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7015.html


세월호, 수밀문만 닫았어도 ‘골든타임’ 연장됐다

등록 :2018-05-30 18:41 수정 :2018-05-30 22:17


네덜란드 연구소 ‘마린’ 조사결과 발표

화물 고박 부실에 급격히 기울어 침수

물길 막는 ‘수밀문’ 열려 급격히 침몰

“수밀문 닫혔다면 65도 기울어 떠 있었을 것”



세월호의 ‘수밀문’만 제대로 닫혀 있었어도 배가 그리 빨리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국외 해양연구소의 조사 결과가 30일 나왔다. 수밀문은 배의 빠른 침수를 막기 위해 내부 공간을 격리하는 문이다. 또 화물 고박만 잘됐어도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절차와 규정 등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졌다면, 그날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는 이날 서울 저동 사무실에서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세월호 침몰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앞서 선조위는 마린에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한 조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날 발표회에서 마린 관계자는 “(세월호 하부의) 수밀문이 닫혀 있었다면 배가 65도까지만 기운 뒤 오랫동안 수면 위에 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세월호 가장 아래인 이(E)데크(1층) 기관실에는 수밀문과 맨홀이 모두 7개 있었다. 하지만 선조위가 최근 조사한 결과 이 수밀문들은 모두 열려 있었다. 또 기관실 바로 위층인 디(D)데크(2층)에는 총 10개의 수밀문과 맨홀이 있었는데, 닫혀 있었던 것은 3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규정상 수밀문과 맨홀은 비상시 빠르게 조작해 닫을 수 없다면 닫아놓는 것이 원칙이다. 당연히 비상시에는 모두 닫아 빠른 침수로 인한 침몰을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선박은 이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밀문을 열어둔 채 운항한다. 또 세월호 기관실 직원들은 침몰 당시 탈출하면서 이 수밀문을 닫지 않았다. 다만 선원들이 수밀문이 고장 났기 때문에 닫지 않았는지, 처음부터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린의 분석 결과를 보면, 기관실과 디데크 수밀문 17개만 모두 닫혀 있었어도 배는 65도 기운 채 상당 시간 수면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런 결론은 마린의 세월호 침수 경로 실험 결과를 보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험 결과, 세월호가 45도 기울었을 때 시(C)데크(3층) 환풍문을 통해 첫 직접침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문을 통해 흘러들어간 바닷물은 환풍구 등을 통해 스태빌라이저(배 중앙 하단 양쪽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긴 판자 모양의 장치)실로 흘러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스태빌라이저실에 모인 물이 열려 있던 수밀 맨홀을 통해 더 아래쪽에 있는 기관실로 바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 수밀 맨홀이 닫혀 있었다면 침수는 스태빌라이저실에서 막을 수 있었다. 이후 배는 48도까지 기울었고 시데크에 열려 있던 창문으로 두번째 직접침수가 이뤄졌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세월호 침수·침몰 모형시험 결과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세월호 침수·침몰 모형시험 결과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침몰의 두번째 원인은 부실한 화물 고박이었다. 선조위와 마린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세월호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께 오른쪽으로 급선회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세월호 화물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선체가 18도 정도 기울었을 때다. 이때 일부 화물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후 선체가 33도까지 기울었을 때 화물은 대부분 미끄러져 내렸다.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선회를 한 지 56초 만에 세월호는 45도로 기울었고 이때부터 침수가 시작됐다. 마린의 조사책임자는 <한겨레>에 “화물이 제대로 고박되었다면 배의 기울기가 침수가 시작된 45도까지 기울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고박이 배를 오른쪽으로 계속 기울여 침수 원인이 된 것이다. 마린 관계자는 이날 “고박 역시 침몰을 일으킨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린은 선조위 의뢰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자유항주실험, 침수모형실험 등을 진행했다. 자유항주실험은 1 대 25 비율로 축소한 세월호 모형을 대형 수조에 띄워 참사 당시의 항적 등을 재구성하는 실험이다. 침수모형실험은 1 대 30 비율의 모형을 제작해 세월호가 45도 이상 기운 뒤 어떻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는지를 재현했다.


마린이 자유항주실험을 해보니 특정 조건에서 세월호의 침몰 당시 항적과 기울기가 비슷하게 재현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가 제자리를 유지하려는 힘을 뜻하는 복원성 정도(GoM)를 가리키는 값을 0.19m로 두고 오른쪽으로 조타(배의 방향 전환)를 10도 한 뒤, 다시 25도를 추가로 조타했을 때, 세월호 침몰 당시와 유사한 항적이 그려졌다. 다만 당시 화물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GoM값’ 0.19m는 너무 적은 수치라는 견해도 있다. ‘GoM값’이 높을수록 복원성이 좋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침몰 당시와 유사한 항적이 나온 ‘GoM값’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검찰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 당시 ‘GoM값’을 0.59m로 적용한 바 있다.


이날 마린 관계자는 “조사 결과, 낮은 복원력 그리고 매우 큰 조타각이 결합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원성이 좋지 않은 배가 갑자기 방향 전환을 해 배가 기울고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침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마린의 이런 견해가 선조위의 최종 결론은 아니다. 선조위는 마린의 조사 결과를 중요한 자료로 참고하되 침몰 과정에 외력이 있었을 가능성, 기관 고장으로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이뤄졌을 가능성 등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