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9512


국가기록원 '노무현' 고발의 내막 "원장이 광화문 센터에 체류하며 진행했다"

[리뷰] 이재정·전진한의 <캐비닛의 비밀>에 실린 내부자의 '증언들'

18.05.29 17:21 l 최종 업데이트 18.05.29 18:28 l 이정환(bangzza)


2007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주도로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 제18조는 자신이 재임할 동안 생산한 기록물을 전직 대통령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 기록관에 이관했을 경우다. 이런 법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어겼다. 청와대 문건들이 캐비닛, 혹은 영포 빌딩 지하 창고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 유출'이란 프레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까지 했던 이다.


그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참여정부는 모든 기록물을 '이지원'이란 업무 관리 시스템에 따라 생산했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열람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스템이 국가기록원에 설치돼야 했다. 허나 설치는 되지 않았고, 언제 설치가 될지 확답도 없었다고 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 측은 사본을 임시로 만들어 봉하 마을로 가져왔다. 이를 두고 국가기록원은 노 전 대통령 전직 비서관·행정관 등 10명을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의 청와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난 1월 드러났다.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고발장 초안과 함께 검찰 고발에 사용하라고 135쪽 분량의 증거물까지 국가기록원 측에 넘겨줬다고 했다. 안병우 국가기록관리혁신TF 위원장은 "국가기록원이 고발장을 제출하긴 했지만, 고발을 주도한 것은 청와대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력자로서 국가기록원이 당시 어떻게 움직였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 최근 나왔다.


당시 국가기록원 내부자의 '증언'


 2008년 7월 18일, 당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대통령 기록물 사본 회수를 위해 봉하 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

▲  2008년 7월 18일, 당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대통령 기록물 사본 회수를 위해 봉하 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쓰고,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이 기획한 <캐비닛의 비밀>(한티재). 박원순 서울시장,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심용환 역사N연구소 소장 등과의 대담을 통해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쌓인 기록 적폐를 반추하고 '다음'을 위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바는 노 전 대통령 사본 유출 논란에 대한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재정 "참여정부 때 임용되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잠시 국가기록원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봉하마을 '기록 유출 사건' 때 국가기록원의 움직임이 매우 기민했는데, 당시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책에서 이 질문을 받은 이는 설문원 한국기록학회 회장(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기록관리의 '장인'으로 불리는 설 회장은 당시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서비스부장이었다. 그는 그 때 분위기를 국가기록원이 노 전 대통령 전직 비서관 등을 고발한 직후 있었던 법제처의 이상한 심의를 소개하는 것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2008년 8월과 9월 두 차례 있었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핵심 쟁점은 열람에 사본 제작이 포함되는지 여부였다고 한다. 


"1차와 2차 심의회에서 각각 상반된 결론이 나온 거예요. 8월 열린 1차 심의회에서는 '사본 제작'이 열람에 포함된다는 의견이 과반수였어요. 노 전 대통령의 사본 제작이 합법이라는 거지요. 이때 반대 의견을 낸 3인 중 한 명은 검사 출신, 두 명은 법제처 직원이었어요... (중략)... 9월 열린 두 번째 심의회에서는 첫 번째와 달리 '불법'이라는 의견으로 만장일치 가결됩니다. 그런데 이 회의는 심의위원 전원이 교체된 후였고, 교체된 위원들도 조세 전문가 등 법령 해석과는 관련 없는 전문가들이었어요."


"노무현을 욕보인 것"... 도움 준 사람들 "승진 많이 했죠"


 2008년 1월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성남 소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  2008년 1월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성남 소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법제처 심의회가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려던 시점에 열렸고, 2차 심의가 위원들이 전원 교체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 의원이 책에서 "명백히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설 회장의 이어지는 증언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어느 날 부장단 회의에서 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기록 유출로 고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고발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참석자들 모두 당연히 그렇다고 했고요. 그런데 얼마 후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대통령 비서진을 고발했다는 겁니다. 원장이 정책 라인의 직원들과 한동안 광화문 서울기록센터에 체류하면서 진행한 거예요. 그 후 원장은 그 사안에 관한 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어요. 마치 원래부터 확신했던 일을 처리한 것처럼 보였어요."


책에서 전 소장이 "매우 조직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욕보인 것"이라고 하자, 설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사본 제작을 불법 유출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면서 "입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든 '불법성'이라는 화인을 찍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노 전 대통령에게 '불법 유출'이란 화인을 찍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이 의원이 묻는다. 


- 행정자치부 및 국가기록원에서 당시 그 사건에 연루되었던 분들은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여전히 그 직에 있는 분들이 많나요?

"승진을 많이 했지요."


이 질문에 답한 이는 조영삼 서울기록원 원장. 공무원 신분(교육과학기술부 기록연구사)으로 당시 신문을 통해 "봉하마을 기록 유출과 관련해 현 정부가 보여온 일련의 대응과 행태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지정 기록을 보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며 "대통령 지정기록 보호장치가 무너지게 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이 공개돼 당장 정쟁의 도구로 이용된다"고 경고했었다. 


이건희 회장을 '왕', 이재용 부회장을 '세자'에 비유한 청와대


 설문원 한국기록학회 회장(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설 회장은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직 비서관·행정관 등 10명을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을 당시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서비스부장이었다.

▲  설문원 한국기록학회 회장(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설 회장은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직 비서관·행정관 등 10명을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을 당시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서비스부장이었다. ⓒ 이재정 의원실


그의 이 같은 경고는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건 공개라는 현실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때, 조 원장의 글을 두고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굉장히 불쾌해했다고 들었다"고 한다. 조 원장은 "결국 국립과천과학관으로 전보됐다"면서 "저는 기록 관리가 전문인데, 거기에서 관람객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책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에 대하여 엄청난 식견을 갖고 계셨던 거 같아요.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하고, 그걸 잘 보존하도록 했죠. 한마디로 역사 의식이 투철했던 대통령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 좋은 선례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명박 정부 이후 완전히 무너진 거예요."


이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 역시 책에 나온다. 설 회장은 "국가기록원이 온라인 기록 콘텐츠 작업을 할 때 사학자들에게 해설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추천한 시나리오 작가에게 의뢰했다"고 전했다. "간섭이 들어오니까 아예 추천해 달라고 한 것"이란 설명이 잇따랐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그 캐비닛 자료들은 청와대의 기록 관리 수준이 다시 1980~1990년대로 돌아가버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결국 박근혜의 청와대가 바로 그 수준이었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재정 의원이 책에서 소개한 캐비닛 문건의 다음 한 대목은 하 공동대표의 이 말을 정확히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이 삼성의 golden time(골든 타임),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 잡아줘야." (이 의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작성 수기 문건을 이기한 내용 중 일부)


"기록을 통제하지 않는 권력은 없다"

 2008년 4월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개관을 축하하며 보낸 문구.

▲  2008년 4월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개관을 축하하며 보낸 문구.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지난 1월 29일자 <중앙일보>는 '사정 수사와 재난이 복사되는 나라'란 제목의 기명 칼럼을 통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중 타깃이 된 것을 두고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잡는 형국'이라는 비유도 나온다"며 "신진 권력은 적폐 수사, 과거 청산 등의 명분으로 사정하고 숙청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전직 대통령들이 도돌이표처럼 반복적으로 사법적 단죄를 받는 배경"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정식 가입하면서 경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정치와 권력은 여전히 후진국형"이라며 "현재 35개 회원국 중 정권 교체기마다 보복성 수사가 진행되고 인재성 재난이 반복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을 일종의 보복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를 잡은 것'은 선진국형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였다는 걸 말이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이 제정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7년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이 법의 '힘'을 의식했기에, 캐비닛에 또는 빌딩 지하 창고에 '위법'을 보관했다. 그 어떤 보복 수사 때문에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때문에 이 책의 결론은 이재정 의원의 프롤로그에서 일찌감치 읽힌다. 이 의원은 "지난 촛불은 '기억하는 시민들'이 나선 역사였다"며 "이제는 기록이다. 기억은 개별적이고 그 기억의 소멸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래서 "기록은 함께 하는 기억을 세우는 일"이라고 했고, 또한 "기억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라고 했다. 책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이 말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기록을 통제하지 않는 권력은 없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 설문원 한국기록학회 회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 설문원 한국기록학회 회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 이재정 의원실


인터뷰어로서 이재정 돋보여... 결코 딱딱하지 않은 책

의미와 재미를 함께 갖춘 풍부한 수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


쉽게 풀어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또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록 이야기를 잘 읽히도록 세 사람의 대화라는 장치를 선택해서다.


이재정 의원은 진행자로서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인터뷰이가 한 발언을 자신이 잘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훨씬 많다. 앞서 대화의 요점을 요약하는 동시에 독자 입장에서 제기될 만한 물음표를 해소하는 행위다. 전진한 소장 역시 '감초' 같은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다'를 나누는 듯한 장면도 종종 눈에 띈다. 박원순 시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자신에 대한 탄압이 광우병 정국에서 촛불 시위를 주도했던 박원석 전 국회의원과 자신의 이름을 헛갈린 것 때문인 것 아니냐며 웃는다. 설문원 회장은 자신의 노찾사 시절을 돌아보기도 한다. 하승수 공동대표가 사법연수원 연수생 신분으로 사법부를 비판하는 잡지를 만들었던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런 수다가 과하지는 않다. 덕분에 책에서 잠시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하며 가독성을 높인다. 


기록의 고수들이 모인 만큼, 물론 기록에 관련된 이야기는 풍부하게 나온다.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그렇지만, 국회, 법원, 지방자치단체 기록 관리의 문제점을 눈으로 쫓다 보면 "돈 된다고 생각하는 축제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어르신들의 구술 기록을 제대로 채록하는 곳이 없다"는 전 소장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북정상회담록 유출 사건을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에 빗댄 심용환 소장의 분석도 흥미롭다. 


하지만 장점 속에는 또한 분명 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세 사람의 대화로 기록 이야기를 풀어 내다보니 각론은 기억나는데 총론이 잘 안 떠오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또한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다섯 사람과의 대담이다 보니 일부 중복되는 에피소드도 발견된다. 또한 에필로그 역할을 하는 이 의원과 전 소장의 대담은 '사족'에 가까운 듯하다. 앞서 다양한 대담을 정리하는 방식보다는 향후 과제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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