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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 군사독재 역사 외면하나

남산 옛 중앙정보부 터에 설치, 일제 관련 서술만 있어…서울시 “11월 중 방문하고 논의해보겠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남산 옛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터에 설치된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을 안내하는 게시물에 정작 필요한 군사독재의 인권유린 관련 서술이 빠져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산 옛 중정 제1별관·제6별관 터 인근에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담은 조형물이 벽에 설치돼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게시물에는 “이 곳은 우리 민족의 인권을 말살하던 일제의 통감관저 터 인근 부지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며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에 대한 소개와 설치이유에 대해 밝혔다.


물론 남산에는 1910년 8월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통감관저 터가 있다. 하지만 ‘남산’이라고 불리기도 한 중앙정보부 관련 서술은 게시물에 없었다. 


▲ 서울 남산 옛 중앙정보부 터에 설치된 세계인권선언문 관련 조형물. 사진=장슬기 기자


군부독재 시절 서울 중구 남산에는 학원 사찰과 고문으로 악명 높은 중정 6국을 포함해 다수 중정 건물들이 있었다. 의문사 사건인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사망사건(1973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1980년) 등이 모두 남산 중정에서의 정치공작이었다.  


실제 남산 옛 중정 터를 방문하면 당시 중정의 위세를 알 수 있다. 남산에 터널까지 뚫으며 무질서하게 무려 40여 개의 중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현재는 일부 건물만 남아있다.  

 

대로변에 감찰실과 서울지부 사무실, 부장 관저·중정 본부 건물 등을 지나 어두운 터널을 거치면 중정 수사국 건물이 있다. 당시 조작간첩 사건을 수사하던 제5별관은 현재 서울시청 별관으로 바뀌었고, 지하에서 혹독한 고문을 하던 중정 본관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사용 중이다. 감찰실은 교통방송, 6별관은 서울종합방재센터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 남산에 있는 옛 중앙정보부 터와 통감관저 터. 사진=노컷뉴스


군사독재에 대한 서술이 없는 걸 실수로만 보긴 어렵다. 1961년 중정을 만들어 1994년 안기부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이곳 처리문제가 이슈가 됐을 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아시아평화인권센터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다수 중정과 안기부 건물로 사용했던 건물은 사라졌다. 남아있는 건물들은 수익사업 내지는 공공기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고문이 자행됐던 지하공간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인권유린의 역사가 가려진 가운데 옛 중정 터 사이에 위치한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에 일제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군사독재에 대한 서술이 없는 것이다. 


서울시는 남산의 인권유린 역사를 더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처했다.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설치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부터 광복 70주년과 연계해 진행한 시의 인권현장 표석화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청 앞과 남산 옛 중정(안기부) 터에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을 설치했다.


또한 서울시는 남산에 위치한 통감관저 인근에는 ‘국치의 길’, 과거 중앙정보부장 공관과 안기부 건물, 남산 1청사 등을 묶어 ‘인권의 길’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 중구 남산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에 오는 2018년 8월 들어설 기억6. 빨간 우체통 모양의 전시실은 인권을 주제로 한 콘텐츠로 꾸며진다. 사진=서울시


서울시는 가장 잔혹한 인권유린 현장인 중정 6국 건물 처리 문제를 놓고는 수개월간 씨름 끝에 ‘해체 후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중정 6국을 의미하는 숫자 6과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를 담아 ‘기억6’으로 이름 짓고 오는 2018년 8월 인권 광장전시실로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간을 없애기 보다는 남영동 대공분실 터와 같이 공간을 그대로 둬야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그나마 남은 건물들을 남겨야 더 생생하게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1995년 남산을 떠나며 통신 도·감청을 주로 했던 제1별관 등을 폭파·해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시판에 군부독재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생략하거나 군부독재 당시의 현장을 없앤 뒤 재구성하는 게 서울시의 남산 역사 ‘복원’ 계획의 취지에 맞는지, 좀 더 적극적이고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현재에도 남산 옛 중정 터에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세계인권선언 조형물) 설치 당시에는 시에서 맡긴 용역업체에서 논의를 해서 정했을 것”이라며 “11월 중 남산에 방문해서 문구를 확인하고 절차에 따라 논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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