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07231436281&code=114


‘박’ 깨지는 소리에 아시아나는 ‘휘청’

최민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in@kyunghyang.com 2018.07.30ㅣ주간경향 1287호


ㆍ박삼구 회장 취임 이후 잇단 몸집 불리기 집착… 도덕성·경영능력 파국상태


지난 17일 SK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이 흘러나오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주가가 장중 20% 넘게 치솟는 일이 벌어졌다. SK 측이 이를 즉각 부인하며 주가는 다시 원래대로 액면가를 밑도는 수준으로 회귀했고, 댓글란은 “차라리 팔리는 게 낫겠다”는 냉소적인 여론으로 채워졌다. 대한항공 조양호 일가가 ‘물컵 갑질’을 계기로 11개 정부 및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은근한 반사이익이 기대됐던 아시아나에는 지금 ‘도긴개긴’ 딱지가 붙어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불러온 오너 리스크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영’을 추구해 왔다던 박 회장은 어쩌다 금호아시아나의 가장 큰 짐이 되었을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오른쪽)이 지난 7월 4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에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사과 및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오른쪽)이 지난 7월 4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에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사과 및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박 회장 빚 갚으러 출근한다”는 농담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이 나온 것은 박 회장의 경영 실패로 우량기업 아시아나항공의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나의 부채규모는 지푸라기 하나 더 얹으면 부러질 낙타등 같은 상황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 전체 규모는 4조3782억원으로 부채비율이 600%에 아주 조금 못 미치는데,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인 1조9831억원이 만기 1년 이내 단기 차입금이다. 올 상반기 기준 약 6000억원의 차입금이 만기도래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부각되자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팔 수 있는 비핵심자산은 거의 다 매각하고 필수자산도 담보로 잡힌 상태다. 지난 3월 CJ대한통운 지분을 매각했고, 5월에는 광화문 사옥을 팔았다. 아시아나 노조 등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격납고도 담보로 잡히고 금융권에서 돈을 조달했다.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은 1조3800억원이지만, 추가 채권 발행이나 에어부산 상장을 통한 현금 확보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워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재벌 2세 박삼구 회장의 과거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의 부담을 시가총액 8000억원대인 그룹 우량사 아시아나항공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박삼구 회장의 경영 때문에 “박 회장 빚 갚으러 출근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을 한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아시아나의 수장이 된 것은 2002년이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은 택시 2대로 시작한 운수업으로 호남지역의 재벌이 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흙먼지를 마시며 사업을 일궜대서 ‘먼지재벌’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는 다섯 아들을 뒀는데, 교육부 차관을 지낸 막내 박종구 현 초당대학교 총장을 뺀 나머지 네 아들을 사이좋게 경영에 참여시켰다. 새 회사를 만들더라도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가졌다. 금호그룹의 사이좋은 ‘형제 경영’은 업계의 모범이었다. 


이들 간 암묵적인 룰은 ‘65세에 동생에게 총수 자리를 넘겨준다’였다. 맏아들 고 박성용 회장은 65세가 된 1996년에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고, 둘째인 그가 2002년 폐암으로 65세에 타계하면서 삼남인 박삼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박 회장은 그룹의 수장을 맡은 이후 몸집 불리기에 적극적이었다. 국내 항공사의 양대 주자로 떠오른 아시아나항공을 지렛대로 2006년에는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반면 꼼꼼한 성격의 넷째아들 박찬구 회장은 이들 인수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호가 대우건설을 삼킨 사건은 재계의 화제였다. 시공능력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민영화 공기업을 제외하면 자산기준 재계 서열 11위에서 8위로 껑충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 5조9000억원인 대우건설을 무려 6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서 3조원이나 차입한 게 무리가 됐다. 2008년 경제위기 때 건설업도 부진에 빠졌고 대우건설은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져 휘청이면서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 들어가게 됐다. 


막대한 채무규모에 휘청… 돌파구 안 보여 


박삼구 회장의 경영능력에는 이때부터 이미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시 양대 계열사였던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석유화학의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순익이 크게 줄면서 삐그덕거렸다. 게다가 박삼구 회장이 외아들에게 그룹경영을 승계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기 시작하면서 4남인 박찬구 회장과 사이가 크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2009년 발발한 금호그룹의 ‘형제의 난’이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이자, 박삼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열어 그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한 것이다. 그룹은 이를 계기로 2010년 박찬구 회장이 금호의 석유화학 부문을, 박삼구 회장은 항공운수 부문을 가져가는 분리경영에 들어간다.


금호석유화학으로서는 분리경영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박찬구 회장이 이끌기 시작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금호미쓰이화학 등 11개 회사로 구성돼 있는데, 2010년과 11년 호실적을 기록하며 금호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지난 3년간 주가도 꾸준히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금호아시아나는 계속 휘청이고 있다. 주가가 액면가를 밑돈 지 오래됐다.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지렛대로 금호타이어 지분을 되찾으려 할 것이라는 시장 관측이 계속되면서 항공업 호황 속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11월 투기등급 직전까지 떨어진 이래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높은 재무부담과 그룹 신용위험의 전이 가능성을 부정적 이유로 꼽았다. 


게다가 유동성이 부족해 투자유치를 받으려고 기내식 업체를 무리하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업체 사장이 자살하고, 기내식은 아직까지 완전 정상화되지 않고 있으며, 7월 초에는 항공기 정비 불량문제를 이유로 항공기 운항 지연사태까지 줄을 잇고 있다. 이쯤 되면 경영 파행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독재정권 우상화에 맞먹는 ‘회장님 찬양’에 대한 직원들의 내부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박삼구 회장은 지금 도덕과 능력 모든 면에 있어 체면이 땅에 떨어진 상태다. 이를 만회하려면 최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정상화를 이뤄내야 하겠지만 막대한 채무규모를 보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박삼구 회장은 어디에서 이 파국의 출로를 찾을 것인가.


<최민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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