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구속’이 ‘김정일 사망’ 압도한 이유는?
SNS에서 정봉주 구속 사건은 김정일 사망 이슈를 압도했다. 
기존 매체와 달리 SNS는 공감과 교감을 통해 여론을 확장한다.
2012년 선거에서도 SNS는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기사입력시간 [225호] 2012.01.10  02:51:50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정봉주! 대통령!” 지난해 12월26일 정오, 서울중앙지검 앞에 모인 2000여 명의 지지자들이 이날 입감되는 정봉주 전 의원의 환송회에서 장미꽃을 들고 외친 말이다. 서울중앙지검 앞 환송회는 야권의 총선·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정동영·천정배·원혜영·정세균·박영선·노회찬 등이 좁은 차량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기 위해 각축했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정 전 의원을 위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악전고투한 셈이다.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훨씬 더 뜨거웠다. 수많은 사람이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정봉주 전 의원과 찍은 사진으로 교체했고, 자신의 소개글에 ‘정봉주 무죄’를 언급했다. 정 전 의원의 다음 팬카페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은 회원 수가 17만명에 육박해 회원 6만6000명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훌쩍 뛰어넘었다. 트위터 팔로어 수도 28만명으로 15만명인 박 전 의원보다 훨씬 많다.

‘정봉주 구속’이라는 이슈는 같은 시기 터진 ‘김정일 사망’ 이슈를 압도했다. SNS 영향력 조사업체인 트리움이 관련 데이터를 파악한 결과, ‘정봉주 구속’ 관련 이슈 페이지뷰는 1000만 회 남짓으로 ‘김정일 사망’ 페이지뷰(680만 회)를 훌쩍 뛰어넘었다. 별도로 이들 이슈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퍼듀 대학 연구원 정진하씨는 “12월19일 김정일 사망 발표 때보다 12월22일 정봉주 구속 판결 때 관련 트위터 글이 1.5배 정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양한모 그림

정봉주 전 의원이 출연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이 정도 반향은 의외라 할 만하다. 무엇이 이 같은 ‘정봉주 신드롬’ 내지 ‘과잉 현상’을 일으키게 했을까?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먼저 주목할 것은 기존 미디어에서는 사건이 텍스트(원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소셜 미디어에서는 콘텍스트(맥락)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 즉 사건이 갖는 함의가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점이다. 김정일 사망 당일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전달)된 글은 “오늘은 김정일 사망일이 아니라 윤봉길 의사 서거 79주년 되는 날이다”였다. 이 글이 1200회 이상 리트윗되었다. 이 글에는 ‘김정일 사망 소식보다 국내 이슈에 주목해야 한다’는 함의가 있었다. 이런 전략적 판단을 담은 글은 서태지-이지아 이혼 보도가 나왔던 날도 나타났다. 당시 트위터에서는 이 소식보다 같은 날 있었던 BBK 관련 <시사IN> 재판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글이 훨씬 많이 리트윗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자. 정봉주 신드롬이 일어난 데는 무엇보다 ‘노무현 프레임’이 작동했다고 봐야 한다. 정봉주 구속에 대한 반발 현상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구속될 때와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때도 나타났던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인식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시민이 지켜줘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행동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실천 의지가 한명숙과 곽노현을 거치면서 점점 커진 것이다.

가장 큰 ‘버즈’ 만든 한명숙 전 총리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될 때 가장 큰 버즈(이슈에 대한 언급)를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한명숙 전 총리였다는 사실이다.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한명숙 전 총리가 트위터에 올린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글이 구속 정국에서 가장 큰 버즈를 만들어냈다”라고 분석했다. 노무현에서 한명숙과 곽노현을 거쳐 정봉주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진보·개혁 인물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연대의식은 정봉주 전 의원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조선일보>가 최은배·이정렬·서기호 판사 등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해 시비를 거는 기사를 올리면 트위터 이용자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팔로잉으로 응수하곤 했다. 그 결과 이들의 팔로어는 수만 명씩 늘었다.

기존 매체가 이해와 설득이라는 방식으로 여론을 만들어낼 때 소셜 미디어는 공감과 교감을 통해 여론을 확장하곤 한다. 그중 가장 강력한 공감과 교감의 자장은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 위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배우 김여진씨의 ‘자매애’와 ‘나꼼수’ 4인방의 ‘형제애’에서 발생했다. 각각 ‘함께 지켜주자’ ‘쫄지 말자’는 메시지를 확산시켰던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가운데)이 12월26일 서울구치소에 입감되기 전 서울지검 정문 앞에서 지지자의 배웅을 받고 있다. ⓒ시사IN 조우혜

이렇게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프레임 외에 또 하나 작동한 것이 특정 인물을 부상시키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인물, 대권 주자 박근혜를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 그것이다. 이 구도에 들어오면 소셜 미디어에서 제트기류를 타고 떠오를 수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안철수 서울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트위터 인기 정치인이 곧바로 버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팔로어 수가 많은 정치인은 유시민(35만명), 노회찬(18만명), 심상정(14만5000명), 정동영(8만명) 순서다. 그러나 이들은 인기의 제트기류를 잘 타지 못했다. 트위터를 잘하는 정치인보다 트위터를 통해 알려진 정치인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얘기다(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트위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다시 말해 단순히 팔로어 수보다 그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글을 올리고, 그 사람의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리트윗하느냐가 중요하다. 팔로어 수가 식당의 좌석 수라면 리트윗 수는 식당의 회전율이다. 식당이 크면 물론 장사에 유리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잘되는 식당은 회전율이 높은 식당이다. 

1% 발신자, 10% 전달자, 100% 수용자

소셜 미디어 업계는 국내 트위터 이용자를 55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중에서 리트윗 등을 통해 이슈의 확산에 참여하는 이용자 수는 10% 남짓, 55만명 안팎인 것으로 추산된다. 자신의 주장을 적극 올리는 이용자는 1%, 약 5만5000명 선이다. 1%의 발신자, 10%의 전달자, 100%의 수용자가 있는 셈이다. 여기서 55만명 내외로 추산되는 전달자들이 버즈를 만들어내면서 영향을 미친다.

이 중 1% 발신자를 먼저 살펴보자. 파워 트위터러 중에서 유명인은 대부분 발신자다. 트위터에서의 여론 싸움은 ‘사실의 싸움’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인식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이슈에 대한 견해를 선명하게 전달해주는 강한 발신자가 중요한 까닭이다. 축구 경기에 비유해보자. 진중권이 웨인 루니처럼 거칠게, 김여진이 리오넬 메시처럼 맵시 있게 이슈를 치고 나가면, 조국이 지네딘 지단처럼 안정감 있게 이를 전달해준다. 박경철과 선대인이 리베로라면 팔로어가 100만명이 넘는 소설가 이외수씨 같은 이는 최종 골키퍼라 할 만하다. 강력한 골킥으로 이슈를 전방에 투하한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진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중간의 전달자다. 때로 이들은 단순 유명인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팔로어 33만5000명인 MBC 김주하 앵커보다 팔로어 4만명인 YTN 해직기자 노종면(용가리통뼈뉴스 당수)의 트위터 계정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시시각각 ‘공갈뉴스’, 곧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사건의 이면을 전달한다.

<한겨레> 허재현 기자, MBC 박대용 기자 등도 전달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이들 언론인은 자신과 관련된 이슈, 혹은 자신이 의견을 가진 이슈가 아니면 잘 개입하지 않으려 드는 유명인과 달리 적극적으로 여론의 미드필더 노릇을 맡는다. 이 밖에 언론인 출신 서영석·백찬홍씨 등도 전달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들을 통해 ‘이슈의 패자부활전’이 도모되곤 한다.

언론인들이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면서 기성 매체를 통해 트위터 이슈가 확대 재생산되는 확산 구조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반값 등록금 집회는 이런 이슈의 확산 구조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100명 남짓 참가하던 반값 등록금 집회가 2000명 규모로 커지는 데 처음 기여한 것은 트위터였다. 그러나 이것이 다시 2만명이 넘는 대규모 도심 집회로 발전하기까지는 기존 미디어가 상당한 몫을 했다 할 수 있다. 기존 미디어가 이를 집중 보도하면서 오프라인의 움직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 김진숙과 희망버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의 이슈화 과정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났다. 

보수 세력도 SNS에서 두각 나타내

부지런한 전달자와 강한 발신자 덕에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슈에 대한 이해와 행동의 방향을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슈가 생겼을 때 중요한 것은 확산 속도다. ‘언론이 보도할 때 트위터는 행동한다’고 말할 정도로 반응 속도가 빠르다. 이것은 이슈에 대한 이해와 의견 형성, 그리고 행동화 과정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몇 번 큰 사건을 거치며 이미 의견 그룹이 형성되어 있는 만큼 이슈가 터지면 ‘우리 편은 이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를 살피고 바로 행동에 나선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트위터 영향력 분석업체인 트윗믹스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보다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트윗양이 약 10배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이슈에 대한 트위터 글의 양은 지속적인 상승세여서 총선과 대선에서는 이보다 더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2012년에도 여전히 진보·개혁 성향의 트윗이 소셜 미디어를 압도할까? 트리움 김도훈 대표는 “보수 성향 트위터 이용자들이 ‘맞팔 사이트’를 이용해 팔로어를 늘리고 있다. 여론을 주도하는 독설가도 몇몇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2012년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의견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조선일보> 기사나 여권 정치인의 트윗 내용을 자동으로 리트윗하는 ‘트위터봇’ 계정도 증가하고 있어 소셜 미디어에서 치열한 이슈 백병전이 예고된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SNS 등 인터넷 기반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고, 트위터· UCC·블로그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소셜 미디어가 선거에서 더 막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확보된 것이다. 2012년 양대 선거에서 소셜 미디어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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