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28435


시신 묻고 바다에 던지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니

[사극으로 역사읽기] 다큐영화 <해원>, 정통성 없는 정권의 민간인 학살

김종성(qqqkim2000) 18.04.26 15:03 최종업데이트 18.04.26 15:03 


 다큐 영화 <해원> 포스터.

▲다큐 영화 <해원> 포스터.ⓒ 레드무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은 자기 백성만큼은 아낀다. 자기 백성을 향해서는 웬만하면 창칼을 들지 않는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들이 없으면 자신들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살아 있어야 세금도 거두고 군대도 유지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은 죽여도 조선 백성들만큼은 가급적 끌고 가려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백성 숫자를 늘리는 게 국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만 국민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옛날 국가도 그랬다. 전염병 같은 위험 요인으로부터 백성 건강을 지키고자 했다. 이 역시 백성들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백성들이 건강해야 농사도 잘되고 조세 수입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자신들한테 창칼을 겨누지 않는 한 어떻게든 백성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창칼을 들이대지 않았는데도 그들을 마구 학살한 정권들이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민간인 학살에 관한 한 미군정·이승만은 이후 정권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성을 죽인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


두 정권의 그 같은 만행을 다룬 다큐 영화가 곧 개봉된다.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시사회를 가진 영화 <해원>이다. 이날 시사회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국회의원 모임, 새사회연대, 법인권사회연구소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민중의 소리> 기자를 겸하고 있는 구자환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해원>은 1946년 대구 '10월 항쟁'부터 본격화돼 제주 4·3과 여순사건(여수·순천 사건) 등을 거쳐 한국전쟁 기간까지 계속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생생히 증언한다. 한국전쟁 중의 학살로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노근리 학살, 금정굴 학살 등이 유명하지만, 이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해방 뒤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대략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는 그런 학살 흔적들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영화 <해원> 스틸 컷

▲영화 <해원> 스틸 컷ⓒ 레드무비


 영화 <해원>의 한 장면

▲영화 <해원>의 한 장면ⓒ 레드무비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이른바 좌파 전향자들을 가입시켜 만든 조직이다. 이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게 창립 취지였다. 그런데 좌파 성향과 무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이 조직은 반(反)이승만 성향의 국민들을 관리하기 위한 기구였다. 선거 때 이승만을 찍지 않을 사람들 중 일부를 가입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정권은 이들을 잡아들이고 마구 죽였다. 최소 5천 명이 죽었다고 하지만, 최대 20만에 달할 거라는 추정도 있다. 좌파 성향을 버리면, 아니 정확히 말해 미국과 이승만을 반대하지 않으면 새 삶을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북한군·중국군과 전투하기도 바빴을 시간에 그런 만행에 탐닉돼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민간인 학살에 얼마나 광분했는지 보여준다. 이 점은 한국전쟁이 벌어지자마자 학살 대상자를 확대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보도연맹 회원들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도 학살이 자행됐다. 영화는 전쟁 발발 3일 뒤인 1950년 6월 28일부터 전국 곳곳의 형무소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됐다고 고발한다. 전쟁 이전에 학살을 모면하고 감옥에 투옥됐던 이들의 상당수는 이때 학살을 당했다. 


 <해원> 포스터 뒷면.

▲<해원> 포스터 뒷면.ⓒ 레드무비


정권 연장의 꿈, 남한 인구의 5%를 죽이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국가 통계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1949년에 남한 인구는 2019만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약 100만이 학살됐다면, 국민의 5% 정도가 희생된 셈이다. '좌익에 가담한 빨갱이들이니까 그렇게 됐겠지'라는 반론은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무관한 평범한 민간인들이 무참히 희생됐다는 사실은 더는 강조될 필요도 없다. 


희생자의 극히 일부만 뚜렷한 정치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분명히 미군정과 이승만을 반대했다. 그런데 이들이 반대한 것은 자신들의 공산주의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정권은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했지만, 이들 상당수는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미군정과 이승만을 반대한 것은 그들이 친일파와 손잡고 적폐를 온존시켰기 때문이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이들을 학살하고, 그 김에 일반 민간인들까지 죽였다. 100만 정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학살을 보여줌으로써 나머지 1900만한테 겁을 주고 굴종을 유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학살의 주체일 수는 있어도 미군정까지 포함시킬 수 있을까? 물론이다. 미군정은 이승만 정권 출범 전까지 3년간 한국을 통치했다. 한국전쟁 때부터는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행사했다. 이승만 정권 출범 뒤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도 한국 문제를 관장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미국은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이승만보다 미국의 죄악이 훨씬 크다. 이승만도 죄가 크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수인이었다. <해원>은 미국이 학살 주체라는 점을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담담한 목소리로 미국의 죄악을 드러낸다. 


<해원>은 희생자 유족 및 학살 관찰자들의 증언과 더불어 해설자의 내레이션, 학자들의 설명을 통해 그 끔찍한 학살극을 재구성한다. 유족이나 관찰자의 증언을 통해서는 미시적인 학살 상황을 재현하고, 해설자와 학자의 코멘트를 통해서는 거시적인 시대 상황을 재현한다. 


이와 함께 학살 현장의 발굴 과정과 거기서 나온 유골도 화면으로 보여준다. 희생자들을 바다에 수장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도 종종 영화 화면에 나온다. 


 유골 발굴 현장. <해원> 스틸컷.

▲유골 발굴 현장. <해원> 스틸컷.ⓒ 레드무비


  발굴된 유골. <해원> 스틸컷.

▲발굴된 유골. <해원> 스틸컷.ⓒ 레드무비


<해원>은 학살 지역에서 거행되는 위령제도 중간 중간에 보여준다. 화면상 위령제에서 인상적인 것은 살풀이춤과 노래다. 등장인물들의 진술과 학살 현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난 어떤 감정들이 그런 춤 및 노래와 결합되면 울컥 하는 심정으로 바뀔 수도 있다. 눈물이 살짝 맺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관객의 눈물을 의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다. 영화를 보고 귀가하는 관객이 민간인 학살극을 머릿속에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료(역사 자료)적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해원(解寃)은 원한을 푸는 것이다. 영화는 유족·관찰자·학자·해설자의 진술과 학살 현장의 유골을 통해 寃(원)을 보여준다. 그런 뒤 살풀이춤과 노래를 통해 解(해)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진정한 解는 미국과 이승만의 죄악을 밝히고 사죄 및 배상을 이끌어내는 한편, 학살극을 토대로 형성된 부정한 정치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이지만, 지금 단계에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解는 춤과 노래뿐인 것 같다. 


 <해원> 스틸컷.

▲<해원> 스틸컷.ⓒ 레드무비


'해원'을 고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되려면


<해원> 속의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군정과 이승만의 정통성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력은 자기 백성만큼은 가급적 죽이지 않는데도 이들이 마치 인디언 사냥을 하듯이 학살을 벌인 최대 원인은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한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통성 없는 세력이었다. 


해방 직후 한국인들은 토지제도 및 그와 관련된 적폐를 청산하고자 했지만, 미국은 이를 훼방하고 탄압했다. 그래서 인기가 없었다. 이승만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이승만부터가 인기가 없었다. 임시정부에서부터 탄핵을 당한 인물이다. 미국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다. 거기다가 친일파와 손잡고 정권까지 꾸렸다. 미국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다수 한국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대중적 기반이 취약한 데다 대중의 증오까지 받았다. 그러니 대중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서는 그들을 민간인 학살로 내몬 원인 중 하나였다. 민간인 학살은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길이었다. 남한에 대중적 기반이 없는 그들은 정부의 녹을 받는 군인·경찰과 더불어 미군의 지원을 받는 북한 출신 청년들인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민간인들을 죽였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동원해 학살을 맡겼던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권의 출현을 막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이 조용히 물러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총과 대포를 동원해서라도 정권을 연장하고픈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유혹은 민간인 학살극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자기 국민을 좋아하고 정통성을 갖춘 정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그것이 '해원'을 고민하고 고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일 것이다.  


영화 <해원>은 5월 10일 개봉한다. 


 시사회 뒤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 구자환 감독.

▲시사회 뒤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 구자환 감독.ⓒ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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