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9261108311&code=114

삼성엔지니어링은 어떻게 내부고발자를 탄압했나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2017.10.10ㅣ주간경향 1246호

ㆍ폭언·욕설에 부당한 자리배치·업무배제… 5년 연속 인사고과 거의 최하등급

“제발 이번 한 번만이라도 사실대로 보고하자.” 

2011년 11월 삼성엔지니어링 ‘마덴 롤링밀 프로젝트’ 회의에서 철골파트 구매담당인 ㄱ씨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미 자재 조달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하길 여러 차례, 상사들은 번번이 ㄱ씨의 의견을 묵살한 터였다. 상사들은 이번에도 자재 수급량을 실제 수치와 크게 다르게 허위로 계상한 뒤 상부로 보고를 올렸다. ㄱ씨에게는 어김없이 “왜 시키는대로 하질 않느냐”는 폭언이 돌아왔다. 

추석 연휴를 꼬박 반납하고 50여일간 단 이틀 쉬면서 프로젝트에 매달린 말단직원의 ‘내부고발’은 그렇게 묻혀갔다. 돌이켜보면 삼성엔지니어링이 마덴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을 보지 않을 수도 있었던 기회였을지 모른다. 후폭풍은 4년 뒤 찾아왔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5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무려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 폭탄을 터뜨렸다. 삼성 측이 밝힌 마덴 프로젝트의 손실액은 1400억원이지만, 업계가 추산한 마덴 프로젝트 전체 손실규모는 3000억~4000억원에 달한다. 

2011년 5월 8일 손병복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왼쪽 두 번째)이 사우디 마덴사 관계자들과 알루미늄 압연 설비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 삼성엔지니어링 제공
2011년 5월 8일 손병복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왼쪽 두 번째)이 사우디 마덴사 관계자들과 알루미늄 압연 설비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 삼성엔지니어링 제공

마덴 부실의 ‘진실’은 무엇인가 

마덴 프로젝트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1년 5월 수주한 대형 철강플랜트 프로젝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광물청인 마덴과 미국 알코아의 합작회사인 ‘마덴 롤링밀’이 발주했다. 사우디 북부에 연간 38만t의 알루미늄 압연 제품을 생산하는 압연설비를 짓는 사업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이 공시한 내용을 보면 총계약규모는 5억9000만 달러(6500여억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설계, 조달, 시공, 시운전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이른바 ‘턴키 방식’으로 맡아 2013년 7월 완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공사의 진척이 더뎠고, 결국 계약한 공사기한(공기)를 1년 넘게 어긴 결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큰 손실을 보고 말았다. 그간 마덴 프로젝트의 공기가 지연된 이유에 대해 사측은 발주처의 횡포 등 외부 문제를 들어 왔다. 하지만 당시 마덴 프로젝트의 일선에서 일했던 ㄱ씨의 주장은 이와 크게 달랐다. 외부 요인보다는 심각한 내부 문제가 공기 지연과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거의 일이긴 해도 마덴 프로젝트 부실의 실제 전말을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마덴 프로젝트 등을 비롯한 해외사업의 잇따른 부실로 2015년 말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상장 폐지 위기에까지 몰렸고, 2016년 초 진행한 유상증자로 겨우 회사를 살렸다. 회사의 실적이 급락하는 동안 수많은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 한때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10% 가까이 보유했던 국민연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ㄱ씨가 <주간경향>에 털어놓은 마덴 프로젝트 부실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ㄱ씨는 2011년 6월 경력사원으로 처음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했다. ㄱ씨와 회사 간 갈등이 시작된 것은 입사한 지 두 달 만인 8월에 ㄱ씨가 마덴 프로젝트팀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철강플랜트에서는 압연설비를 넣으려면 먼저 공장부터 지어야 한다. ㄱ씨 업무가 바로 공장을 지을 때 필요한 철골 자재를 구매해 공급하는 일이었다. 설비를 본격 시작하기 위한 사전작업의 핵심에 해당한다. 

ㄱ씨가 추석 연휴도 못쉬고 일하기를 석 달째, 문제가 생겼다. 플랜트 설계작업이 석 달가량 지연되면서 자재 공급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설계가 지연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재 제작도 늦게 시작됐고, 자재 공급도 당초 계획보다 틀어지기 시작했다. ㄱ씨가 실제 공급 가능한 자재량을 파악해보니 매달 계획물량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ㄱ씨는 이 사실을 직속상사에게 보고했고, 대책을 세우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직속상사는 ㄱ씨의 건의를 묵살했다. 윗선에 올리는 보고서에는 “자재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만 들어갔다. 예상 공급량도 ㄱ씨가 제시한 실제 수치와는 크게 달랐다. 명백한 허위보고였지만 직속상사는 “내가 시키는대로 그냥 자재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하라”고 요구했다. 하루는 회사 부사장에게 납품 일정을 사실대로 보고했다가 직속상사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더 윗선의 상사에게도 문제를 얘기했지만 “목표량을 적게 잡으면 그 정도밖엔 못채운다. 최대한 목표치를 높게 잡아야 물량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덴 프로젝트’ 결국 수천억원 손실 

상사들의 호언장담과 달리 상황은 더 악화돼갔다. 이듬해 현장에서는 철골 자재가 늦는다며 난리였다. 이대로라면 공기가 지연될 게 뻔했다. 뒤늦게 자재 신속생산을 요구하느라 추가 비용이 들었다. 이미 자재 값도 당초 예상보다 25%가량 높아져 손실도 커져가는 상태였다. 망가져가는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ㄱ씨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ㄱ씨는 결국 마음의 병을 얻었다. 회사 상담실을 찾았다가 우울증 의심 진단을 받았다. 2012년 4월에는 상담사를 통해 사내 인사담당자를 만나 재차 철골파트 내 허위보고 문제와 폭언, 이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며 타부서로의 전보를 요청했다. 뭔가 합리적인 조치를 기대했지만 인사담당자의 반응은 상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는 “폭언이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인사담당자를 만난 후 ㄱ씨는 되레 상사에게 호출당했다. 상사는 “왜 부서 얘기를 타부서에 하고 다니느냐”며 ㄱ씨를 재차 채근했다.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ㄱ씨는 “자재 공급 등의 문제로 철골파트에서만 5개월가량 공기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설계 지연 3개월을 감안하면 공사 초기에 이미 8개월가량의 시간을 날려먹은 셈이다. 물론 단지 설계 지연과 철골파트의 문제만으로 최종 공기가 지연된 건 아니다. ㄱ씨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철강플랜트 사업 경험이 없던 터라 설계나 철골 이외 설비나 제작 등 여러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냈고, 문제들이 겹치고 여러 변수를 만들어내면서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ㄱ씨가 주장하는 마덴 프로젝트 부실의 전말이다. ㄱ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미 사업 초기 프로젝트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사측이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방관하고 공사를 강행한 끝에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문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ㄱ씨의 당시 허위보고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이른바 ‘내부 고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ㄱ씨가 내부 고발을 할 생각이 있었다면 감사팀을 통하거나 사내 홈페이지 내부고발 코너를 통해 조치가 가능했다”며 “공식적인 경로로 ㄱ씨의 내부 고발이 접수된 바 없다”고 밝혔다. 허위보고가 발생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해당 파트 내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며 “당시 담당자들이 미달된 자재 수급 목표량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보고를 올린 것이지 허위보고로 볼 순 없다”고 밝혔다. <주간경향>은 ㄱ씨가 허위보고를 주도한 것으로 꼽는 직속상사 2명과 접촉하려 했지만 이들은 2013년 내부 감사 이후 회사를 떠난 상태로 확인됐다. 

ㄱ씨는 내부 고발을 한 후인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연속 인사고과에서 거의 최하등급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해가 2015년으로 업무평가에서 C+와 역량평가에서 C를 받았는데, 이 역시 연봉을 산정하는 등급에선 하위 13%에 해당하는 ‘라’ 등급에 해당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인사고과 방식은 노동계에서 ‘악명’이 높은 시스템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1년만 인사고과에서 최하등급 평가를 받아도 많게는 연봉의 10~15%가 삭감된다”며 “사실상 노동자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올해 창사 이래 첫 노동조합이 출범한 이유도 바로 이 인사고과 시스템의 불합리성에서 오는 문제 탓이었다. 

이렇게 가혹한 인사고과에서 ㄱ씨는 무려 5년 연속 최하등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연봉도 매년 삭감돼 ㄱ씨가 받는 급여는 현재 2011년 입사 당시보다 오히려 더 적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이라면 2년 연속만 최하등급을 받아도 권고사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퇴사도 안 시키고 5년 연속 최하등급 고과를 준 건 다소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이를 마덴 프로젝트 당시 내부 고발을 한 데 대한 사측의 보복성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ㄱ씨는 부당고과에 더해 사측으로부터 그간 부당한 업무배제, 부당한 자리배치 등 납득하기 힘든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 중이다. 견디다 못한 ㄱ씨는 올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고과 및 부당처우 등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다. 사측은 부당한 대우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최하등급은 D등급인데, ㄱ씨는 C등급을 받은 해도 있어 매년 최하등급을 받았다고 볼 순 없다”며 “업무배제나 자리배치 문제는 발생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 마덴 둘러싼 진실 밝혀야 

지노위는 사측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주된 이유는 청구시한이 소멸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노위는 판정서에서 “부당해고 등의 행위에 대한 구제신청 기한은 사건 발생 후 3개월 이내”라며 “ㄱ씨가 주장하는 시점이 모두 3개월을 지나 구제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ㄱ씨 입장에서는 단지 과거의 일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인사고과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제대로 된 판단조차 받아보지 못한 셈이다. 업무배제 의혹에 대해서도 지노위는 “대기발령을 내리는 등의 물증이 없으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마덴 프로젝트를 최근 몇 년간 불거진 플랜트산업 부실의 전형 중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마덴을 수주하던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은 안팎으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며 “그렇다보니 저가로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처음 철강플랜트를 진행하다보니 여러 시행착오 끝에 공기를 넘기고 손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삼성엔지니어링은 2010년에 3520억원, 2011년에 4750억원 등의 순이익을 내며 급부상했지만 자유현금흐름(FCF)에 있어선 이미 2011년에 마이너스 1조원이 넘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한 전문 철강플랜트 업체 관계자는 “철강플랜트 공장을 짓다보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자재 물량을 허위로 보고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라며 “허위보고를 용인하는 사내 조직문화나 내부 프로세스가 문제”라고 밝혔다. 

ㄱ씨의 내부 고발 사실을 부인하는 삼성엔지니어링은 마덴 부실의 주요 원인이 ‘발주처의 횡포’라고 주장 중이다. 자신들은 공기에 맞춰 일단 건설을 끝냈는데 발주처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보완을 요구하는 바람에 최종 공기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은 주요 발주사인 마덴사가 공기 지연을 이유로 협의도 없이 지체 보상금을 집행했다며 국제중재 소송을 냈고, 공동 발주처인 알코아를 상대로는 미국 법원에 “알코아가 감리 횡포를 부려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송 결과가 어찌됐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마덴에 대한 국제중재 소송의 경우 소리 소문 없이 종결됐다. 알코아 소송에 대해 삼성엔지니어링은 “상당한 금액의 배상금을 받고 합의 종결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았는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에 따라 마덴 프로젝트에서 최종적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이 얼마의 손실을 봤는지도 불명확하다. 최대 4000억원대를 추산하는 업계에 비해 삼성엔지니어링은 “손실은 1000억원대”라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마덴건의 경우 내부 감사를 통해 철저하게 부실을 규명했고, 개선책도 마련해 이미 시행 중”이라며 “마덴 프로젝트의 정확한 손실규모 등 구체적인 금액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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