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425.22019195235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5> 빗살문토기의 기원은 어디일까?
빗살문토기 절대연대 바이칼 지역보다 한반도가 앞서
빙하기 이후 비슷한 문화 널리 퍼져
유라시아 전역· 아메리카에서도 발견
유력하던 바이칼 기원설 설득력 잃어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4-24 19:52:59 |  본지 19면


바이칼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토기. 밑바닥이 뾰족하다.

필자가 러시아 유학을 간 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노보시비르스크 사범대학교 부설 박물관에 간적이 있었다. 러시아어를 거의 몰랐었던 탓에 그냥 유물들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 빗살문토기와 너무도 유사한 토기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같이 간 연구원 동료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영어로 한마디했다. "강인욱 씨, 자네 전공은 청동기시대 아니었나? 저건 약 400년 전 시베리아에 살던 따따르족의 토기일세"라는 것이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전시장 내 팻말을 보니 작은 영어글씨로 '시베리아 원주민의 민속학'이라고 적혀있었다. 조선시대 기와보고 저것이 빗살문토기인가요,하고 물어보는 꼴이었다. 

빗살문토기는 비단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 전 지역을 포함해서 멀리는 동유럽까지 분포하며 동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흥미로운 논문이 나왔는데, 바로 에쿠아도르 원주민의 토기가 일본의 죠몽토기에서 기원했다는 연구이다. 이 학자가 본 죠몽토기는 한반도의 빗살문토기 영향을 받은 소바따 계통의 토기를 말한 것이니, 사실상 빗살문토기를 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교수였던 후지타 료사쿠는 1920년대 2년간 유럽 여러지역을 견학했는데, 당시 한반도에서 발견되던 빗살문토기와 비슷한 토기들이 유럽의 각 박물관에서 진열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1930년에 한반도 빗살문토기의 기원은 유라시아라는 글을 발표했고, 최근까지도 그 영향을 미쳤다. 

해방이 된 후 우리 학계에서는 바이칼 지역과 우리나라의 관계성을 주장하는 연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반도 서해안의 빗살문토기는 밑이 뾰족한 뾰족밑토기(첨저토기)라고 한다. 세우기도 힘든 첨저토기는 유라시아 중 딱 한 군데에서 보인다. 바로 러시아 바이칼 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발견된다. 바이칼 지역은 세로보 이사꼬보 글라즈꼬보 등 세 문화가 교차하는데, 이들 모두 첨저토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반도 서해안과 유사한 형태이다. 바이칼 지역이 한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역과 한반도 빗살문토기의 유사성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바이칼 기원설에 비판적인 견해가 더 많아졌다. 바이칼 지역의 사람들은 바이칼 호수의 풍부한 어족자원에 기반한 어로경제를 영위한 데 반해서 한반도 사람들은 원시 농경과 채집 생활을 병행했다는 반박이 그것이다. 절대연대로 보아도 한국 측이 더 이르다. 그런데 전편에서 소개했던 원시고토기 중에 바이칼 지역의 우스티-카렌가는 빗살문토기이며 아주 이른 시기여서 현재로서 정확한 답을 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문제는 획기적인 발굴 자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반구의 반을 아우르는 이렇게 넓은 지역에 서로 섞어 놓으면 모를 정도로 비슷한 토기가 분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북방 유라시아의 매머드 사냥꾼들은 각지로 퍼져나가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대(신석기시대)가 도래했다. 이때 이들이 공유했던 문화적 특성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한국어의 계통이 우랄-알타이어인지 아닌지 논란이 많은 이유도 아주 옛날에 분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언어학적 연구도 있는 것 보면 기원전 1만년 전의 천지개벽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필자를 바보로 만들었던 노보시비르스크 사범대학교 박물관의 그 빗살문토기를 생각해보자. 어떻게 시베리아는 우리나라가 병자호란으로 고생했던 17세기까지 쓰고 있었을까? 한국은 약 3500년 전에 빗살문토기가 점차로 무문토기로 변했지만, 시베리아의 타이가지대는 춥고 고립된 삼림지대로 다른 주민집단의 진출이나 정복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전부터 살던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시키는 게 가능했을 터이다. 

참고로, 러시아 사람들은 토기를 참 못 만들었다. 20세기 초반까지 러시아 사람들이 만든 질그릇들은 우리나라 무문토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슬라브민족이 원래 초원에서 살던 유목족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중국의 도자기가 들어오자 그토록 좋아했을까. 토기, 가장 흔하고도 재밌는 고고학 자료임에 틀림없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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