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80600035

[단독]“새벽에 보초 서다 관사 앞 소나무숲에 묻었다” 5·18 계엄군 진술 ‘사실’ 확인한 군 문건 발견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입력 : 2017.09.18 06:00:03 수정 : 2017.09.18 06:01:00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내에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공수부대원의 진술이 기록된 문건.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내에 시신을 직접 암매장했다는 공수부대원의 진술을 사실로 판단해 기록한 군 내부 문건이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17일 입수한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 검토보고’라는 군 문건에는 5·18 당시 3공수여단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된 이모씨의 증언과 군이 이를 사실로 검증한 내용이 적혀 있다. 광주교도소 내에 시신을 직접 묻은 공수부대원의 진술이 확인된 만큼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됐다. 문건은 1989년 1월 ‘511분석반’이 만들었다. 1988년 국회 5·18청문회를 앞두고 5월11일 당시 보안사가 주도하고 국방부·육본·합참·한국국방연구원 등이 참여해 만들어진 20여명의 비공개 조직이 511분석반이다. 

5·18 때 3공수 11대대 소속이었던 이씨는 1989년 1월 당시 평화민주당을 찾아가 “교도소에 직접 암매장했다”고 제보했다. 511분석반은 곧바로 이씨의 신원을 확인한 뒤 ‘신고 내용’ ‘탐문 결과’ ‘분석’ 등 8개 항목으로 나눠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씨가 시신을 매장한 상황은 ‘신고 내용’에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문건에는 “5월21일 오후 5시쯤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 철수 시 부식 냉동차에 싣고 온 시위대 40여명을 교도소 창고에 집단 수용. 5월22일 새벽 이들 중 중상자 4명이 죽어 있는 것을 부대 상관이 보초를 서고 있던 신고자(이씨) 등 4명에게 매장하라고 지시. 시체를 리어카로 운반, 교도소 구내 관사 앞 소나무숲에 묻었고 교도소 창고 앞마당 가마니에 방치되었던 피 흘리는 시체 1구를 같은 장소에 추가 매장했다”고 기록됐다. 

511분석반은 이씨의 부대원을 상대로 검증에 나섰다. 분석반은 “당시 3공수 11대대 이모 주임상사를 상대로 확인한 결과 전남대에서 철수 시 검거한 시위대를 교도소로 이송했고, 다음날 아침 중상자 수명이 사망해 교도소 구내 숲속에 가매장했다”고 기록했다. 또 “매장 시체의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교도소 연행자 중 사망자를 계엄군이 구내에 가매장했다가 철수 이후 교도소 측에서 발굴 처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가매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공수부대가 사망한 시민들을 병원 등으로 옮기지 않고 몰래 묻었다는 사실을 군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3공수는 1980년 5월21일 오후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옮겨 5월24일까지 주둔했고, 교도소 내에서는 계엄군이 철수한 직후인 1980년 5월30일 광주시에 의해 묻혀 있던 8구의 시신이 수습된 적도 있다. 

당시 교도관이 최근 암매장지로 지목한 세 곳 중 한 곳도 ‘관사 앞 비탈길’이다.

정수만 5·18유족회장은 “3공수가 주둔했던 옛 광주교도소 안팎에서는 실제 암매장이 이뤄졌고 제보도 여러 건 있다”면서 “최근까지 교도소로 사용되면서 37년 동안 주변이 크게 바뀌지 않은 만큼 이번에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5·18과 관련해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사람은 82명에 이르며 이 중 6명만이 유전자분석을 통해 시신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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