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79157


'손석희, 삼성 금기 깰까?' 4년 후 손석희가 내놓은 대답

[하성태의 사이드뷰] 삼성 직업병 전수조사 보도한 '뉴스룸', 변치 않은 '권력 비판'

글 하성태(woodyh) 편집 김준수(deckey) 17.11.22 17:59 최종 업데이트 17.11.22 18:03 


 2014년 2월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2014년 2월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손석희의 JTBC <뉴스9>이 삼성 백혈병 문제에 이어 삼성의 노조무력화 문건 보도. 공영방송 KBS, MBC는 도대체 뭘 하는지?"


지난 2013월 10월, 지금은 청와대에서 근무 중인 조국 민정수석이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시절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적은 글이다. 이때만 해도, 조국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할지, 같은 해 5월 보도부문 사장으로 JTBC에 입성한 손석희 앵커의 뉴스가 어떤 파급력을 가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4년 전, <뉴스룸>이 아직 출범하기도 전이었던 그때 이른바 '손석희 뉴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입수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문건 내용을 헤드라인 뉴스로 단독 보도했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단신으로 언급한 지 불과 한 달 만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첫해였고, 조국 수석의 평가 그대로 지상파 3사의 뉴스는 망가진 지 오래였다. 


지금이야 MB 국정원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정부 차원의 방송 장악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팩트'로 굳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블랙리스트 문건의 존재도 몰랐고 정권 차원에서 망가뜨린 지상파 뉴스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편 3사는 말 그대로 목불인견 수준이었다. '세월호 참사' 전이기에 '기레기'란 단어도 널리 쓰이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중앙일보>의 자회사이자 출범한 지 2년째인 '종편' JTBC가 삼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만으로 이미 '뉴스' 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손석희 사장의 JTBC 이적은 출발부터 "손석희가 삼성이란 금기를 깰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을 낳았다. JTBC가 삼성을 '깔 수 있느냐'는 그야말로 언론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이를 비웃듯, '손석희 뉴스'는 '또 하나의 삼성'과 관련된 뉴스를 집중보도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불과 두 달 전인 2014년 2월이었다. 당시 쓴 관련 칼럼에서 손석희 <뉴스9>의 삼성 직업병 보도 의미를 조명했는데, 그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관련 기사 : JTBC는 삼성 못 건드려?...손석희가 했다). 해당 뉴스는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그의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관련된 보도였지만, 손석희 사장의 칼끝은 분명 삼성을 향해 있었다. 당시 칼럼 내용 일부를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손석희 앵커의 입에서 '삼성전자'가 나온 것은 <또 하나의 약속> 관련 보도가 처음은 아니다. 작년 9월 삼성전자 앞에서 열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 시위를 보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종편은 물론 지상파 3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삼성전자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다. (중략)


<뉴스9>이 언급한 "생각할 거리"에 괄호가 쳐진 문장은 분명 '삼성'일 것이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 광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홀대하고 방송사들이 외면한 <또 하나의 약속>을 다룬 <뉴스9>의 보도가 상징적인 것은 그래서다. '삼성 눈치 보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와 방송의 연대라고 할 만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압박을 받기도 한 <뉴스9>과 손석희 사장은 이렇게 기계적 균형을 넘어 언론 지형의 균열을 내고 있다." 


여전히 주목해야 할 <뉴스룸>의 '삼성 직업병' 보도 


 21일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21일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JTBC는 시민단체 반올림에 제보된 국내 주요 기업 반도체, LCD 부문 사망 명단 84명 가운데 삼성전자 80명의 신원을 추적했습니다. 산재 신청 자료와 소송 기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유족들을 찾아서 만났습니다. 1996년 사망자부터 고 이혜정씨까지 21년간 노동자 중 사망자는 모두 54명. 발병 시기는 1993년부터 2015년까지입니다. 


피해가 있었다면 상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했음을 보여줍니다. 질병별로는 백혈병 20명을 포함해 재생불량성 빈혈, 림프종 등 혈액암이 가장 많았고 뇌종양, 폐암, 난소암, 유방암, 골육종 등이 나타났습니다. 여성 33명의 사망 평균 나이는 31.1세였고 남성 21명은 41.5세였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17년 11월, 손석희 사장의 <뉴스룸>은 몇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 21일엔 아예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뒤 백혈병과 희귀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을 전수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앞선 20일은 19개 사회단체가 모여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전신인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를 발족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삼성전자 사업장의 직업병 문제는 올해로 10년째입니다. 다른 사업장들도 있는데 왜 삼성전자의 경우는 사망자는 이렇게 많은가….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실제 피해 규모도 알려진 바 없습니다. 저희 취재팀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 작업장에서 근무한 뒤 희귀병에 걸려 사망했는지를 처음으로 추적해서 인적사항을 모두 알아냈습니다. 백혈병 20명을 포함해 1차로 확인된 사망자는 54명이었습니다."


관련 보도에 앞선 손석희 사장의 앵커 멘트다. 올해로 10년. 22일로 반올림은 778일째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겨울만 세 번째 맞이하고 있다. 반올림 측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반도체 관련 업계에서 393명의 노동자가 직업병 발병을 호소해왔고, 그중 사망자는 144명이었다. 이 중 '삼성'의 비율은 전체 80%로 압도적이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 에스디아이(SDI) 등 삼성 계열사에서만 발병 제보가 320명, 사망자는 118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1일 반올림의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뉴스룸> 관련 보도에 관해 아래와 같이 적었다. 


"JTBC가 확인한 희귀병 사망자 54명... 비록 우리가 아는 80명 전부는 아니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80명도 제보된 숫자이므로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JTBC가 자체 확인한 삼성전자 사망자 54명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숫자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어갈 때마다 삼성은 "절대 산재는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해왔다. 막대한 치료비 등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피해자들에게 돈으로 입막음해왔다. 희귀병 사망자가 수십 명이라면 더 이상 희귀병이 아니지 않은가. 희귀병이 아니라 집단 산재살인이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2016년 7월 손석희 사장의 '앵커 브리핑' 중에서.

▲2016년 7월 손석희 사장의 '앵커 브리핑' 중에서.ⓒ 피클


지상파 3사 중 메인뉴스를 통해 이 삼성 직업병 문제를 보도한 방송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포항 지진과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등 주요 현안에 밀렸다고 보기에도 힘들다. 그간 지상파에서 이 문제를 파헤친 보도는 찾기도 어려웠다. 한국을 지배하는 '삼성 비판'이란 금기는 지상파에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리라. 


시쳇말로 그 어려운 걸, JTBC와 손석희 사장이 지속해 오고 있다. 심지어 <뉴스룸>은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까지 보도한 바 있다. MBC에서 쫓겨난 손석희 사장이 JTBC로 이적하고 <뉴스9>을 진행하기 시작한 4년 전에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할 만하다. <뉴스룸>이 '세월호 참사' 보도 이후 신뢰성 등에서 독보적인 매체 영향력을 획득했다고는 하지만 '삼성 비판'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세 번이나 불러 손석희 사장 교체를 압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홍석현 전 회장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러한 외압 사실을 직접 털어놓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JTBC와 손석희 사장의 맹활약이 삼성가와 홍 회장 일가 사이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는 '뇌물죄' 등 혐의로 옥중 경영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감옥으로 보낸 1등 공신이 JTBC와 손석희 사장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관측이라 할 수 있다. 국정농단 보도의 포문을 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된 것이 바로 JTBC의 '태블릿 PC 보도'였기 때문이다. 한 미주 언론은 이와 관련, 삼성가가 홍 회장에게 책임을 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JTBC의 성역 없는 (국정 농단 사태 보도와) '삼성 비판'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전격 사임한 직후 손 사장은 앵커브리핑을 통해 이와 같이 못 박았다. 조기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그때, 홍 회장의 사임이 대선 출마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과 이로 인해 JTBC 보도부문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일었던 터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삼성전자 직업병 보도로 알 수 있듯,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손석희 사장의 다짐과 약속은 지금까지 공수표가 아닌 걸로 증명됐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JTBC와 <뉴스룸>이 짊어졌던 짐을 이제는 다른 언론이 나눠질 때가 됐다. '삼성 비판'을 포함해서 말이다. 최근 김장겸 전 사장이 해임된 MBC가 우선이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것도 같은 이유 아니겠나.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야만 '포스트 손석희' 이후를 편안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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