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90_0010_0010


석대자산성(石臺子山城)

위치 (지도보기)

위치(출토지) : 瀋陽市 東北側 35㎞ 距離 輝山 風致地區 棋盤山坝 上流 右岸
형태사항 : 둘레: 1,384m 484점 
 

출토지

심양시 동북쪽 35㎞ 거리의 휘산 풍치지구의 기반산댐 상류 우안(瀋陽市 東北側 35㎞ 距離 輝山 風致地區 棋盤山坝 上流 右岸)


연대

4세기 말~5세기 경 축조, 후기까지 사용(李曉鍾·劉長江·佡俊岩, 1993; 王禹浪·王宏北, 1994)
고구려 중후기, 고이산성(高爾山城) 직후 축조(王綿厚, 1999)
631~645년 경 축조(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潘陽市文物考古工作隊, 2001)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7심양시문물조사대
(瀋陽市文物調査隊)
심양 석대자산성을 발견함.
1997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1990-1991년의 시굴조사 작업을 바탕으로 1997년 5월 12일 ~ 11월 중순까지 정식 발굴을 진행하여 산성의 석축 성벽, 성문지 3개, 치(馬面) 10개, 배수구(涵洞) 2곳 등을 조사함.
북벽 부근 평지에 10m×10m인 트렌치 14개를 설정하고 그 가운데 T105, T302, T303 등 3개를 발굴하였음. T105와 T302에서 건물지를 한 개씩 확인함. 건물지는 비교적 뚜렷이 남아있고 붉게 굽힌 흙덩이가 비교적 넓게 산재해 있음. 특히, T105 건물지 지하에서 탄화된 나무기둥이 발견됨. 트렌치 내부에는 재구덩이가 많았는데, 크기와 깊이는 일정치 않으며 원형이 대부분이나 타원형이나 불규칙한 장방형도 있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潘陽市文物考古工作隊,1998, 「遼寧潘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第一次發掘間報」『考古』1998-10.
1998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1998년 4월 하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심양시 석대자고구려산성에 대한 2차 발굴을 진행함. 4곳의 성문지 및 내외에 트렌치를 설정하여 발굴하였고 그 밖에 저수지, 점장대 등을 발굴하였는데 총발굴 면적이 450㎡임.
발굴성과가 발표됨.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潘陽市文物考古工作隊, 2001, 「遼寧瀋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第二次發掘簡報」『考古』2001-3.
2002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2002년 7월 ~ 9월 초 석대자산성 Ⅲ구역에 대한 1차 소규모 발굴을 진행함. 5×5m 트렌치 3개를 설정, 각각 02SSⅢT1, 02SSⅢT2, 02SSⅢT3으로 편호하였음. 주거지(房址), 재구덩이(灰坑), 석퇴(石堆) 등을 조사함. 석기, 동기, 철기, 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7, 「瀋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2002年Ⅲ區發掘簡報」『北方文物』2007-03.
2004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2004년 4월 중순 ~ 9월 말 석대자산성 Ⅲ 구역에 대한 2차 발굴을 진행함. 2002년 1차 발굴 구역의 남쪽 가장자리에 5×5m 트렌치 18개를 설정, 04SSⅢT0101~T0604로 편호하였음. 발굴 면적 500여㎡, 주거지(房址) 5곳을 조사하였는데 그 중에서 3곳을 발굴·정리하고 재구덩이(灰坑) 7곳을 발굴하였음. 토기, 석기, 동기, 철기, 骨器 등 총 1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7, 「瀋陽石臺子山城2004年Ⅲ區發掘簡報」『瀋陽考古文集』第1集, 科學出版社.
2006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서문지 보충 발굴. 2006년 4월 27일부터 7월 말까지 석대자산성 서문지에 대한 보충 발굴을 진행함. 서문지 내외 양측에 10×10m 트렌치 1개를 설정, 06SSⅣT1, 06SSⅣT2로 편호하였음. 전체 발굴 면적 230여㎡,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문길(門道) 내의 퇴적 상황 및 구조를 확인하였고, 토기, 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하였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7, 「瀋陽石臺子山城西門址的補充發掘」『瀋陽考古文集』第1集, 科學出版社.
Ⅲ구역 T0404 남면 확대 발굴. 2004년도 석대자산성 Ⅲ구역 발굴을 기초로, 2006년 T0404 남면에 대한 확대 발굴을 진행하였음. 주거지(房址) 1곳을 발굴하였고, 철제 화살촉 3점, 철제 송곳 1점, 옹(陶甕) 1점, 돌절구 1점이 출토하였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7, 「瀋陽石臺子山城2006年Ⅲ區發掘簡報」『沈陽考古文集』第1集, 科學出版社.
1990~1991심양시문물고고공작대
(瀋陽市文物考古工作隊)
1990년 가을과 1991년 봄, 여름에 걸쳐 5m×5m 트렌치 6곳을 시굴하여 건물지, 부엌, 재구덩이(灰坑) 등과 함께 다량의 고구려 시기 유물이 출토하였음.
동북부의 평지를 Ⅰ구역과 Ⅱ구역으로 나누어 6곳을 시굴하였음. SST1~SST4는 Ⅰ구역, SST5~SST6은 Ⅱ구역에 해당함. Ⅰ구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음. 전체적으로 건물지 한 곳, 부엌 한 곳, 재구덩이(灰坑) 20개 등을 발굴하였음. SSF1 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완만한 산비탈에 위치하였는데 건물터가 발견되었음. SST6에서는 돌로 쌓은 부엌 한 곳이 발견되었음.
발굴성과가 발표됨. 李曉鍾·劉長江·佡俊岩,1993, 「潘陽石臺子高句麗山城試掘報告」『遼海文物學刊』1993-1.
2000~2005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0년 5월에 저수시설을 발견하여 2005년 8월까지 발굴을 진행함. 석기, 골기, 철기, 토기 등 유물 총 96점이 출토됨.
발굴성과가 발표됨.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瀋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10, 「瀋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蓄水設施遺址」『考古』2010-12.


 
구조 특징
 
성벽은 산세를 따라 축조하였으며, 동벽, 남벽과 서북벽 3구간으로 구분됨. 평면은 불규칙한 삼각형을 띠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편임. 전체 둘레는 1,384m.

동벽은 가파른 산비탈 바깥쪽에 내탁식(內托式)으로, 서북벽과 남벽은 산등성이와 능선을 따라 협축식(夾築式)으로 성벽을 축조하였음. 성벽은 전체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쐐기형 돌을 치밀하고 가지런하게 층층이 쌓아올렸음. 성벽 높이 1m마다 외벽은 6~8㎝, 내벽은 1~5㎝ 정도씩 안쪽으로 들여쌓았음. 그리고 석축성벽 안쪽에는 벽체에 잇대어 흙을 층층이 다져서 토축 성벽을 구축하였음. 서남벽과 서북벽 남단은 거의 파괴되었음. 성문은 북서문, 서남문, 남문, 동문으로 4곳임. 성문 가장 자리 아래쪽에는 배수시설이 성문과 결합된 형태로 구축되어 있음. 북서벽과 남벽 등 성벽에서 모두 10개의 치가 확인되었음. 그 밖에 망대, 저수지 외에 주거지(房址)에서 구들이 확인되었음.

유물은 종류가 다양하게 출토되었으며 그 중 토기편이 가장 많고 철기도 상당수 출토되었으며, 그 밖에 석기, 청동기, 골기 등이 소량 출토되었음.

성벽의 전체 구조는 성돌로 축조한 성벽과 치(馬面) 두 부분으로 조성되었음. 성벽은 산세를 따라 축조하였으며, 동벽, 남벽과 서북벽의 3구간으로 구분됨. 평면은 불규칙한 삼각형임. 성벽 단면은 사다리꼴임. 외벽은 아래에서 위로 성벽 높이 1m마다 6~8㎝ 정도 일정하게 안으로 들여쌓았으며 내벽은 외벽에 비해 들여쌓은 폭이 적은데 성벽 높이 1m마다 1~5㎝ 정도로 안으로 들여쌓았으며, 벽체에 잇대어 흙을 층층이 다져 토축 성벽(보호벽: 겹성)을 구축하였음(『考古』1998-10).

성벽의 단면 구조. 성벽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서북벽 2곳, 남벽과 동벽 1곳씩 총 성벽 4곳을 시굴하였음.

첫번째 SST1. 산성 서북문의 서측 32m 지점에 위치함. 방향은 남북방향이고 트렌치 규모는 길이 19m, 너비 2m, 깊이 1~3.4m임. 드러난 벽체는 바닥 너비 6.1m, 꼭대기 너비 5.65m, 잔고 2.4m임. 외벽은 높이 1m당 7㎝ 안으로 들여쌓았고, 내벽은 높이 1m당 5㎝ 안으로 들여쌓았음. 성벽 내측에는 매층마다 1~15㎝ 두께로 흙을 층층이 다져 토축성벽을 구축하였음. 현재 높이 2.4m로 18층이 남아있음. 토축성벽은 성 내부 문화층의 흙으로 축조하였음. 그 내부에서 니질(泥質)의 회색 토기편과 소량의 철제 화살촉, 수(隋)의 오수(隋五銖)와 전륜오수(剪輪五銖) 등이 각 1매씩 출토되었음.

두 번째 SST2. 산성의 서북벽 3호치(馬面) 남측 지점에 위치함. 방향은 동서방향이고, 트렌치 규모는 길이 13m, 너비 2m, 깊이 6m임. 드러난 벽체의 바닥 너비는 6.14m, 꼭대기 너비 5.6m, 잔고 2.8m임. 외벽은 높이 1m당 8㎝ 안으로 들여쌓았으며, 내벽은 높이 1m당 1㎝씩 안으로 들여쌓았음. 벽체 내측에는 토축과 토석혼축의 성벽을 구축하였음. 아래쪽의 토축성벽은 길이 7m, 높이 2.8m로 매 층의 두께 10~30㎝. 흙을 층층이 다져 18층 정도 쌓아올렸음. 토축 성벽 상부와 그 바깥쪽에 토석혼축의 성벽을 구축하였는데, 매 층의 두께는 40~80㎝로 길이 6.5m, 높이 3m임.

세 번째 SST3. 산성의 남벽 9호 치(馬面) 동측 지점에 위치함. 방향은 남북방향이고 트렌치 규모는 길이 10m, 너비 2m, 깊이 2.7m임. 드러난 벽체의 너비는 6m임. 벽체 내측은 흙을 다져 쌓았으며, 토벽의 길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음. 토축 성벽은 매 층 마다 약 15~20㎝ 두께로 흙을 층층이 다져서 모두 9층 정도 쌓아올렸음. 토축성벽의 잔고는 2.7m임. 토축 성벽 내부에서 니질(泥質)의 회색 토기편이 출토되었음.

네 번째 SST4. 산성의 동문 북측 지점에 위치함. 방향은 동서방향이고, 트렌치 규모는 길이 9.2m, 너비 2m, 깊이 6m임. 드러난 벽체의 너비는 7.2m, 잔고 3.9m임. 외벽은 높이 1m당 8㎝씩 안으로 들여쌓았으며 벽체 내측의 토축성벽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음(1997년 발굴 당시).

성돌은 형태에 따라 쐐기형 돌(楔形石), 북꼴 돌(梭形石), 장방형 성돌[長方形石(條石: 긴 네모 막대꼴 성돌)], 홈이 두 개 있는 성돌(雙槽石), 판석(石板) 등으로 분류됨. 성벽이나 치의 면석에는 다듬은 쐐기형 돌(楔形石), 성벽 안쪽에는 다듬은 북꼴 돌(梭形石)을 끼워넣는 돌로 사용하였으며, 성벽 속을 서로 맞물리도록 괴석과 깬돌로 틈을 채워 견고한 벽체를 축조하였음. 석회암이나 화강암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동쪽 절벽 부근의 석질과 비슷함.

첫 째 쐐기형돌(楔形石). 정면은 장방형으로 약간 튀어나왔으며 평면은 삼각형임. 대체로 벽체 내외벽의 면석에 사용되었음. 벽체나 치(馬面)의 기초 부분에 사용한 쐐기형 돌(楔形石)은 약간 거칠게 다듬었으며, 규격화된 두께는 큼. 정면의 너비는 40~60㎝, 가장 넓은 것은 80㎝에 달하며 두께는 30~40㎝, 평면 길이 50~60㎝임. 성벽의 벽면에 사용된 쐐기형 돌(楔形石)은 정교하게 다듬었음. 정면의 너비 30~50㎝, 두께 20~35㎝, 길이 45~55㎝임. 문길(門道) 양측의 벽체 및 배수구(涵洞) 벽면에 사용된 쐐기형 돌(楔形石)은 벽체에 사용된 성돌보다 규격이 작으며, 잘 다듬었음. 정면 너비 30~32㎝, 두께 20㎝, 평면 길이 40~45㎝임.

두 번째 북꼴 돌(梭形石). 성벽 체성의 안쪽에 끼우거나 혹은 결합석으로 사용됨. 벽면에 끼우는 북꼴 돌은 비교적 잘 다듬었으며, 두 개의 쐐기형 돌(楔形石) 중간의 빈틈에 끼워 고정시킴. 길이는 50~60㎝임. 벽체 내부에 사용되는 북꼴 돌은 조금만 다듬었으며 규격은 일정하지 않음. 길이는 약 30~45㎝임.

세 번째 장방형 돌[長方形石(條石: 긴 네모 막대꼴 성돌)]. 크기에 따라 大, 小 2종류로 나뉨. 큰 것은 석회암으로 길이 40~80㎝, 너비 50~60㎝, 두께 30~50㎝임. 주로 치의 기초 바닥부의 양변 외각에 사용됨. 작은 것은 화강암석으로 길이 50㎝, 너비 42㎝, 두께 24㎝. 모서리 각도는 90도를 이룸. 성가퀴(女墻)에 일부 사용됨.

네 번째 홈이 두 개 있는 성돌(雙槽石). 모두 장방형으로 바닥은 평평하며 표면과 양끝은 차이가 있음. 4형식으로 분류됨.

Ⅰ식. 중간이 잘록한 형태(束腰形), 양끝은 약간 평평한 활모양임. 97SS: 1의 규격은 길이 42㎝, 끝 너비 21㎝, 중간 너비 20㎝, 두께 10㎝임. 양측 중부에 홈(凹槽)을 팠음. 홈 길이 13㎝, 너비 5.5㎝, 깊이 4㎝임. 두 홈 사이의 간격은 15.5㎝. Ⅱ식은 반호형(半弧形)임. 97SS: 3의 규격은 길이 39㎝, 너비 23㎝, 두께 11㎝임. 홈 길이 12㎝, 너비 6㎝, 깊이 3.5㎝임. 두 홈 사이의 간격은 15㎝. Ⅲ식은 사다리꼴임. 97SS: 7의 규격은 길이 35㎝, 바닥 너비 21㎝, 윗너비 6.8㎝임. 홈 길이 10㎝, 너비 6㎝, 깊이 4㎝. 두 홈 사이의 간격은 15㎝. Ⅳ식은 방형임. 97SS: 16의 규격은 길이 39㎝, 너비 21~22㎝, 두께 9㎝임. 홈 길이 9㎝, 너비 4㎝, 깊이 2㎝임. 두 홈 사이의 간격은 14㎝.

다섯 번째 판석(石板). 모두 석회암을 다듬어 만들었음. 일반적으로 길이 100~140㎝, 너비 80~110㎝, 두께 30~50㎝임. 가장 큰 판석은 길이 234㎝, 너비 140㎝, 두께 23㎝임. 주로 배수로(涵洞)의 덮개(盖頂)돌로 사용됨.

성벽의 기초부 축조방식은 성벽의 입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세 가지로 구분됨.

첫 째 홈 기초법(基槽基礎法)임. 산세가 낮은 웅덩이나 골짜기 입구에 혹은 비교적 완만한 비탈지상에 시설하는 방법임. 벽체의 너비 정도에 따라 암반층까지 기초 홈을 판 다음 기초를 축조하는 방법임. 기초 부분은 일반적으로 깊이 40~70㎝, 2 내지 3층 기초석을 축조하는데, 비교적 거칠게 다듬은 쐐기형 돌(楔形石)을 사용함. 틈새가 비교적 크게 벌어졌는데, 이는 벽체를 수평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임.

두 번째 착암기초법(鑿岩基礎法). 산세가 비교적 가파르고 암석이 돌출한 곳에 사용하는 축조법임. 먼저 암반을 뚫어서 평면 또는 기초 홈을 조성한 다음 성벽을 축조하는데, 이 축성법을 이용한 성벽 하단부는 대체로 안쪽의 암벽과 서로 연결됨. 이에 일정 높이 이상 성벽을 쌓은 다음 끼워넣는 돌로 내벽면과 연결한 다음 꼭대기까지 쌓음.

세 번째 버팀축조법(戧築法). 산세가 비교적 가파른 산비탈에서 산사태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임. 성벽 너비 정도로 기초 홈을 굴착한 다음 지세에 따라 몇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의 최저 지점에서 성벽을 쌓기 시작하여 아래쪽 1단이 수평선을 초과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성벽을 축조하였음. 이러한 축조법은 성벽의 면석이 10~12도 정도 기울게 되는 경사각(斜角)을 만들게 됨.

석대자산성은 몇 차례의 발굴이 이루어 졌는데 해당 연도의 대략적인 발굴내용 등은 아래와 같음.

2002년 발굴조사의 기술내용. 02SSⅢT1 남벽 단면의 지층 퇴적. 발굴 구역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음, 지층은 산비탈이 뻗어나간 지세를 따라 퇴적되어 있음. 제1층은 두께 5~15㎝이고, 경작토층임. 소량의 토기편, 청화자편(靑花瓷片)이 출토되었으며, 근현대의 문화층에 속하는 퇴적층임. 제2층은 지표에서 깊이 15㎝ 지점이고, 두께는 0~15㎝임. 홍갈색토층으로 니질의 회색토기 및 소량의 모래혼입 토기편, 또 소량의 머리뼈(骨頭), 불에 탄 흙덩이 등이 보임. 주로 트렌치의 동남모서리에 분포함. 제3층은 지표에서 깊이 15~20㎝ 지점이고, 두께는 0~35㎝임. 검은색토층으로 토질은 비교적 단단함. 주로 트렌치의 동남부에 분포. 제4층은 지표에서 깊이 약 15㎝ 지점이고, 홍갈색토층이며 토질은 비교적 단단하며, 소량의 작은 돌이 섞여있음. 주로 트렌치의 서부에 분포. 제5층은 지표에서 깊이 약 50㎝ 지점이고, 두께는 50㎝임. 회색토층으로 토질은 푸석푸석함. 대량의 니질 토기편과 일정 수량의 모래혼입 토기편이 포함되어 있음. 토기구연의 특징이 명확하며, 이 지층은 기본적으로 트렌치에 가득 분포함. 이 밖에 또 대형의 동물 골격이 출토되었음. 제5층 아래에서 주거지(房址)가 발견되었음.

2004년 발굴 조사의 기술내용. 2004년 4월 중순~9월 말 석대자산성 Ⅲ 구역에 대한 2차 발굴을 진행함. Ⅲ 구역은 산성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지세는 비교적 평탄함,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 포하(蒲河)(현재는 기반산 댐)가 있음. 2002년 1차 발굴 구역의 남쪽 가장자리에 5×5㎡ 트렌치 18개를 설정, 04SSⅢT0101~T0604로 편호하였음. 발굴 면적 500여㎡,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주거지(房址) 5곳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에서 3곳을 발굴, 정리하였으며 또, 재구덩이(灰坑) 7곳을 발굴하였음. 토기, 석기, 동기, 철기, 골기(骨器) 등 총 130여 건의 유물이 출토되었음.

04SSⅢT0203의 지층퇴적. 산성 내 지층퇴적은 비교적 간단하며 두께가 일정치 않음. 어떤 곳은 T0303와 같이 표토아래가 붉은색의 생토층 혹은 산피석(山皮石)층임. 유적은 대체로 제2층 퇴적아래에 분포함. T0203 발굴은 비교적 깊으며 또 이 트렌치의 북벽 지층이 비교적 완전하므로 이 지층퇴적을 예로 들어 아래에 설명. 토질과 토색의 변화에 따라 지층을 4층으로 구분할 수 있음. 제1층은 표토층이고, 두께는 10~15㎝임. 토기편, 청화자편(靑花瓷片), 피리편 등이 출토되었음. 현대층임. 제2층은 검은색 토층으로 깊이 10~15㎝, 두께 20~40㎝임. 니질 회색 토기 뚜껑, 목이 잘록한 호(束頸罐)의 구연부, 화살촉, 도자(削) 등 철기, 쐐기형 돌(楔形石) 등이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문화층임. 제3층은 불에 탄 흙덩이를 함유한 검은색 토층으로 깊이 40㎝, 두께 0~30㎝임. 트렌치의 동부와 북부에 분포함. 토질은 푸석푸석함. 불에 탄 흙덩이를 함유, 석탄재, 불에 탄 흙덩이 상부에 개별적으로 백회면이 있음. 니질의 회색 토기편, 동기, 포정(泡釘), 철제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문화층임. 제4층은 회색토층으로 토질은 부드러움. 깊이 50~75㎝, 두께 0~30㎝임. 트렌치의 동부와 북부에 분포함. 이 지층아래에서 F4를 발견함. 이 지층에서 니질의 토기편, 철제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문화층임. 주거지(房址)가 발견되어 제4층 아래는 발굴하지 않았음.

2006년도 발굴 조사의 기술 내용(Ⅲ구역 T0404 남면 확대 발굴 및 저수시설).

석대자산성 Ⅲ구역은 산성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서쪽은 산성의 가장 높은 지점인 요망대에 의지하며, 동쪽과 남쪽 방향은 포하(蒲河)(현재는 기반산 댐)를 굽어보고 있음. 북변은 저수지와 동문에 가까이 잇닿아 있음. 이 곳의 지세는 비교적 평탄하며 시야가 탁 트인 개활지로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형임. 현재는 일부가 과수원임. 2002년 이래 심양시 문물고고연구소에서 줄곧 발굴을 진행하였음. 2002년 Ⅲ구역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주거지(房址) 2곳을 발견하였으며, 2003년 Ⅲ구역 시굴 트렌치에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석괴분포지를 발견하였음. 그 중에 적지않은 널빤지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는 온돌(火炕)에 깔아 설치하는 석재임. Ⅲ구역의 발굴 중에 주거지(房址) 4곳을 정리하였음. 2006년에, 2004년도 발굴시 기초위에서 Ⅲ구역 T0404 남면에 대한 확대발굴을 진행하였으며, 이곳에서 주거지(房址) 1기(F1)를 발견하였음. 철제 화살촉 3점, 철제 송곳(鐵錐) 1점, 陶瓮 1점, 돌절구(石臼) 1점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음.

Ⅲ구역 T0404의 확대 트렌치의 지층퇴적. 지층퇴적은 간단하며, 모두 2층으로 구분됨. 제1층은 표토층임. 제2층은 문화층으로 이번 발굴 조사에서 F1 개구부(開口部)가 제2층 아래에서 발견되었음. 제2층 이하는 생토층임.

Ⅲ구역T0404의 북벽의 지층퇴적. 제1층은 표토층으로 두께 10~15㎝임. 소량의 니질 회색 토기편과 현대의 쓰레기가 포함되어 있음. 제2층은 검은색 토층으로 두께 10~15㎝임. 소량의 니질 회색토기편이 포함되어 있음. 제2층 아래는 생토층이며, 전홍색(磚紅色) 점토층임.

1990~1991년의 출토유물 중 철기는 모두 58점임. 그 중에 찰갑편(甲葉)과 전촉(箭鏃)의 수량이 비교적 많음. 토기는 300여 점의 출토 유물 가운데 가장 많음. 대부분은 니질의 회색 토기이며, 붉은색 토기도 상당 비율을 점유함. 그 다음으로 홍갈색 토기, 황색 토기, 회흑색 토기, 검은색 토기가 많으며 시유 도기편은 소량 출토되었음. 토질은 비교적 견고하고 단단하며, 소성온도는 비교적 높음. 대부분의 토기는 민무늬이고, 문양으로는 선문(弦文)과 불규칙한 격자암문(暗壓网格文)이 보임. 대체로 물레로 제작하였으며, 일부분은 손으로 만들거나 혹은 손으로 만든 다음 물레로 다듬었음. 표면을 문지른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음. 대부분 토기에 구멍을 뚫어 꿰맨 흔적이 남아있음. 토기 기형으로는 호(罐), 옹(甕), 호(壺), 병(甁), 소반(盤)과 심발형토기(鉢) 등이 있음.

1997년에는 비교적 소량의 유물이 출토됨. 출토지는 SS97TG1 제3층임. 철기는 철제 화살촉(鐵鏃), 철제 찰갑편(鐵甲葉)이 있음. 토기는 민무늬가 주로 있으며, 무늬는 선문(弦文), 수장문(垂幛文)을 시문하였음. 표면에 눌러 새긴 불규칙한 망격(网格) 모양의 암문이 있는 것이 특징임. 대부분 물레로 제작하였으며, 토질은 견고하고 단단하며, 소성온도는 비교적 높음. 손잡이와 바닥 및 동체는 대체로 나중에 연결하였으며, 손잡이는 양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만든 편평한 대상파수(橋狀)로, 동체에 적합한 위치에 부착한 뒤에 가는 진흙으로 접합 부위에 발랐음. 토기편의 상부에 대체로 뚫린 구멍이 있음. 니질 회색토기가 주로 출토되었으며 또 홍갈색 토기, 황갈색 토기, 회색 토기 및 소량의 시유 도기도 있음. 토기의 색깔은 대개 표면과 속이 같지 않음. 기형은 호(罐), 옹(甕), 분(盆), 소반(盤)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음. 소반(陶盤)은 복원 가능함.

1998년 출토유물 중 철기는 총 107점 출토됨. 종류로는 화살촉(鏃), 찰갑편(甲葉), 못(釘), 도자(削), 송곳(錐), 낫(鉤), 잔(杯), 도끼(斧), 광두정(門釘), 문확석(門臼), 굴대(門軸), 기모(器帽) 등이 있음. 토기는 기형을 옹, 관, 반, 분, 솥(釜), 완, 시루(甑), 두형 토기(豆), 뚜껑(器蓋), 가락바퀴(紡輪), 원반형 토제품(陶餠)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음. 태토는 니질 토기, 모래혼입 토기, 시유 도기, 활석(滑石) 혼입 토기로 구분되며 그 중에 니질 토기가 96%를 점함. 시유 도기는 1.7%, 모래혼입 토기는 1.1%, 활석 혼입 토기는 1.2%의 비중을 점함. 토기의 색깔은 회색과 흑회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또 황갈색, 홍갈색, 붉은색이 있으며 일부 표면이 회색, 혹은 홍갈색인 것도 있으며, 태토(胎心)가 홍갈색 혹은 회색인 것도 있음. 시유 도기의 색깔로는 청회색, 황갈색, 홍갈색 등이 있음. 대부분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음. 소량의 토기만 복원 가능함. 토기는 일반적으로 단단하며 소성온도는 비교적 높음. 표면은 주로 민무늬이고, 여러 차례 문질렀으며(壓磨), 매끈함. 무늬는 주로 선문(弦文), 파상문(水波文), 인장문(戳印文), 격자암문(暗壓网格文), 소량의 토기편은 철합공(綴合孔)이 있음. 토기는 대부분 물레로 제작하였으며, 니조접축법(泥條接築法)이 큰 기종에서 보임. 손잡이는 대상파수(橋狀耳)가 주이며, 반원형의 꼭지(盲耳)도 있음. 모두 기벽에 붙여 만들었음. 동기는 모두 6점이고, 고리, 화살촉(鏃)과 장신구(飾件)로 분류됨. 석기는 모두 5건 출토되었음. 유공석재(穿孔石), 간돌(磨石), 가락바퀴(紡輪)와 돌자귀(石錛)로 분류됨. 골각기는 모두 2건으로 유공골기(穿孔骨器)와 각기(角器)가 있음.

2002년(Ⅲ구 1차 발굴)의 출토 유물 중 철기는 화살촉(鏃), 소찰(甲頁), 창(矛) 등이 출토됨. 출토 토기중 완형은 없으며, 기형은 분(盆), 호(罐), 소반(盤), 옹(甕) 등으로 분별할 수 있음. 주로 분(盆), 호(罐), 옹(甕)이며 일정 수량의 원형 토기편이 있음. 형태를 살펴보면 표면은 여러 차례 문질러 매끈함. 민무늬가 주로 있고 한 줄 혹은 여러 줄의 음각선문(凹弦文), 파상문(水波文), 집선파상조합문(弦文水波文組合文), 인장문(戳印文), 중호문(垂幔文), 압인(壓印) “X”문, 음각문(刻劃文) 등도 있음. 토기는 대부분 물레로 제작하였으며, 손잡이는 대체로 대상파수이고. 꼭지 모양(紐狀)도 있음. 모두 동체 기벽 상부에 부착되어 있음. 태토는 니질 토기가 주이고, 소량의 모래혼입 토기도 있음. 색깔은 회색이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갈색이 많고, 붉은색, 흑색마연토기 및 시유 도기도 소량 있음. 태토는 비교적 단단하며, 소성온도는 높음. 시유 도기로는 황갈색, 홍갈색 두 종류가 있음. 동기는 모두 7점이며, 종류로는 비녀(簪), 화폐, 고리(環), 반지(戒指), 도자(削) 및 포목기(包木器) 등이 있음. 석기는 모두 6점이며, 종류로는 칼(石刀), 석타(石墮), 구슬(石珠), 구멍 있는 석기와 가락바퀴(紡輪) 등이 있음.

2004년(Ⅲ구역 2차 발굴)의 출토 유물. 출토된 철기의 수량은 비교적 다량임. 화살촉과 찰갑편이 주로 출토되었으며, 그 밖에 허리띠고리, 못, 칼, 송곳, 도끼, 산, 고리와 불분명한 철기가 있음. 유적 내에서 출토된 토기편의 수량은 비교적 다량이나 복원할 수 있는 유물의 수량은 비교적 소량임. 토기의 표면은 여러 차례 문질렀으며(壓磨), 매끈함. 주로 물레로 제작하였음. 손잡이는 대상파수(橋狀耳)가 주이고, 모두 기벽의 위쪽에 부착되어 있음. 무늬는 민무늬가 주이며, 이전의 발굴에서는 한 줄, 여러 줄의 선문(弦文), 파상문(水波文), 현문수파조합문(弦文水波組合文), 인장문(截印文), 중호문(垂幔文), 음각문(刻劃文) 등이 출토되었었는데 이번 발굴(2004년 Ⅲ구역 2차 발굴)에서는 이 외에도 여러 줄의 선문(弦文)과 절자문(截刺文)의 조합문(組合文), “X” 문, 각획절자문(刻劃截刺文), 승문(繩文), 마포흔(布文) 등이 발견되었음. 태토는 주로 니질이며, 모래혼입 토기도 소량 있음. 일반적으로 단단하며, 소성온도는 비교적 높음. 색깔은 주로 회흑색이며 그 다음으로 갈색이 많고, 붉은색, 검은색 및 시유 도기가 소량 있음. 구연 및 저부의 특징에 따라 기형을 옹(甕), 호(罐), 소반(盤), 분(盆), 뚜껑(器盖), 호(壺)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음. 또 일정 수량의 둥근 토기편도 있음. 기와(瓦)는 2점 출토되었음. 문양은 같고, 배면에 굵은 승문을 타날하였으며 내면에 마포흔이 잔존함. 태토는 같고, 홍갈색이며 니질임.

2000~2005년(저수시설) 출토 유물. 석대자산성 저수시설 유적에서는 토기, 철기, 석기, 골기 등 각종 유물 96건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저수지 안에서 출토되었음. 그중 철기는 모두 52점이 출토되었음. 종류로는 저울추(錘), 끌(鏨), 제량관(提梁罐), 정(鑿), 수레 줏대(車輨), 마구(馬具), 찰갑편(甲葉), 화살촉(鏃), 장식물(飾件), 가마솥(釜), 재료(構件), 도자(削), 편자(馬掌), 낚시바늘(鉤), 마름쇠(蒺藜), 철편(鐵片) 등이 있음. 토기는 모두 34점 출토됨. 종류로는 호(罐), 잔(杯), 소반(盤), 발(鉢), 가락바퀴(紡輪), 토기편, 구슬(陶珠), 그물추(網墜) 등이 있음. 석기는 모두 8점임. 종류로는 구멍뚫린 석기(鑽孔石器)와 돌도끼(石斧), 돌절구(石臼)가 있음.

2006년의 출토유물. 서문지 보충 발굴시의 출토 유물 중 철기는 철제 못(鐵釘), 가는 철제 띠(條帶), 철편 등 총 17점이 확인됨. 토기는 주로 석대자산성 서문지의 문길(門道)에서 출토되었음. 저경 7~10㎝. 토기의 높이와 동체의 최대 직경이 서로 비슷함. 물레로 제작하였음. 기형은 소구관(小口罐)이 주이며, 또 니질의 회색 도옹의 구연이 소량 출토되었음. 어떤 호(罐)의 바닥에는 “Y” 자형의 부호가 있음. 기형과 구연은 그다지 규정적이지 않음. 토기 저부의 주연(邊沿) 및 외측은 매끈하지 않음. 니질의 회색토기가 대부분이며, 니질의 홍갈색 토기도 소량 있음. Ⅲ구역 T0404 남면 확대 발굴시의 출토 유물은 비교적 소량이며, 종류는 간단함.

 
역사적 의미
 
군사 성보(城堡)설. 성 내부에서 철제 화살촉과 찰갑편 등이 많이 출토되었음(李曉鍾·劉長江·佡俊岩, 1993).

호위성(護衛性) 산성설. 동남쪽 19㎞의 고이산성이나 북쪽 34.5㎞의 최진보산성보다 소형산성이므로 호위성 산성일 것(李曉鍾·劉長江·佡俊岩, 1993).

군사 성보(城堡)이자 포하(蒲河) 연안일대 지배를 위한 거점성설. 석대자산성은 여러 요하 도하로 가운데 북쪽 루트인 신민 고대산~심양로를 통해 요하를 건넌 다음 고이산성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음. 그런데 석대자산성은 개원 마가채산성, 용담사산성, 고성자산성 등 요하 중상류일대 고구려산성과 여러 면에서 유사함. 입지 조건에서 이들 성과 마찬가지로 송요하대평원에서 요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하천과 나란히 달리던 산줄기에서 하천 연안으로 약간 돌출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음. 따라서 석대자산성은 입지조건상 기본적으로 송요하대평원에서 포하연안으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다고 추정됨. 더욱이 석대자산성에서 포하 상류를 거슬러 나아가면 무순이나 철령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음.

한편, 석대자산성은 둘레 약 1.4㎞로서 대형산성보다 한 등급 아래인 중형산성으로 분류되지만 성내부는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로서 주거용 공간이 넓은 편임. 실제 발굴 결과 건물지와 부엌, 주거지, 재구덩이 등 주거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음. 따라서 석대자산성도 다른 고구려산성처럼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추정됨. 석대자산성은 송요하대평원에서 포하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는 군사성보이자 포하 연안일대를 지배하기 위한 거점성이었음(余昊奎, 1999)

기타 고구려의 금산성(金山城), 개모성(蓋牟城), 횡산성(橫山城), 신성(新城)설 등이 있음.

 
자연환경
 
산성 서남쪽에는 심양시 동릉구 만당향(瀋陽市 東陵區 滿堂鄕)의 석대자촌(石臺子村) 마을이 있었는데 댐건설로 수몰되었음. 석대자 산성은 포하(蒲河) 연안의 충적평지와 요동평원과의 접경지대 안쪽에 위치하여 서남쪽으로 심양, 동남쪽으로 무순, 동북쪽으로 철령 등 여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음.

산성의 서북쪽은 길림합달령산맥(吉林哈達嶺山脈) 서남단에 자리잡은 휘산(輝山)의 산봉우리로 이어져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대인 반면, 산성의 동, 남쪽은 괴석이 높이 솟아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이루고 그 아래로 포하(蒱河)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 연안 일대는 본래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하곡평지를 이루고 있었으나 기반산(棋盤山)댐 건설로 동남부는 모두 수몰되어 주변 지세가 많이 바뀌었음. 댐건설로 수몰하기 이전의 산성의 동, 남부쪽 지형조건으로 인해 ‘우뚝솟은 돌산’ 이라는 의미에서 ‘석립자산(石砬子山)’ 또는 ‘석대자산(石臺子山)’ 이라고 불렸음. 포하는 길림합달령산맥 서남단의 무순, 심양 경계 지역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요하로 흘러듬.

 
유물 정보

철제화살촉(鐵鏃) 101점, 찰갑편(甲葉) 49점, 철제도자(鐵削) 9점, 철제도끼(鐵斧) 3점, 창(矛) 1점, 철제칼(刻刀) 4점, 마름쇠(蒺藜) 1점, 철제 못(鐵釘) 30점, 송곳(錐) 4점, 허리띠고리(帶鉤) 9점, 철제갈고리(鐵掛鉤) 4점, 철제고리(轉環) 3점, 철제추(鐵製錘) 7점, 용수철(彈簧形鐵器) 1점, 낚시바늘(鉤) 1점, 가는 철제 띠(鐵條帶) 1점, 철솥(鐵釜) 3점, 제량관(提梁罐) 1점, 마구(馬具) 1점, 철제편자(鐵製馬掌) 1점, 철제재갈(鐵製馬銜) 1점, 보습(犂鏵) 2점, 철정(鐵鑿) 3점, 철제 끌(鐵製鏨) 1점, 살포(鏟) 2점, 창고달이(鐵鐏) 1점, 낫(鉤) 4점, 철제재료(鐵製構件) 3점, 치레걸이(飾件) 1점, 수레 줏대(車輨) 1점, 동곳(環首器) 1점, 칼 모양 철기(刀形器) 1점, 마름모꼴 철기(菱形器) 1점, 고리모양 철기(環首鐵器) 5점, 못모양 철기(釘形鐵器) 1점, 삼각형 철기(三角形首鐵器) 1점, 활모양 철기(弓形鐵器) 3점, 반원형 철기(半圓形 鐵器) 1점, 낚시바늘모양 철기(鉤形鐵器) 3점, 대절철기(對折鐵器) 1점, 기모(器帽) 2점, 철제 코뚜레(鐵穿鼻) 1점, 유공철기(有孔鐵件) 2점, 광두정과 완충금구(城門門扇鉚釘) 17점, 연결못과 완충금구(鉚件) 1점, 철테(鐵箍帶) 4점, 철제 문장부 고리(門戶) 2점, 확쇠(門軸套) 2점, 철제문추(鐵製門樞) 1점, 철편(鐵片) 4점

호(罐) 48점, 옹(甕) 53점, 분(盆) 12점, 호(壺) 8점, 병(甁) 1점, 잔(杯) 2점, 소반(盤) 25점, 발(鉢) 10점, 솥(釜) 5점, 시루(甑) 2점, 뚜껑(器盖) 8점, 잔(盞) 4점, 완(碗) 2점, 두형토기(豆) 1점, 문자명토기(文字銘土器) 2점, 뚜껑꼭지(器盖紐) 1점, 토기편(土器片) 15점, 가락바퀴(紡輪) 23점, 거푸집(范) 1점, 원반형토제품(陶餠) 4점, 어망추(網墜) 3점, 토제구슬(陶丸) 4점, 토제자루(陶柄) 1점, 기타 토기편 57점, 기와(瓦) 2점

동제띠고리(銅製鉤) 5점, 동제화살촉(銅鏃) 1점, 동포(銅泡) 1점, 동제 장식물(銅飾片) 4점, 청동장식판(靑銅裝飾板) 1점, 동제비녀(銅製簪) 2점, 동제고리(銅製環) 3점, 동제반지(銅製戒指) 1점, 동제도자(銅製削) 1점, 포목기(包木器) 1점, 동제팔찌(銅製鐲) 1점, 동제송곳(銅製錐) 1점

석촉(石鏃) 1점, 석부(石斧) 4점, 석도(石刀) 2점, 자귀(錛) 2점, 절구모양 석기(臼狀石器) 3점, 기둥모양 석기(柱狀石器) 1점, 석제고리(石環) 1점, 유공석재(穿孔石) 7점, 간돌(磨石) 1점, 석타(石墮) 1점, 석제구슬(石珠) 2점, 석제쐐기(石楔) 2점, 근유골추(僅有骨錐) 2점

뿔모양 골기(角形器) 1점, 골제 비녀(骨簪) 1점, 유공골기(穿孔骨器) 1점, 각기(角器) 1점, 골제대롱(骨管) 1점

은제비녀(銀簪) 1점, 자기 완(瓷器 碗) 1점, 오수전(五銖錢) 6점, 동전(銅錢) 1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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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합이빈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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