>을 선후배 동료들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게 너무나 미안해서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내 상처를 걱정하는 선배들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있어라'라고 얘기하는 걸, 마치 난 그래도 되는 양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 같다.

잊으려 했다.
잊고 싶었다.
하지만 8년 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았다. 
세상엔 절대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난생 처음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검찰청으로 향했던 그 날. 봄이 왔는데도 유난히 차가웠던 검찰청 유치장 바닥의 한기는 절대로 잊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일제시대,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옥살이한 독립투사도 아니었다. 
군부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옥살이한 민주투사도 아니었다.
난 역린을 건드렸고, 저잣거리에 수배 명령이 내려져 결국 잡혀간 역적이었다. 2009년의 일이었다.

<공범자들>을 보며 2시간 내내 울었다. 아니, 오열했다. 그리고 며칠 정신적 몸살을 앓은 끝에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잊으려 하지 말고 기억하려고 했어야만 했다. 그들이 < PD수첩>을 시작으로 MBC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9년간의 일들을 영화는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MBC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는지, 그 과정을 다시 복기해보기로 했다.

 13일 밤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를 방송했다.
▲2009년 4월 13일 MBC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 방송 화면ⓒ MBC

# 기억 1

2008년 4월,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비판하는 방송을 했다. 나는 '광우병' 방송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방송이,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도록 선동한 방송으로 둔갑하는 데에는 "광우병 방송"이라는 프레임이 매우 주효했다.

이 방송 안에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없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광우병에 관한 내용들이 방송의 자료가 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사실은 협상 과정에서 발견했다. 하나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협상 날짜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외교통상부 문서인 '한미정상회담 핵심 의제'에 의하면 이미 'OIE기준(전 월령 쇠고기 수입)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이라는 방침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성공적인 방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과욕을 부린 셈이고, 그것이 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했다는 데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화들짝 놀라 등 떠밀리듯 재협상을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이명박 정부는 < PD수첩>을 조준사격하기 시작했다. 첫 사격부대는 보수언론이었다. 보수언론은 한 번역자의 말을 빌려 < PD수첩>이 번역을 왜곡했다고 연일 떠들어댔다. 초등학생도 토익, 토플 만점 받는 세상에서 방송에서 일부러 틀린 자막을 썼다는 억지 주장은 기가 찰 일이었다. 해외 공관을 통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한 프로그램이 해당 부처의 공직자에 의해 형사 고소되는 경우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탄압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소가 아닌 '수사 의뢰'라는 방식을 택한다.

 검찰이 25일 밤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검찰이 체포하려는 김보슬PD가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지켜보고 있다.
▲검찰이 2009년 3월 25일 밤 MBC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김보슬PD가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지켜보고 있다.ⓒ 권우성

# 기억 2

< PD수첩>은 보수언론과 검찰의 협공에 무참히 짓밟혔다. 졸속 쇠고기 협상을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든 언론인들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수사의뢰'를 하면서 나는 프로그램이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프로그램의 본질인 '졸속 협상'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번역과 멘트 실수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했고, 나를 포함해 이춘근 선배, 조능희 선배, 송일준 선배, 그리고 김은희 작가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되어 공동의 핍박 운명체가 탄생했다. 

나는 괴로움에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밤새 사무실 소파에서 뒤척이다 눈을 뜨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신문 1면에는 왜곡, 편파, PD수첩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왜곡 편파 < PD수첩>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신문을 들고 MBC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 줄을 끊어야만 그게 증명이 될까... 유서를 쓰고 죽음으로 이야기하면 내 억울함이 증명될까, 사무실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내 실수들이 91년부터 시작된 < PD수첩> 역사에 "편파 왜곡 방송"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들이 꼬투리잡지 못할 정도로 아주 완벽한 방송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내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저들이 노린 위축 효과는 절묘하게 나를 흔들고 있었다.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2009년 4월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남소연

# 기억 3

2009년 2월, 임수빈 검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 PD수첩> 기소에 반대하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사표를 던진 것이었다. 다시 수사팀이 꾸려졌다. 3차례 소환장을 보낸 검찰은 곧이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나는 회사에서 검찰수사에 항의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교체된 수사팀은 달랐다. 내 발로 걸어가거나, 잡혀가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끝이 난다는 걸 알았다. < PD수첩> 방송이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협상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수사하기 위해 한미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밝히고자 했다면 내 발로 걸어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수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PD수첩>의 방송을 낱낱이 해부해 왜곡방송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사였다. 

2층 침대 3개가 있던 숙직실에서 나는 장기투숙자가 되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면 분장실에 가서 머리를 말렸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분장실 직원들도 날마다 드나드는 나에게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암투병중이던 아버지를 모시고 몸보신을 해주겠다며 주말마다 음식을 싸오셨다. 어느 날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들고 오셔서 백숙을 해먹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베트남 파병을 다녀오고 평생 보수적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해온 아버지가 한숨 쉬며 나를 바라봤던 그 얼굴만 흐릿하게 남아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김보슬 PD가 수갑을 찬 채 16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되고 있다. 김 PD는 오는 19일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는 예비신부로 15일 밤 결혼식 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했다가 검찰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김보슬 PD가 수갑을 찬 채 2009년 4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됐다.ⓒ 유성호

# 기억 4

그렇게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나는 회사 밖을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내 발로 회사 밖을 나가면 나는 체포되는 거였다. 내가 회사 안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 함께 있어 주었던 선배들과 후배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동안 잘 버텨왔는데...압수수색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지켜주던 분들에게 나 혼자 굴복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가족들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명분도 나의 선택을 대신해줄 순 없었다.

4월 15일, 결혼식 4일전 나는 회사 밖을 나섰다. 결혼식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채 농성을 시작했던 탓에, 나는 가장 먼저 드레스를 고르고 예물을 골랐다. 웨딩촬영 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사진도 찾았다. 그리고 초저녁쯤, 박길배 검사가 전화를 했다. 이제 대충 준비 되었으면 가자고 했다. 처음엔 나름 날 배려해줬구나 싶었다. 하지만 검찰청으로 가는 동안 여자 수사관이 얘기했다. 날 계속 놓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다고. 그럼 그렇지. 

 지난달 25일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던 'PD수첩'의 이춘근 PD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웨딩프라자에서 열린 김보슬 PD와 조준묵 PD와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하고 있다.
▲'PD수첩'의 이춘근 PD가 김보슬 PD와 조준묵 PD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하고 있다.ⓒ 유성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2009년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유성호

# 기억 5

검사들은 준비된 질문지를 읽어나갔다. 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명예훼손 및 업무 방해. 우리의 죄목은 그것이었다. 번역을 잘못한 이유를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번역 감수까지 받고 내보낸 그대로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줄 알았다면 다른 번역가를 쓸 걸 그랬다고.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의심진단을 받았는지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전화번호 줄 테니 가족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고. 왜 미국에서 직접 인터뷰한 사람들 답변을 쓰지 않고 방송에 나온 여론조사 내용을 그대로 썼냐고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몇 사람의 인터뷰보다 방송에 나온 여론조사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게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우리의 프로그램은 그렇게 난도질당했다. 왜 이런 인터뷰를 썼는지, 왜 자막은 그렇게 넣었는지, 우리는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하지 않는 질문들을 '검사'들로부터 받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검사들에게 < PD수첩>은 반드시 '편파, 왜곡 방송'이어야 했으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임무였으니까. 

# 기억 6

유치장에서의 첫날 밤. 아무 말 없이 경찰관이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창살 사이로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 마시며 애써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앞두고 들어온 사기 피의자 아주머니 한 분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로 여기 들어왔냐고. "방송 잘못했다고 잡혀 들어왔어요"라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더니, 자기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하려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얘기했다.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러게요. 그런 경우가 있네요...

날이 밝았다. 다시 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하는데 바깥이 시끌시끌했다. 경찰관이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감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반항해봤지만,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밖에는 MBC 선후배들이 서초경찰서 로비를 꽉 메우고 있었다. 나도 뭐라고 멋지게 한마디 외치고 싶었는데, 소리치는 선후배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의 얼굴을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느라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호송차에 태워진 후, 검찰청에 도착해 나는 교도소 독방같이 생긴 검찰청 유치장에 "보관"됐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 그 차가운 독방 안에서 나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못해 수사하는 거라며 투덜거리던 한 검사의 푸념이 떠올랐다. 이 모든 시나리오가 이명박 정권의 보복이자 전 언론인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09년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유성호

# 기억 7

이춘근, 조능희, 송일준 선배와 김은희 작가, 그리고 막내작가까지 모두 수사를 받고 난 후, 우리는 검찰의 대대적 수사발표와 함께 기소됐다. 그리고 모두가 형사재판정에 서야만 했다. 1심 재판 과정 내내 검사들은 억지수사, 억지기소였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듯했다. 치열했던 1심 재판은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판결문 일부를 첨부한다.

피고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특히 광우병 위험성과 피해자들이 공적 지위에서 수행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의 결과 및 그 과정상의 문제점에 대하여, 이 사건 보도 당시 다우너 소 동영상 공개 및 그에 이은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조치, 인간광우병 의심환자 사망, 현재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광우병 위험통제 정책만으로는 광우병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감안하면 광우병 위험으로부터의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관하여 의구심을 가질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고, 당시까지 알려진 과학적 연구결과와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 등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이 사건 보도를 통하여 피해자들이 수행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 행위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한 내용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을 수행한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피해자들 개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 기억 8

아버지는 무죄 판결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손주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이었다. 그 손주는 10달 내내 엄마 뱃속에서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나는 만삭의 몸으로 항소심 재판정에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힘들었나보다. 재판 다음 날 양수가 터져 보름 일찍 아이를 낳았다. 마지막 대법원 판결 후, 김재철 사장은 편법으로 < PD수첩> 사과방송을 내보내며 이명박 정권을 보도의 피해자로 만드는 피날레를 장식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은 그 이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민동석 전 협상대표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하다가 박근혜 정부 때 아시아 중동지역 협력대사직에 임명되었고, 현재는 사임한 상태다. < PD수첩>을 수사했던 전현준 당시 부장검사는 이명박근혜 정부 내내 요직을 차지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표를 냈다. 수사검사였던 박길배 검사는 수원지검 특수부장으로, 김경수 검사는 공주지청장으로, 송경호 검사는 서울 중앙지검 특수 2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장겸-고영주 풍자하는 MBC노래패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첫째날 집회가 열리고 있다. MBC노래패가 김장겸 사장과 고영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가면을 쓰고 풍자 공연을 하고 있다.
▲ 김장겸-고영주 풍자하는 MBC노래패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첫째날 집회가 열리고 있다. MBC노래패가 김장겸 사장과 고영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가면을 쓰고 풍자 공연을 하고 있다.ⓒ 권우성

많은 이들이 나를 두고 탄압의 상징적 인물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9년 권력을 총동원한 뭇매를 맞고 자발적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다. 나에겐 그 이후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8년이 지난 지금, <공범자들>을 보고 난 뒤, 모든 걸 다시 기억한다.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그리고 MBC를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 < PD수첩>을 짓밟았는지. 

우리는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MBC를 되살리기 위해 다시 파업의 길로 나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내 기억을 공유한다.

 김보슬 MBC PD
▲김보슬 MBC PDⓒ 이영광

* 김보슬 PD는 2003년 MBC 입사해 2008년 < PD수첩 -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송한 뒤 부당한 검찰 수사에 불응하다 결혼식 전 체포 ,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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