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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 해전

합포 해전(合浦海戰)은 옥포 해전이 벌어진 선조 25년 음력 5월 7일 당일 오후에 있었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아직 옥포 해전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왜군의 소함대(5척)를 전멸시켰다.

합포 해전
(임진왜란의 일부)
날짜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장소 합포
결과 조선군 승리
교전국
조선 일본
지휘관
이순신
원균
무의공 이순신
정운
송희립
김완
알 수 없음
병력
전선 91척 전선 5척
피해 규모
불명 5척 모두 분멸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99175

합포해전[合浦海戰]

임진왜란 때 이순신(
) 함대가 경상남도 합포(지금의 마산)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한 해 동안 이순신() 함대가 일본 수군을 무찌른 총 10차례의 해전 가운데 두 번째 해전이다. 같은 해 5월 7일 오전, 이순신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연합군은 경상남도 거제도 옥포()에서 일본 수군 전함 26척을 격침시켰다. 이 해전이 옥포해전으로, 육전과 해전을 통틀어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조선 연합군은 거제도 영등포() 앞바다로 나아가 이곳에서 밤을 지새기로 하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4시 무렵, 아군 척후선으로부터 일본 수군 대선 4척, 소선 1척이 주변을 지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첩보를 입수한 조선 수군이 즉시 추격을 시작하자, 왜선은 필사적으로 도주해 웅천땅 합포 이르렀다. 아군이 합포 앞바다까지 진격하자, 더 도망갈 곳이 없게 된 왜군은 배를 버린 채 육지로 올라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조총을 쏘아 댔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아군의 완벽한 승리로 굳어진 뒤였다.

방답 첨사(使)이자 이순신 함대의 중위장(이순신(李), 모포(만호(김완(), 언양(현감이자 이순신 함대의 수로향도(어영담() 등이 적선 5척을 모두 불살라 격침시켰다. 이 해전이 합포해전으로,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군만이 참전하였다.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을 통해 일본 수군의 함선과 무기·장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조선 해군은 남포(藍:지금의 마산시 구산면 남포리)로 이동해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인 8일에는 적진포(:지금의 통영시 광도면 적덕리)에서 왜군의 대형선 9척, 중형선 2척을 삽시간에 격침시켰는데, 이 해전이 적진포해전이다. 옥포·합포·적진포의 세 해전은 이순신 함대가 처음으로 출전해 승리를 거둔 해전으로, 3회에 걸쳐 총 42척의 적선을 격침시키는 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해전이 일어난 합포는 지금의 마산이 아니라 진해()라는 설도 있지만 합포는 지금의 마산이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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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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