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16756.html?_fr=mt2


[단독] 박근혜 정부,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등록 :2017-10-31 07:28 수정 :2017-10-31 11:21


국정교과서 반대 역사학자 10여명 지원 배제

교육부 ‘추진단’ 보고서에 “BH 의견” 지침

‘적극 협조’ 학자들 예외없이 지원사업 선발


원로 역사학자, 역사를 공부하는 학부, 대학원생 등 전국역사인들이 지난 2015년10월31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만인만색 전국역사인대회 열고서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원로 역사학자, 역사를 공부하는 학부, 대학원생 등 전국역사인들이 지난 2015년10월31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만인만색 전국역사인대회 열고서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가 청와대 지시로 적어도 10여명의 역사학자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블랙리스트’에 올려 학술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예술계 이외 분야에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건 역사학계가 처음이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당시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교육부의 ‘윗선’과 청와대 관계자 등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30일 <한겨레>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보한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추진단)의 ‘2016년 역사분야 학술연구지원 사업 공모 결과 검토’ 보고서를 보면, 추진단은 지난해 7~8월 해당 사업에 참여할 연구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BH(청와대) 의견”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이들을 모두 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진단은 지난해 4월 27개 역사분야 연구과제를 제시한 뒤, 공모에 참여한 연구자 30명을 대상으로 최소 연 2000만원의 연구비 지원 여부를 심사한 바 있다.


특히 당시 청와대는 “(국정화)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연구과제가 두 개 이상 접수된 분야(7개)의 경우 국정화 반대 연구자를 우선 배제 △국정화 반대 선언에 참여한 연구자가 단독으로 접수한 분야(6개)의 경우 협조가 필요한 연구자 일부는 선정 가능 △국정화 반대 연구자가 단독으로 접수한 분야라도 과반을 넘지 말 것 등의 세부 지침을 추진단에 내려보냈다.


청와대가 추진단에 내려보낸 ‘블랙리스트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제로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와 박평식 서울대 교수 등 11명의 연구자가 무더기로 학술연구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 특히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정재훈 경북대 교수, 최병택 교수 등 5명은 경쟁자가 없는 분야에 혼자 접수했는데도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못했다. 국정화 ‘반대 선언 참여’나 ‘반대 토론회 참석’ 등이 추진단이 밝힌 탈락 사유였다. 최 교수는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연구재단)에 ‘초등교육과정 분석에 관한 적합성 연구’에 관한 과제를 제출했다가 탈락한 사실이 있다”며 “심사 결과를 열람해보니 선행 연구가 전혀 없던 과제였는데도 ‘이미 기존 연구가 많다’는 것이 탈락 사유로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 등과 달리 추진단이 학술연구지원사업 공모 결과 보고서에서 국정화에 “적극 협조”한다고 분류한 인사는 예외없이 지원 명단에 포함됐다. 추진단은 보고서의 ‘지원 여부’ 항목에서 연구과제를 제출한 30명의 연구자를 국정화 찬반 태도에 따라 일일이 ‘◎’(적극 지원)와 ‘○’(지원), ‘빈칸’(지원 불가)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추진단이 ◎와 ○ 표시를 한 21명의 연구자 전원은 한해 최대 1억3000만원(공동연구)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학술연구지원 사업의 과제 및 연구자 선정은 교육부 산하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몫인데, 이와 전혀 무관한 추진단이 개입한 것도 그 자체로 큰 문제다. 교육부의 ‘2016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에 나온 사업추진체계를 보면, 과제를 결정하고 해당 과제에 맞는 연구자를 심사·선정하는 곳은 연구재단이다. 2015년 11월 국정 교과서 개발을 위해 꾸린 추진단(지난 5월 해체)이 담당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연구자 선정까지 직접 챙기고 나선 것이다. ‘연구의 창의성과 연구계획의 우수성, 연구자의 잠재력’ 등을 바탕으로 학문진흥에 기여해야 할 정부의 학술지원사업과 그 예산이, 청와대의 ‘하명’ 아래 역사학계 줄세우기에 활용됐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역사학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당시 교육부 장차관급 ‘윗선’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 등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전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특정 학자들을 연구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관련자들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진단의 역사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공모 결과 보고서 등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된 당시 교육부 이영 차관만이 아니라 이준식 장관 등 ‘윗선’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교육부는 추진단이 학술지원사업 업무에 개입하게 된 경위를 추가로 확인하는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른 교육부 산하기관이 별도의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을 맡고 있는 조승래 의원은 “누구나 의심했던 ‘국정교과서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배후가 명백히 드러난 사건으로 이전 정부가 학자들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짓밟은 것”이라며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수사 등으로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김미향 기자 forchis@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