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709&section=sc7&section2= 
동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jlEvwAIzcJU 

    고구려 철갑기병,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1/4부) - 역사복원신문  http://tadream.tistory.com/2148 
    고구려 철갑기병,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2/4부) - 역사복원신문  http://tadream.tistory.com/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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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강이었던 고구리 철갑기병 (1/4부) 
역사복원신문ㅣ기사입력 2011/11/07 [12:32]


신라와 백제 못신 신라와 백제고분에서 출토된 금동못신. 그동안 왕의 상징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그 비밀을 풀어준 것이 고구려 고분벽화다. 달려드는 적군을 내리치는 데 쓰인 고구려기병의 무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백제와 신라의 군대는 이 못신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동안 신라고분에서 발굴된 못신은 금으로 만들어진 아주 얇고 가벼운 신발이었습니다. 사람이 신고 다닐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장식용 정도로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고구려 병사들은 신발 밑창에 촘촘히 못을 박은 이 신을 신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이 신발은 장식품이 아니라 기병의 무기였던 겁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십니까? 이것은 바로 고구려 고분벽화가 알려준 사실들입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은 2만여기에 달합니다. 수도가 있었던 압록강 부근 집안과 평양 부근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는데, 대부분이 도굴범들에 의해 훼손당해 유적이나 유물들은 거의 남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무덤 내부 벽면 가득 그려 넣은 벽화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고분들 중에 벽화를 남긴 것은 90여개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무기와 무사가 등장하는 고분은 28개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보기로 했습니다. 고구려군은 어떻게 무장하고 어떤 무기를 들고 전장터로 나갔는지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5세기 초 대제국을 일군 고구려 힘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우선 가장 많은 무사들이 등장하는 안악3호분으로 가 보겠습니다.  

안악3호분이 발굴된 것은 1949년. 평양에서 120km 떨어진 황해도 안악군 류설리에 위치해있다. 이 고분은 외부는 흙으로 덮고 내부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고분의 벽화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것인가. 이 안악3호분은 무덤 주인을 놓고 두 가지 의견이 맞서고 있다. 서쪽 측실에 남아있는 묵서명에 4세기 중반 전연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귀화인 동수의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름까지 분명히 적어놓았으니 무덤 주인은 동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악3호분의 주인은 고구려 왕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덤 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놓은 이 사람이 곧 무덤 주인이다. 그런데, 당시 왕이 사용한 귀면부채. 왕의 상징으로 알려진 모자, 즉 백라관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무덤 주인은 고구려왕이라는 것이다. 고분 안쪽 전실로 들어서면 동쪽 회랑에서 대형 벽화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대행렬도다.  

이 대행렬도는 지금껏 알려진 벽화중에서 가장 크고, 등장인물 또한 가장 많은 250여명에 이른다. 선두엔 여러 악기를 든 고취악대가 행렬을 이끌고 중반부분 부터는 군사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행렬에 참가한 병사들의 무기가 다양하다. 도끼를 든 이가 있는가하면 창을 든 이도 있고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의 모습도 보인다.  

4세기 중엽 고구려 군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행렬도에 담긴 병사들의 무기와 무장상태를 점검해야했다. 우선 전체모습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작업은 무장상태와 들고 있는 무기 종류에 따라 병사 한 명씩을 확대해 선과 색의 상태를 정리하고 실제 행렬처럼 복원시킬 것이다. 이중 벽화속의 색을 확실하게 복원하기 위해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다. 행렬도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색은 빨간색. 그리고 초록색과 갈색등 사용된 색은 모두 다섯 가지다. 모두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안료다. 

형태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선은 검은 색으로 처리했다. 병사들이 입은 옷과 얼굴은 대부분 색이 바래졌기 때문에 원래 색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이제 병사들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났다. 말을 탄 기병중엔 온 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가 있다. 병사가 탄 말 역시 갑옷으로 무장했다. 행렬의 맨 뒷부분엔 갑옷을 입지 않은 기병도 있다. 기병들은 이렇게 무장상태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눠져 있었음이 확인된다.  

말을 타지 않은 병사의 경우 가장 앞 부분에 창수들이 포진해있다. 창수의 경우 여러 형태로 그려놓은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칼을 든 병사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지닌 칼은 모두 칼 몸의 한쪽에만 날이 있는 외날칼이다. 다음은 도끼를 든 병사. 다른 병사들과 달리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행렬 가운데엔 어깨에 활을 메고 허리엔 화살통을 찬 궁수들도 있다. 50여명의 병사들이 호위한 군사 대행렬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1500년 전 고구려 군대는 어떤 무기를 보유했고, 군사들은 어떻게 배치됐는지, 막강 군사력을 보유했던 고구려 군대의 위용이 벽화 속에서 이렇게 살아나고 있다.

▲ 고구려 철갑기병이 그려진 벽화 © 역사복원신문

안학3호분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이 대행렬도는 높이 2미터, 길이 6미터의 커다란 한 장의 판석에 빈틈없이 그려놓았다고 합니다. 규모도 물론 최고지만.....잠깐 여기 이 모습들을 봐 주십시오. 표정 하나 하나가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군요. 게다가 하나도 같은 표정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낸 벽화입니다. 이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병사입니다.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갑옷의 형태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십 개의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었는데요.....이런 갑옷을 찰갑이라고 부르지요. 게다가 이 병사는 말까지도 온 몸에 갑옷을 둘렀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 군대엔 이런 기병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일까요.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병들, 그들의 무장상태가 과연 이 벽화와 같은 모습이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지난 1998년 발굴에 성공한 서울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고구려 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무기와 무장상태를 알려주는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다. 출토유물 중 무기류로는 화살촉이 가장 많고, 도끼와 창도 있다. 유적지 곳곳엔 병사들이 구축한 진지의 흔적들도 남아있다. 그렇다면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기병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유물은 없을까. 아차산에서 발굴된 유물 중 투구는 단 하나. 발굴 당시엔 머리에 쓰는 둥그런 형태만 남았다고 여겼으나 함께 나온 여러 개의 철편 조각들을 조사한 결과 이 투구는 철 조각들을 이어 만든 투구였다. 유물을 토대로 복원한 고구려 철갑기병의 투구는 이런 모습이다.  

그렇다면 크기가 일정한 이 철편들은 어디에 사용된 것들일까. 발굴팀은 이것이 갑옷을 만드는 재료, 즉 찰갑의 재료임을 밝혀냈다. 이것으로 벽화 속 기병의 무장상태를 확인했다. 기병들의 무장은 찰갑으로 이뤄져있다. 그런데 그동안 발굴된 갑옷은 판갑과 가장 우수하다는 가야의 판갑이었다. 고구려의 찰갑과 전혀 다른 형태다. 백여 개의 철편을 3분의 1씩 겹쳐지게 가죽끈으로 이어 만든 찰갑은 판갑에 비해 가볍고 튼튼하다. 고구려의 찰갑이 한단계 앞서는 우수한 갑옷인 것이다. 

전호태 교수 인터뷰
현대적으로 봐서는 아주 고급소재로 만든 21세기형 전투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가볍고 그러면서도 외부의 충격을 잘 흡수하고 쉽게 뚫리지도 않고 그런 면에서 아주 뛰어나고 신흥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가 철 제련기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벽화 속에도 남아있다. 압록강 부근 집안지역에서 발굴된 오회분 4호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제철신이 그것이다. 쇠를 부젓가락으로 집어 모루위에 올려놓고 마치로 두드리는 제철신의 모습이 벽화 천장에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찰갑을 말에도 입혔을까. 현재 고구려 유적은 출토된 것이 없기 때문에 가야유적을 통해 말 갑옷의 형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현재까지 발굴된 말갑옷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이 갑옷은 분명 찰갑이다. 판갑이 대부분이었던 가야지역에서 왜 찰갑이 발견된 것일까. 
 
함안 가야유적과 벽화속의 말 갑옷형태를 비교해보자. 말 얼굴 가리개의 형태가 거의 동일하다. 말갑옷도 마찬가지다. 5세기 가야의 유적이 4세기 중엽 안악3호분의 벽화와 완벽하게 닮아있다. 5세기라면 광개토대왕의 5만 대군이 가야지역에 내려와 전투를 벌인 직후다. 그 영향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지난 1995년 북한은 강원도의 철령지역에서 말의 무장에 관한 중요한 발굴에 성공했다. 땅속에서 흙으로 만든 수십 개의 말 인형을 찾아냈는데, 몸통과 얼굴에 갑옷을 두른 무장한 말 인형들이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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