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w.aspx?CNTN_CD=A0002425071


유명배우들이 선뜻 참여한 세월호 영화... 뭔가 다르다

[세월호참사 4주기 기획④] 영화 <봄이 가도>가 그린 단 하루, 세 감독의 '세월호 이야기'

글 이선필(thebasis3) 사진 이희훈(leeheehoon) 18.04.16 21:13 최종업데이트 18.04.17 11:52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고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를 조망한 여러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스타>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이 사건을 기억하고 다루는 영화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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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봄이 가도>의 진청하, 장준엽, 전신환 감독(왼쪽부터 시계 방향). 영화는 세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다.ⓒ 이희훈


그날,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참사 소식을 접했다. 군 제대를 앞둔 시점에, 대학교 캠퍼스를 한창 누비던 때에 이들은 모두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무렵 여전히 유가족은 고통 받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잊으라' 말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세 사람은 분노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영화가 바로 <봄이 가도>다. 


분노라고 했지만 영화에 담긴 정서는 평온하면서 잔잔하다.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간 나온 여러 세월호 참사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 경험한 특별한 하루'라는 공통의 주제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해당 작품을 연출한 장준엽, 진청하, 전신환 감독을 만났다.


유난히 착했던 학생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정호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중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봄이 가도>는 정호승 시인의 세월호 참사 추모시의 일부를 따왔다. 이 큰 제목 안에 <향아>(장준엽), <살아남은 자>(진청하), <매미, 첫 번째 휴일>(전신환)이라는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각 작품 역시 서로 다른 세 편의 시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장편에 적합한 제목을 찾다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접했는데 그 구절이 너무 좋았다"며 "진청하 감독은 애초부터 영화에 담고 싶은 시가 있었고, 그렇게 세 감독이 각자의 시를 또 찾기로 했다"고 장준엽 감독이 설명했다.


"전신환 감독과 전 대학 동기이고, 진청하 감독은 대학 후배다. 참사가 벌어진 후 2년이 지났을 때였는데 그때가 사회적 분열이 가장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이런 말이 나왔고 사회 구성원들 이야기들이 상충하던 때였다." (장준엽 감독)


"셋이서 모여 영화 공부를 하던 때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사를 다룬 영화를 우리가 만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다루기엔 너무 아픈 기억이라서... 근데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하하는 말까지 나오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명백히 잘못한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지 않나. 조심스러웠지만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청하 감독)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말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더라. 화가 많이 났다. 몇몇 사람들의 '잊어야 한다'는 그 말이 이 영화가 나오게끔 하는 반작용이 됐다." (전신환 감독)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시네마달


세 영화에 등장하는 단 하루. 배우 전미선과 김혜준이 출연한 <향아>에선 사고로 사망한 딸이 엄마의 품으로 잠시 돌아온다. 헤어지기 직전 하지 못했던 말,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두 모녀가 서로에게 여한 없이 내보인다.


"이 영화를 기획하기 전 어떤 다큐를 봤다. 한 어머니가 참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딸의 방을 그대로 남겨 두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더욱 깊이 그 이야기로 들어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다루고 싶었다.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딸이 정말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이 이야기에 이입하신다면 (참사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장준엽 감독)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시네마달


배우 유재명, 김민하 등이 호흡을 맞춘 <살아남은 자>는 학생들을 구조하러 갔다가 몸과 마음을 다친 한 사내의 이야기다. 선의를 갖고 현장에 달려갔지만 미처 구하지 못한 학생들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일상에 복귀하지 못할 만큼 아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에게 끊임없이 영화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단원고 학생들이 유난히 말을 잘 듣던 착한 학생들이었더라"며 진청하 감독은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무시할 아이들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순하고 착한 그들이 큰 희생을 당했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운을 뗐다.


"영화를 기획하기 전부터 기억과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 국정 교과서 문제로 시끄럽기도 했고. 당시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을 읽던 때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여러 기사를 보다가 한 민간 구조사 분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참사 당시 학생들에 대한 기억을 말씀하시는데 그 대목을 읽자마자 그 분의 모든 아픔이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죄가 없는 사람, 오히려 옳은 일을 행한 사람이 죄책감을 갖는 게 너무나 아이러니였다." (진청하 감독)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영화 <봄이 가도>의 한 장면.ⓒ 시네마달


<매미, 첫 번째 휴일>엔 배우 전석호와 박지연이 부부로 출연한다. 참사로 아내를 잃은 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폐인이 된 남자. 우연히 아내가 적어둔 김치찌개 레시피를 발견하고 직접 그 음식을 해먹으면서 세상에 다시 나갈 용기를 얻는다는 이야기다. 생전 아내가 농담처럼 남긴 말이 이 영화의 주제다. 짝을 찾기 위해 온 힘 다해 울다가 죽는 매미 이야기를 전하던 여자는 '오빠는 그러지 마!'라고 말한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그 정도였다"며 전신환 감독이 설명을 이었다.


"제가 그 남자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하며 기획했다. 아내를 잊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단서를 발견한다. 그 레시피로 인해 진짜로 기억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걸 매미와 음식에 빗대서 전하려 했다. 그러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찾게 됐다. 자기 짝을 찾으려 온 힘 다해 울다가 죽는 매미가 그 남자와 같다고 생각했다." (전신환 감독)


고민의 과정들


사실 선뜻 영화화에 의기투합한 건 아니었다. 참사의 비극성와 심각성, 그리고 상징하는 바가 엄중했다. 여러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와중에 사실 관계를 넘어선 극영화로 다루는 게 분명 조심스러운 일이었을 터. "영화로 만드는 것에 처음엔 세 명 모두 긍정적이지 않았다"며 장준엽 감독이 운을 뗐다.


"아무리 우리가 공감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유가족 분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사건 언급을 싫어하는 누군가들에겐 공격의 여지도 많을 것 같았다. '너넨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세월호 영화를 만드냐' 이런 공격을 받을까봐 영화 제작엔 소극적이었는데 애도와 추모, 나아가 사회적으로 감정을 추슬러서 가야할 참사 이야기가 전혀 진전되고 있지 않더라. 그 지점에 세 명이 공통적으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루고 싶진 않았다. 당시에도 '세월호 영화는 보기 싫다'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분들도 포용하고 싶었다." (장준엽 감독)


"언제였던가. 광화문 광장에 갔을 때 한 유가족 분과 얘길 나눴다. 제 생각보다 밝은 모습이셨다. 당연히 마음에 아픔이 있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도 이렇게 힘내서 싸우시는데 어쩌면 내 스스로 이 분들을 대상화시켜서 마치 동정해야 하고 조심해줘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유가족 분과 대화하면서 일종의 용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저만의 이야기 주제가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청하 감독)


물론 의지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지망생이었던 이들의 손을 기성 배우들이 힘껏 잡았다. "배우 분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제가 캐스팅 하기 어려운 분들인데 시나리오만 읽고 선뜻 참여해주셨다"며 진청하 감독이 말했다.


"그때만 해도 전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기인데 참여해주셨다. 특히 유재명 선배는 그런 외부 시선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이런 작품 하려고 예술하는 거 아니냐?'라고도 하셨다." (진청하 감독) 


"솔직히 기성배우가 반드시 출연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이 취지에 공감하면서 최대한 잘 구현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했다. 우리가 기성배우 분들과 연락하기 쉽지 않아 많은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기다리고 그랬다." (장준엽 감독)


"전 처음부터 전석호 배우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우리 모두 비슷한 처지였다. 캐스팅 때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를 본 석호 형이 선뜻 나오신다고 하더라." (전신환 감독)


어려운 제작 여건이었지만 세 감독은 자신들만의 제작사(왕십리 픽쳐스)를 설립하고 각종 공모 사업에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서울영상위원회와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은 오는 5월 3일 개막하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섹션 부문의 초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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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도> 속 '향아'를 연출한 장준엽 감독.ⓒ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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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도> 속 '살아남은 자'를 연출한 진청하 감독.ⓒ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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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도> 속 '매미, 첫 번째 휴일'을 연출한 전신환 감독.ⓒ 이희훈


봄이 가도... 그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그리고 영화 장르 면에서도 <봄이 가도>는 분명 다른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 세 감독의 세심한 접근에 과연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마지막으로 이번 연재 기획의 공통 질문을 세 사람에 던졌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다뤄야 할까'. 잠시의 침묵. 그리고 이들이 답했다.


"전 추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진정한 추모라는 건 상실한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때 성립한다고 본다. 우리 세 사람이 만났던 그 때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추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장준엽 감독) 


"우리는 이렇게 다뤘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전했다. 다른 감독님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이든 다른 방식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가능한 여러 방식으로 이 참사를 다뤘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기억할 테니까. 많이 생각하고, 그만큼 다양하게 다뤄주길 바란다." (전신환 감독)


"택시를 탔는데 그 기사 분이 제게 '교통사고인데...'라고 계속 말씀하더라. 그런 식으로 기억하지 않길 바란다. (침몰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제가 못 다룬 그 진실을 (영화인들이) 더 다뤄줬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니까." (진청하 감독)


"일화를 덧붙이자면 제가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어떤 교수님이 왜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냐고 하신 적이 있다. 전신환 감독이 말했듯 어떤 방식으로 참사를 다뤄야 하느냐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 사람들마다 기억하고 다루는 방식이 있을 텐데 진심으로 기억하고 다룰 수만 있다면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준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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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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