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512816.html

[한겨레21 단독]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출판사가 무서워 떠는 사연은?
[한겨레]  등록 : 20120101 17:10 | 수정 : 20120101 17:40
   
청 관계자 ‘여사와 대통령 부각’ 요구하며 “다 녹음했다” 압박
저작권 포기 ‘합의서’ 강요 의혹…“육영수 시절처럼 내용” 간섭도

≫ 김윤옥씨가 ‘시앤앤’에 출연해 한국 음식 홍보하는 장면.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낸 책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HANSIK Stories of Korean Food by Kim, Yoon-Ok)를 놓고 청와대 2부속실과 사업 주체인 한식재단, 단행본 제작에 참여한 출판사 등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청와대가 이 책을 ‘한식문화’ 소개에 중점을 둔 책이 아니라, 김윤옥씨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정치 선전물’로 여겨 출판사 관계자들을 ‘압박’한 정황도 드러났다. 국가 예산을 김윤옥씨 개인의 홍보사업에 사용한 단적인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사와 대통령 부각” 요구

S출판사는 대표를 포함한 직원이 4명에 불과한 작은 업체다. 영리 목적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예술창작 집단’으로 소개해왔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윤옥씨의 책 제작에 관여한 뒤, 악몽이 시작됐다.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청와대 쪽이 “김윤옥 여사와 이명박 대통령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과 사진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책을 제작하는 동안 이 출판사에 대한 청와대의 간섭과 압박은 집요했다. 2010년 9월 청와대 인근의 한 갤러리에서 청와대 2부속실과 한식재단, S출판사 관계자가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S출판사 쪽은 “평소에는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지하 공간에 식탁 하나만이 놓여 있었고, 음식이 들어왔다”고 했다. 외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와대 2부속실 관계자들은 ‘우리는 이번 사업을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보자’라는 취지의 격려를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자리가 끝날 무렵 청와대 쪽의 ‘경고 메시지’가 쏟아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식재단 쪽 인사에게 부속실을 통하지 않고 절대 김윤옥씨와 소통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반말이 섞인 호통도 이어졌다. 분위기는 금세 냉랭해졌다. 자리가 파한 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녹음기를 보여주며 “오늘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 녹음됐다”고 말했다. S출판사 관계자는 “녹음기를 보는 순간 오싹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책은 G20을 위한 게 아니라 김윤옥 여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국내용’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실제 책을 제작하고 원고를 대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쪽의 간섭과 압박은 계속됐다. S출판사 관계자는 “심지어 육영수 여사 시절처럼 ‘김윤옥 여사가 혼·분식을 장려한다’는 내용을 넣으라고 (청와대 쪽이) 지시했다”고 했다.

국내 판매용 5천 부 찍었나

≫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G20 정상회의 이후 청와대와 한식재단은 이 책을 국내 판매용으로 다시 제작하려고 했다. 청와대는 S출판사가 영입한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등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저작권 관련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책의 기획과 디자인을 총괄하고, 원고를 대필한 S출판사 관계자에게는 당자사 개인과 ‘개인 김윤옥씨’가 각각 계약의 주체로 돼 있는 200만원짜리 ‘원고 사용 합의서’가 날아들었다. 이 문서에는 “갑(S출판사 관계자)이 제공한 모든 용역(아이디어, 제안, 주제, 플롯, 스토리, 캐릭터 설정, 스크립트, 제목, 기타 모든 용역)의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 등 모든 권리는 을(김윤옥씨)에게 영구적으로 귀속된다”는 문구와 “갑은 을의 동의 없이 을의 어떠한 비밀 정보도 언론 기타 매체에 제공하거나, 쟁점화하거나, 기타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정치홍보성 사업에 이용되지 않겠다”며 서명을 거부하던 S출판사는 최근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다른 회사인 ㅇ출판사에서 동명의 국내 판매용 서적 1쇄 5천 부를 이미 찍었지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판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한겨레21>이 단독으로 입수한 국내 판매용 서적의 발행처는 ㅇ출판사, 발행일은 2011년 10월25일로 돼 있다. S출판사가 제작한 서적의 전자자료(PDF)를 무단으로 재활용해 만든 책이다.

청와대 쪽은 이런 정황 일체를 부인했다. 청와대 2부속실 관계자는 “ㅇ출판사에서 1쇄 5천 부를 이미 인쇄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시험판으로 일부 인쇄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저작권 문제로 국내 판매용 서적 발간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청와대 관계자가 녹음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당시 밥을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쪽이 녹음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 기억나지 않는다. 왜 녹음을 하겠느냐”라고 반박했다. 한편, ㅇ출판사 관계자는 국내 판매용 서적의 ‘1쇄 5천 부’ 발행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송호균 <한겨레21>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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